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육상 이지스' 철회가 기회? 고노, 이미지 반등 노리나

당정회의에서 뜬금없는 '울컥'…이유는?

유성재 기자 venia@sbs.co.kr

작성 2020.06.25 16:5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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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여름, 북한의 연이은 탄도 미사일 발사로 일본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급기야 8월 29일 새벽에 발사된 미사일이 3개로 분리돼 그 가운데 하나가 홋카이도 에리모곶 동쪽 태평양 해상에 낙하하면서 일본 정부가 전국 순간 경보 시스템을 발령하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말 폭탄'도 계속돼 9월 13일 조선중앙방송은 "일본 열도를 핵폭탄으로 침몰시킬 것"이라고 위협했고, 10월 9일 노동신문도 "다시 조선반도(한반도)에서 전쟁의 불길이 타오른다면 일본은 절대로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북한 미사일 일본 상공 통과
당시 일본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미사일 요격체제를 강화하기로 하고, 육상 이지스 방어체제(이지스 어쇼어) 2기를 도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북쪽의 아키타현, 남쪽의 야마구치현 두 곳에 배치해 탄도미사일로부터 일본 영토를 방어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미국 정부의 유상 군사원조 방식(FMS)을 통해 본체 2기와 레이더, 발사 장비를 총액 2,520억 엔, 우리 돈 3조 가까이 들여 도입하고 향후 30년 동안의 유지 관리, 운용과 교육 훈련비에도 2조를 투입하는 '거대 사업'이었습니다. 후보지로 선정된 곳은 모두 육상자위대의 훈련장이었는데, 두 지자체에서는 오히려 북한의 공격 목표가 될 수 있고 레이더 운용에 따른 전파 노출, 그리고 안전성 문제 등을 이유로 거센 반대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국토 방어를 위해 필요하다며 지자체를 설득하는 한편 도입 사업을 계속 추진해 왔습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육상 이지스 도입 방침을 지난주 철회했습니다. 표면적으로 내세운 이유는 '기술적 문제'입니다. 육상 이지스가 가동되어 요격 미사일(SM3 블록2A)가 발사될 때 1단 추진체(부스터)가 연료를 다 쓰면 분리 낙하하게 되는데 무게 200kg에 달하는 이 부스터가 어디로 낙하할지 알 수 없다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원래 일본 정부는 미국 측과의 공동 개발을 통해 1단 부스터를 아키타현의 경우 해상에, 야마구치현의 경우 발사기지인 자위대 훈련장 내에 낙하시키도록 하겠다며 주민들을 설득해 왔습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개선으로는 주택지 등 지상 낙하 위험성을 완전히 해소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부스터 자체의 하드웨어 성능 개선까지 고려하면 2조 원이 넘는 추가 비용과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설사 이를 다 감안해 부스터 낙하의 안전성을 담보하더라도 요격 미사일 자체의 성능개선으로는 이어지지 않아 신형 탄도미사일 요격이 어려워진다는 점도 고려했다는 게 일본 정부의 설명입니다.

육상 이지스 설치를 반대해 왔던 지역에서는 안도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수조 원이 들어가는 사업을 중간에 접은 일본 정부는 '이럴 거면 왜 시작했냐'는 비난에 직면했습니다. 지난해 9월 외무상에서 방위상으로 명패를 바꾼 고노 다로 방위상은 지난 주말 두 지자체를 방문해 육상 이지스 도입 철회 방침을 설명하고 주민들에게 불안감을 안겨 준 점을 사과했습니다. 어제(24일)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의 '4 대신 회의'가 열려 배치 철회 방침을 굳혔고 오늘 오전(25일)에는 집권 자민당에 정부 관료가 출석해 상황을 보고하는 합동회의가 열렸습니다.

고노 방위상
이 회의에 정부 측 대표로 고노 다로 방위상이 참석했습니다. 고노 방위상은 자민당 의원들에게 "지금까지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이런 결과(배치 철회)가 되어 깊이 사과한다"며 머리를 숙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자민당의 국방부회(국방위원회 격) 회장은 육상 이지스 도입을 추진한 오노데라 전 방위상입니다. 현직의 고노 방위상이 전임 방위상의 정책을 뒤집은 것에 대한 사과를 하며 앞으로 방위 대책의 재정비와 관련해 자민당과 함께 긴밀히 의논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입니다.

