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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평등법' 발의할 국회의원 어디 없나요? 300명 중 10명도 없는 국회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작성 2020.06.26 14:4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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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평등법 발의할 국회의원 어디 없나요? 300명 중 10명도 없는 국회
고개를 돌려 옆 사람을 보자. 내 기준으론 동성(同性)이지만 머리숱, 눈 크기, 키, 피부색도 다르다. 나이도, 출신 학교도, 거주 지역도, 고향도, 종교도 다르다. 같은 기혼자이지만 가족 수도 다르고, 통장 잔고에서도 차이가 난다. 동종 업계에서 일하며 때론 비슷한 의견을 내지만, 문제의식과 사상이 완전히 일치하지도 않았다. 지금 바로 옆 내 동료와 완벽하게 같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사람'이라는 사실 뿐이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으니 다른 건 당연하다. 다만 '다름'을 이유로 물건을 살 때도, 임금을 받을 때도, 교육을 받을 때도, 의료·사법·금융·행정서비스를 이용할 때 차별을 받는다면 당신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미 당신은 '차별금지법'의 존재 필요성을 알고 있다.

● 헌법 11조 평등을 실현하는 기본법 '차별금지법'

차이가 차별로 변질되는 걸 막는 게 차별금지법이지만, 법 제정은 난망하다. 아직 사회가 받아줄 만큼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법을 둘러싼 오해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자신에 대한 차별을 반대하고 있기에 이 법이 추구하는 가치와 내용을 알게 된다면 시민들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차별금지법의 지향점은 헌법 11조 1항에 명시된 평등이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아직 한국엔 헌법 11조1항에 명시된 평등 원칙을 구현하는 기본법이 없다. 남녀고용평등법, 장애인차별금지법과 같이 개별적 차별 구제법은 있지만, 다양한 이유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 영역에서 발생하는 불합리한 차별을 막고 구제할 수 있는 법은 없다. 헌법적 가치인 평등이 구문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 실현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바로 '차별금지법'이다.

● 20여 개의 차별 범위…'차이'가 '차별'이 되는 것을 금지

차별금지법은 헌법상 평등을 세밀한 언어로 가다듬으면서, 차별 범위를 20개 정도로 나열하고 있다.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 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 지역, 용모·유전정보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 학력, 고용 형태, 사회적 신분"

여기에 자신이 인식하거나 표현하는 성별을 의미하는 '성별 정체성(자신이 인지하는 성과 타인이 인지하는 성과의 불일치도 포함)'의 포함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지만, 대부분 사람은 크게 20가지 범주 내에서 서로 다른 점을 지니고 있다.

법에선 이런 차이를 이유로 고용, 재화 용역의 공급 또는 이용, 교육 및 직업 훈련, 행정·사법 서비스 제공 및 이용에서 구별되거나, 배제되거나, 거부되는 등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채용에서 우대를 받고, 직장 상사와 출신대학이나 고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승진에서 배제되고,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하거나 임금을 적게 받고, 외제차를 탄다는 이유로 호텔에서 더 좋은 서비스를 받고, 반대로 소형차를 탄다고 배제되는 등 이런 다양한 차별들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 차별을 한 기관(또는 사람)에 국가인권위는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고, 불이행 시 이행강제금도 부과할 수 있도록 한다. 차별을 주장한 피해자에게 다시 불이익을 가하면 징역형과 벌금형도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대부분의 차별 피해자는 약자이고, 상대적 강자인 집단과 다퉈야 된다는 점에서 증명 책임도 상대에게 부여했다. 누군가가 차별 피해를 주장하면 "차별이 아니고,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입증 책임을 상대방에게 부여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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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번 발의, 2번 철회, 5번 폐기' 차별금지법…발의조차 못 한 20대 국회

2006년 7월 국가인권위가 정부에 입법 권고한 이후 모두 7번의 차별금지법 추진이 있었지만, 지난 14년간 제대로 된 논의조차 없이 번번이 폐기됐다. 참여정부 말인 2006년 12월 정부 입법으로 1번, 17대 국회 당시 1번(2008년 노회찬 의원 대표 발의), 18대 국회 당시 2번(2011년 박은수 의원, 권영길 의원 각각 대표 발의), 19대 국회 당시 3번(2012년 김재연 의원 대표 발의, 2013년 김한길 의원, 최원식 의원 각각 대표 발의)가 전부이다. 이 가운데 김한길 의원과 최원식 의원이 낸 법안은 철회됐다.

