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코로나19와 싸우다가 이젠 인종차별과 싸우는 아시아계 의료진

김정기 기자 kimmy123@sbs.co.kr

작성 2020.06.25 09:00 수정 2020.06.26 14:3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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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코로나19와 싸우다가 이젠 인종차별과 싸우는 아시아계 의료진
지난 1991년, 미국에서 눈 위를 다친 뒤 출혈이 심해 응급실로 간 기억이 납니다. 당시 저를 치료해준 의사는 우연하게도 한국인이었습니다. 미국에서 한국 의사한테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만큼 미국에 한국 의사가 많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미국에서 활동 중인 의사는 110만 명 정도 됩니다. 이 가운데 백인이 가장 많습니다. AAMC의 2018년 조사 내용을 보면 전체 의사의 56%가 백인입니다. 놀라운 조사 결과는 아닙니다. 미국이기 때문에 백인이 가장 많겠죠. 그런데 다음으로 아시아인이 17%를 차지하면서 백인에 이어 두 번째로 의사가 많습니다. 아시아계 의료진 가운데 한국인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참고로 히스패닉인이 아시아인에 이어 세 번째로 많습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수모를 당하는 아시아계 의료진들이 크게 늘었습니다. 욕을 하는 환자, 침을 뱉는 환자, 심지어 때리는 환자까지. 우리나라에 있는 병원 응급실에서도 의료진에게 욕하고 폭행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데, 미국의 상황은 약간 다릅니다.

뉴욕에 있는 대형병원 응급실에서 활동 중인 의사 리나 웬(중국인) 씨의 말은 정말 충격적입니다. 일반인들을 상대로 실시한 코로나19와 관련 강의 중에 갑자기 사람들이 욕을 시작하더니 "당신 때문에 우리가 죽어간다", "박쥐를 먹는 인간들!", "당신이 이렇게 만들어놓고 무슨 설명을 하냐!", "그냥 고향으로 돌아가라!" 등의 욕을 듣고 강의가 어려웠던 경험을 설명했습니다. 또 한 환자는 의사가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하고 의사 얼굴에 침을 뱉고 나간 경우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중국 의사만 이런 수모를 당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습니다.
 
*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미국 뉴욕 코로나19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중국발 코로나 확산 이후 중국인을 포함한 아시아계 의료진까지 차별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난달 워싱턴포스트에 올라온 기사를 보면 더욱 충격적입니다.

한 코로나19 의심 환자가 진료를 받던 중 갑자기 의사(필리핀 출신)에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은 어떤 대학에서 언제 공부를 했습니까?", "공부는 어렵지 않았나요?" 그러더니 마지막으로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았다는 것입니다. 의사는 질문에 의문을 갖고 무슨 뜻인지를 환자에게 물었더니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고 싶다"라고 답했습니다. 자신이 필리핀 출신이라고 말했더니 환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들이 우리(미국)를 이렇게 만들었다"(코로나19 확산시켰다는 주장) . 필리핀 출신 의사는 큰 충격을 받고 한동안 진료가 어려웠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 출신인 행키 림 씨는 LA에 있는 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던 중 급히 들어온 코로나19 환자를 돕기 위해 달려갔지만 환자는 행키 림 씨가 아시안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림 씨 얼굴을 향해 고의로 기침을 하고 응급실을 떠났다고 합니다. 10년간 미국에서 의사 활동을 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고 말했습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미국에서 활동 중인 의료진들은 하루하루 어려운 환경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특히 아시아계 의료진들은 코로나19뿐만 아니라 인종차별과도 싸우고 있습니다.

아시아 권익단체인 "아시아퍼시픽 정책기획위원회'(A3PCON)가 지난 3월부터 두 달간 실시간 조사를 보면 아시안을 상대로 한 범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모두 1천843건이 보고됐는데, 이 가운데 70%가 욕설과 비방 등의 언어폭력이 가장 많았습니다. 위에 소개한 의료진들의 피해가 여기에 속합니다. 침을 뱉는 경우도 6.6%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병원에서 발생한 아시아계 의료진을 상대로 한 인종차별 또는 증오 범죄는 따로 통계를 잡지는 않았지만 코로나 사태 발생 이후 아시안 상대로 한 증오 범죄는 줄어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아시아계 의료진들은 두 가지의 '적'과 싸우고 있다는 말을 합니다.

코로나19와 인종차별.

필리핀 출신의 의사의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피부색만 다를 뿐 모두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손을 잡고 코로나19와 싸워야 합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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