그런데 발언 말미에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납니다. 고노 방위상이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특정 정치인을 거론하며 별도로 사과를 한 겁니다. 아래 영상입니다.


고노 일본 방위상 : 그리고..오늘 이 자리에 안 계시지만 나카이즈미 전 참의원 의원. 정말 (낙선을) 돌이킬 수도 없어서 면목이 없다고, 저..생각하고 있습니다. 저기..저도 전화로 말씀드리고 사과를 드렸습니다만, 나카이즈미 씨! 지금부터 저도 확실히 개인적으로도 지원하고(돕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말씀드려도 (낙선을) 돌이킬 수 없지만 마음으로부터 진심으로 사과 말씀드리면서 제 보고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없는 일본의 각료가 공개 석상에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발언을 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입니다.

고노 방위상이 언급한 나카이즈미 마쓰지 참의원은 아키타현을 지역구로 둔 초선 의원이었는데, 지난해 참의원 선거에서 '육상 이지스 반대'를 강하게 주장한 무소속 후보에게 패해 재선에 실패했습니다. 당시 아키타 선거구는 자민당의 나카이즈미 의원과 무소속 데라다 시즈카 후보가 사실상 1대 1로 맞붙었는데 나카이즈미 의원은 자민당 소속이라 국가가 추진하는 육상 이지스 도입에 대해 지역의 불만이 크다는 걸 알면서도 도입 필요성을 주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선거 막판 격전이 예상되면서 아베 총리, 스가 관방장관 등 자민당의 실세 거물들이 줄줄이 아키타를 찾아와 지원 연설을 했는데, 이게 오히려 지역 유권자들의 반발을 불러 패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이제 와서 육상 이지스 배치 계획을 철회했으니, 낙선한 나카이즈미 전 의원으로서는 억울할 만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고노 방위상이 굳이 낙선한 초선 참의원을 언급하며 울먹거릴 필요가 있었을까요? 이미 이 발언 앞에 자민당 의원들에게 정부 각료로서 사과하고 머리까지 숙인 상황이었는데 말입니다.

여기에 '포스트 아베', 즉 아베 총리 이후의 정권 쟁탈전을 대입하면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난주 육상 이지스 배치 철회 계획을 기자회견에서 '깜짝' 발표한 고노 방위상은 주말에는 아키타와 야마구치현을 방문해 지자체장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소속 정당인 자민당 회의에 참석해 의원들에게 다시 사과하고, 여기에 더해 울먹이는 목소리로 지난해 낙선한 특정 의원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다시 사과한 겁니다. 비록 본인이 육상 이지스 도입 결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철회는 본인 손에서 결정된 만큼 그 책임을 다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특히 자민당의 젊은 의원(나카이즈미 전 참의원은 1979년생입니다)들에게 그런 자세를 어필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사진=고노 다로 방위상 트위터 캡처, 연합뉴스
일본 정치계를 오래 취재해 온 현지 중견 기자들은 차기 총리 후보 구도, 즉 자민당의 차기 총재 구도에서 고노 방위상을 일종의 '다크호스'로 점치고 있습니다. 여론조사에서는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에 절반 이하로 한참 밀리는 지지도가 나오지만, 고노 방위상은 트위터를 중심으로 SNS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고노 방위상의 트위터 활용 방식은 한마디로 '장관 같지 않은 개인적 말장난'이 특징인데, 팔로워가 해시태그를 붙여 질문을 하면 무작위로 직접 답변을 하기도 해서 160만 명이 훌쩍 넘는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차기 총리 여론조사 1위인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은 17만 명 정도입니다. 물론 트위터 팔로워 숫자만으로 총리를 향한 정치적 기반을 다질 수는 없겠지만 최근 20~30대의 자민당 지지층 이탈이 계속 가시화하는 상황에서 고노 방위상의 인터넷상의 인기는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고노 방위상도 이 점을 충분히 알고 있고, 또 이미지 제고에 이용하려고 할 것이라는 예측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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