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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인천공항, 분노한 이유 : 부러진 펜? 부러진 합의와 공약의 수성

정규직 노조는 왜 합의 파기를 주장하나

[취재파일] 인천공항, 분노한 이유 : 부러진 펜? 부러진 합의와 공약의 수성
복학 후 취업준비란 걸 슬슬 시작해보던 6년 전. 취업 문외한인 저에게 연봉 수준이 높고 손꼽히던 사기업들을 선배들이 읊조리던 기억이 납니다. 소위 '기름집'으로 불리는 국내 정유회사들, 삼성전자 IT 모바일 사업부 같은 곳들 말이죠. 공기업/공공기관에서는 금융공기업을 포함하더라도 아직 수도권에 남아있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회사가 두 곳 있었습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 마사회였습니다. 그 당시에도 '스펙'이 뛰어난 지원자가 대거 몰리는 곳이라 "나와는 거리가 꽤 먼 곳이구나"고 생각만 했습니다.

그런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지난주 보안검색 요원 1902명의 본사 직고용 결정을 발표했습니다. 분노가 들끓었습니다. 인천공항공사 정규직 직원들 또 취업준비생들의 분노가 특히 컸습니다. 지난 일주일간 나온 여러 기사들을 보면 "인천공항을 둘러싼 이해관계자가 많다. 그래서 진통이 심하다"는 식의 정부 설명이 자주 나옵니다.
인천공항공사가 이와 관련해 발표한 보도자료엔 '2017년부터 세 차례 이뤄진 노사전문가협의회 합의에 따라 한국노총, 민주노총과 함께 정규직 노조도 합의하였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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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세 차례(1기, 2기, 3기 합의)나 합의했는데 이제 와서 다른 소리를 하는 걸까요? 세 차례 합의 당시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당사자들이 누군지 또 누가 합의안에 찬성했고 반대했는지를 뜯어봐야겠습니다.

● 누가 합의를 어겼나? -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1차 합의

2017년 12월 26일 첫 번째 합의로 돌아가겠습니다. 소방대, 야생동물 담당, 보안경비 그리고 이번에 직고용 결정이 난 보안경비 중 2,940명을 공사에서 직고용 한다고 합의문에 명시했습니다. 이 합의를 기초로 인천공항공사와 정부는 본사 직고용 대상이 이미 3년 전부터 결정됐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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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작 이때 합의안에 인천공항 정규직 노조는 '무리한 비정규직 정규직화 추진'이라며 사인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국노총 소속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 대표도 합의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천공항공사와 민주노총 소속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조 두 곳만이 합의안에 사인했습니다. 첫 합의부터 단추가 잘못 꿰어진 셈입니다.

이때부터 합의의 연속성에 대한 논란도 불거집니다. 인천공항공사는 보안검색 직원들을 공사 소속으로 정규직 전환한다는 17년도 합의를 기초로 18년 2기 합의와 3기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8년 12월에 이뤄진 2기 노사전협의회 합의와 올해 2월 작성된 3기 노사전 협의회에서 합의에 찬성한 주체를 보면 '아 왜 서로 합의안에 대한 주장이 다르구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 누가 합의를 어겼나? - 민주노총은 빠지고 한국노총 비정규직 노조와 정규직 노조는 사인하고.

18년 12월 2기 노사전 합의는 합의서엔 친인척 채용비리 등 불공정 채용을 막기 위한 경쟁채용 도입 추진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약속한 17년 5월 12일 이후 비정규직 입사자들은 다시 경쟁채용을 봐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땐 반대로 민주노총 인천공항지부가 나서서 반대했고 합의서 무효를 주장합니다. 민주노총 지부는 경쟁채용을 진행하면 오히려 해고 위험과 고용불안이 발생한다며 반발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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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합의를 어겼나? - '동상이몽' 3기 합의

올해 2월 28일에 체결된 3기 노사전협의회는 인천공항공사, 한국노총 소속 비정규직 노조, 민주노총 노조, 인천공항공사 정규직 노조 등 주요 주체가 모두 합의한 안이라고 합니다. 그랬으면 모두 만족한 것 아닌가 싶은데 합의안 내용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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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단"으로 시작되는 이후의 문장을 두고 해석이 엇갈립니다.

인천공항공사는 "17년도 1기 합의에 따라 1902명은 원래 본사가 직고용하는 대상인데 법적으로 걸리는 문제가 있어 해결될 때까지 자회사에 임시 편제한다는 문항이다'라고 설명합니다.