그리고 20대 국회에선 단 한 건도 발의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발의 못 했다.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추진했지만, 정족수 10명을 채우지 못한 탓이다. 가까스로 의원 10명을 채웠지만, 일부 의원이 서명 다음 날 철회를 했다. 지역구 내 교회 목사와 신도들의 항의가 쇄도한 탓이다 .

● 타종교가 악이 아니듯 성 소수자도 악이 아니다

차별금지법은 종교 차별까지 금지하는 법인데도, 일부 개신교에선 극렬 반대한다. 차별 범위에 적힌 '성적 지향'을 문제 삼는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차별금지법은 동성애 조장법"이라는 이유에서다. 이 법이 제정되면 동성애를 반대하는 교회 목소리까지 탄압받을 수 있으니, 역차별이라는 말까지 한다.

인권교육 동성애 법안 철회
교묘한 사실 왜곡이다. 동성애를 조장하는 게 아니고 '차별을 받고 있는 동성애자를 보호'하는 법이다. 교회 목사를 배제하고 처벌하는 법이 아니라, 차별 피해자를 지키고 구제할 뿐이다. 인간의 정체성인 성적 지향이 보호받아야 되듯, 종교의 영역도 존중받아야 한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은 동성애를 기피하는 그들의 교리를 뒤엎고 새로 쓰게 할 수 없다. 단지, 성 소수자 등 소수자가 고용, 교육, 의료 서비스 등 사회 다방면에서 배제되고 차별받는 걸 막고자 할 뿐이다. 이 과정 어디에도 종교 탄압은 없다.

그들의 교리가 동성애를 반대한다면 사회 전체가 함께 반대하며 성 소수자 차별까지 용인해야 할까. 그들 스스로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불자(佛子)가 대통령이 되면 불경이 사회를 지배하고, 가톨릭 신자가 대통령이 되면 성서가 사회를 지배하는 시대는 그들도 원치 않는다. 개신교는 유일신을 믿지만 타종교를 악(惡)으로 몰아세울 수 없듯 성 소수자도 악이 아니다. 배척의 대상도 아니다. 단지 나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처럼 서로 다른 사람일 뿐이다. 왼손잡이와 다를 바 없는 그저 사람일 뿐이다.

● '선량한 차별주의자'에 만족하는 국회의원들…그들의 존재가치는?

21대 국회가 개원하기도 전에 특정 지역의 목사들이 해당 지역의 민주당 소속 당선자 전원을 모았다고 한다. 명목은 차별금지법 반대 설명이지만, 실제 의원들에겐 강요로 들렸을 테다. 의원들 입장에선 탁월한 여론조성 능력과 남다른 조직력을 가진 교회 세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일부 개신교의 이런 행태는 차별금지법 제정의 시급성을 보여주고 있다.

30일 국민인권위원회는 전원위를 열고 국회를 상대로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에 나선다. 법안 명칭은 '차별금지법에서 '평등법'으로 바꿀 예정이다. 전원위 결론이 입법 권고가 될지, 의견 표명이 될지 미정이지만, 2006년 정부 상대 입법 권고 이후 14년 만에 공식적으로 입법 촉구에 나서는 건 분명해 보인다.

차별금지법
이제 국회가 나설 차례이지만,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20대 국회에서 발의조차 못 한 차별금지법은 21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상황이다. 정의당이 당론으로 추진해 법안 초안도 완성했지만, 정족수 10명을 아직 채우지 못했다. 정의당 의원 6명 외에 무소속 또는 다른 당 의원 4명이 더 필요한데, 9명에서 멈춘 상태라고 한다. '차별 해소'를 강령에 내걸고 '정의 사회'를 당헌으로 삼은 민주당 의원들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존재하는 것에서 빼버릴 것은 하나도 없고, 없어도 되는 건 없다. 의원들 지역구엔 목사뿐만 아니라, 성 소수자, 장애를 가진 사람, 가난한 사람, 비정규직 등 다양한 약자들이 살고 있다. 의원의 가족과 친구 중에도 소수자가 있을 것이다. 의원들 역시 소수자가 될 수 있고, 이미 소수성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는 소수성으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원치 않는 걸까. 나 또는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이 이 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데, 머뭇거릴 이유는 없다. 그저 '나는 선량한 사민일 뿐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믿고 싶은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著>에 머물고 싶다면, 국회의원일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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