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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북적] 나를 숨 쉬게 하는 보통의 언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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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248 : 나를 숨 쉬게 하는 보통의 언어들

<컨택트>라는 영화에서 인간보다 고등한 외계인들의 언어는 파동에 가까운 형태를 띤다. 결국 이들이 인간에게 건네준 것은 그들의 언어, 아니 소통이었다.. (중략).. 감정이 원형 그대로 전달될 수 있으려면, 글자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때로는 불가능하다. 인간은 같은 언어를 서로 미세하게 다르게 사용하기 때문이다...(중략)..
언어를 통해 세상을 보고, 언어를 통해 누군가를 이해하고 나의 마음을 전달하지만 정작 언어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에는 소홀하니, 마음이 통하는 대화라는 것은 그토록 귀하다.
-김이나, '보통의 언어들' 프롤로그 '당신의 언어를, 당신만의 세계를 바라보는 일' 中


'그런 마음'으로 한 말이 아니었는데, 말하려는 나의 '뜻'과 받아들이는 상대의 '뜻'이 달랐던 경험 있으신가요? 나의 '사랑'과 상대의 '사랑'이 다르고 나의 '이해'와 상대의 '이해'가 다르고, 나의 '소중함'과 상대의 '소중함'이, 나의 '실망'과 상대의 '실망'이… 우리는 '말'이라는 도구로 마음을 얼마나 정확히 전할 수 있는 걸까요. 아니, '말'로 내뱉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정말 잘 표현하고 있는 걸까요.

'골라듣는 뉴스룸'의 일요일 책방 '북적북적', 오늘은 김이나 작사가의 산문집 '보통의 언어들'을 소개하고 맛보기로 읽어드립니다.

저자의 첫 책인 '김이나 작사 법'이 제목처럼 작사 법을 공유하는 책이었다면, 두 번째 책인 '보통의 언어들'은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언어'라는 '액자'를 공유하는 책입니다. 저자는 "감정이 언어라는 액자 안에서만 보관되고 전달된다면, 나는 이 액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어떤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액자를 공유하는 것이 진짜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기에."라고 쓰고 있습니다.

'보통의 언어들'은 말 그대로 '보통'의 언어들을 다룹니다. 특별한 말이 아니라, 우리가 자주 쓰는 보통 말-너무 자주 쓰던 말이라 그냥 써왔던 말을 한 겹 두 겹 들춰봅니다. 말들 사이의 미세한 차이를 들여다보고, 어떤 말에 씌워졌던 오해를 지우기도 합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관계의 언어', '감정의 언어', '자존감의 언어'.
'관계의 언어'에서는 사과하다, 이해가 안 간다, 포장하다, 실망, 미움받다, 선을 긋다, 공감, 싫어하다, 속이 보인다, 뒷담화, 미안하다, 비난, 지질하다, 상처, 염치가 있다, 소중하다 등의 말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포장하다'를 예로 들어볼까요. 소중한 마음을 담아 선물을 포장하듯, 말도 포장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듣는 이의 성향과 아픈 곳을 헤아려 가장 고운 말이 되어 나올 때야 '조언'이지, 뱉어야 시원한 말은 조언이 아니다"고 말이죠. 관계의 언어에 실린 말들은 독자에게 각각 다른 부분에서 다가갈 듯합니다. 읽는 사람마다 처한 상황과 고민이 다 다른 만큼, 마음이 '쿵'하는 지점도 다를 겁니다.

'감정의 언어'에는 부끄럽다, 슬프다ㆍ서럽다ㆍ서글프다, 찬란하다, 묻다, 품다, 소란스럽다, 외롭다, 싫증 나다, 기억ㆍ추억 같은 말이 담겨 있습니다. '부끄럽다'를 예로 들어볼까요. 저자는 이 말에 '매력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라는 부제를 달았습니다. '우리 마음 중에 가장 맨살에 닿아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우리가 지켜야 할 아주 소중한 마음에 붙어 있는 말'이라고 썼습니다. '호감 앞에 조심스러운 마음, 굳은살 박이지 않은 양심이 긁히는 마음'이라고요. '슬프다ㆍ서럽다ㆍ서글프다'는 서로 비슷한 말이죠. 하지만 같지는 않습니다. "누군가의 슬픔 앞에서 그 이유를 헤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서러움은 일단 따뜻한 집에 들여 밥 한 술 떠먹이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렇다면 '서글픔'과는 어떻게 다를까요? "서글픔에는, 왠지 모르게 그 풍경에서 느껴지는 애틋한 아픔이 있다. 즉 나의 감정이 개입된 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를 서글프게 본다는 문장에는 이전의 히스토리가 담겨 있다. 이미 그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니까." 할아버지의 뒷모습에서 느꼈던 감정을 저자는 '서글픔'으로 설명합니다.

'자존감의 언어'에는 용기를 주는 말들이 많습니다. 특히 '겁이 많다'거나 '이상하다', '살아남다',
'쳇바퀴를 굴리다' 같은 말을 저자의 시각으로 다르게 해석합니다. 그동안 그다지 멋진 일로 여겨지지 않던 말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줍니다.

중요한 건, 빛나는 재능만으로는 할 수 없는 게 '살아남기'라는 것이다. 금 밖으로 나가면 게임이 끝나는 동그라미 안에서 변두리로 밀려나 휘청거리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고, 아마 앞으로도 몇 번은 더 올 것이다. 그때 볼품없이 두 팔을 휘저어가며 다시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는 것, 그 멋없는 순간 스스로 겸연쩍어 선 밖으로 나가떨어진다면 잠깐은 폼날지언정 더 이상 플레이어가 될 순 없다.
기억하자. 오래 살아남은 시간 속에 잠깐씩 비참하고 볼품없는 순간들은 추한 것이 아니란 걸. 아무도 영원히 근사한 채로 버텨낼 수는 없단 걸.
-김이나 '보통의 언어들' 中


저자의 말처럼 아무도 영원히 근사한 채로 버텨낼 수는 없으니, 잘 살아남아서 우리가 각자 열심히 구축한 쳇바퀴- 그 일상과 때때로 특별한 순간이 주는 소중함을, 남과 비교하거나 폄하하지 말고 충실히 누려보는 건 어떨까요.
*낭독을 허락해주신 출판사 '위즈덤 하우스'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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