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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간 땅속에 묻힌 진실, '10만 학살' 누가 명령했나

<앵커>

6·25 전쟁 중에 일어난 민간인 학살, 보도연맹 사건에 대해 나흘째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보도연맹 사건에서 보도는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뜻입니다. 좌익 활동을 한 사람들을 남측 우호 세력으로 인도한다며 정부가 만든 조직인데 6·25 전쟁 중에 대거 학살당한 겁니다. 피해자가 10만 명으로 추산되지만 여기에 책임진 사람은 없습니다.

권영인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경북 경산의 한 폐광산입니다.

일제 강점기, 자원 수탈의 상징이었지만 6·25 전쟁 때는 대표적 민간인 학살지였습니다.

보도연맹원 등 민간인 1천여 명이 이곳에 매몰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최승호/경산신문 대표 : (갱도 아래로) 2미터 정도 아래로 파고 내려갔는데 여기에서 약 400구 정도 유해를 발굴했어요.]

1950년 7월, 경북 지역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지역 보도연맹원을 학살하기 시작했습니다.

10만 명으로 추산되는 피해자들은 이처럼 전쟁 발발 직후 한두 달 사이에 대부분 희생됐습니다.

[6·25 전쟁 당시 경찰 (2009년 인터뷰) : 그 당시에 보도연맹원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큰 어떤 중죄를 진 죄인도 아니고요. 그런 너무 애매한 사람이 시행(학살)이 많이 되는 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했죠.]

10년 전 진실화해위원회가 경찰과 군의 학살 집행 명령 체계는 확인했지만, 최종 명령을 누가 내렸는지 밝히지는 못했습니다.

당시 주한 미 대사관 직원은 "의심할 여지 없이 최고위층 지시에 따른 학살"이라고 본국에 보고했습니다.

[한성훈/전 민간인 학살사건 조사팀장 (연세대 연구 교수) : 이승만 정부의 행정부가 치안이 있었던 곳에서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런 것(민간인 학살)이 진행됐기 때문에 탑 레벨에서 명령이 내려올 수밖에 없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했습니다.]

4·19 혁명 후 민간인 학살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 요구가 거셌지만 5·16 쿠데타 뒤에는 말 꺼내는 것조차 어려워졌습니다.

전후 70년이 되도록 보도연맹 사건으로 책임을 지거나 징계를 받은 가해자는 아직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영상취재 : 김용우, 영상편집 : 김선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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