반면 인천공항공사 정규직 노조는 "17년도 1기 합의에 우리는 찬성하지 않았다. 1기 합의의 연속성은 인정될 수 없다. 3기 합의안 문구만을 보면 '1,902명 보안검색 요원의 경우 법적 문제 해소가 필요하고 자회사로 편제한다'고 적혀있다. 지난 6월 22일 인천공항공사 측의 갑작스러운 '법제도 개편 없는 청원경찰 직고용'은 합의에 없던 내용이다"고 말입니다.

3기 합의는 주요 주체 모두가 합의안에 사인했지만 합의안 문구 선정을 두고 장시간 토론과 고심을 거듭했다고 합니다. 서로가 동의하고 양보할 수 있는 문구를 선정했을 겁니다. 하지만 4개월이 지난 지금 격화된 인천공항 본사와 정규직 노조의 갈등을 보면 애초 합의안에 서명할 당시에도 각 합의 주체들의 속뜻은 다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 일주일 만에 법률자문 검토가 바뀌었다?

청원경찰을 두고도 말이 많습니다. 인천공항공사는 1,902명의 보안검색요원에 해당하는 법적 지위인 '특수경비요원'을 현행법상 직접 고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작년 12월 법무법인 김&앤장과 바른에서 자문을 받았는데 이 두 곳에선 법 개정을 통해 특수경비원 직고용을 가능하게 하거나 청원경찰로 고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인천공항공사 스스로도 아래와 같이 "청원경찰은 노령화 및 관료화로 특수경비원으로 대체되며 국가정책방향에 부합하지 않음"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게 작년 12월에 검토한 내용이라 올해 2월에 이뤄진 3기 합의에서도 '법적 문제 해소를 고려하여 보안검색 1,902명은 자회사로 편제'라는 문구가 들어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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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공사 정규직 노조에 따르면 올해 4월 13일 인천공항이 다시 법무법인 바른으로부터 받은 '정규직 전환 관련 법/제도 개선방안 검토 용역 연구용역보고서'상에도 청원경찰보다는 법 개정을 통한 특수경비원으로서의 직고용이 낫다는 판단을 합니다.

그런데 일주일 후 인천공항공사가 법무법인 ○○로부터 새로운 법률자문을 받았는데 정규직 노조 측 주장에 따르면 "기존 자문 결과를 뒤집는 또 다른 법률자문을 받아 졸속으로 정규직 전환 마무리를 선언했다"고 합니다. 해당 법률자문 보고서는 취재진도 확보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기존 논의와 다른 법률 검토가 나왔어도 이는 참고용일 뿐 결정은 인천공항공사의 몫입니다.

이 결정 과정에 인천공항공사 상위기관인 국토교통부와 경찰청, 국방부, 국가정보원 등 유관 기관이 모여 수차례 회의를 거쳐 법률 검토 끝에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보안검색요원 직고용이 3년 전부터 합의된 사항이기 때문에 시간이 다소 걸리는 법률 개정보다 차선책인 청원경찰을 선택했다는 설명입니다.

정규직 노조는 올해 2월 3기 합의 이후 인천공항공사의 직고용 전환 결정 과정 자체가 회사 측 설명은 없는 깜깜이 회의로 진행됐다고 반박했습니다. 최종 결정안마저 지난 21일(일) 저녁 8시에 발표된 보도자료를 통해 처음 알았다는 입장입니다.

● 약속은 일단 지켜졌다

논란을 차치하고 보안검색요원 1,902명을 청원경찰로 직고용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후 첫 공식 행보였던 인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마무리됐습니다. 9,785명의 정규직 전환 대상자 중 2,143명이 공사 직고용, 나머지 7,642명은 인천공항 산하 3개의 자회사 소속 정규직이 됐습니다.

앞서 봤듯 지난 3년간의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다양한 주체들의 찬성과 반대를 겪어 왔습니다. 공식적인 1, 2, 3기 합의안에 사인한 곳도 있고 폐기를 주장한 곳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천공항공사의 "1, 2, 3기 합의안은 공사 이해 관계자들이 모두 합의한 사안"이라는 식의 설명은 아쉽게만 느껴집니다.

올해 6월로 자회사 소속 보안검색 요원들의 계약이 종료돼 어찌 됐든 정부와 인천공항공사가 결단을 내렸어야 했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데드라인'이 정해져있다는 사정을 감안할수록 인천공항 정규직 노조를 비롯한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조 측에게 충분한 설명이 없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소통 부족으로 3년간 진행된 협의는 결국 회사와 직원 간 대립만 격화시킨 모양새입니다. 정규직 노조는 헌법소원과 감사원 공익감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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