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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술술 읽히는 글쓰기? 입부터 먼저 열어라

강원국|전 대통령 연설비서관. 책 <나는 말하듯이 쓴다> 저자.

<'말'에서 찾은 좋은 '글'의 조건 : 나는 말하듯이, 말해보고, 말한 대로 쓴다>
 

"말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글을 잘 쓰고 싶은데, 무엇부터 하면 좋을까요?"


사람들을 만나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회장님,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말하고 써야 할 때가 온다. 아니 쓸 수밖에 없다. 집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법'이 필요하다.

말을 못 하는 사람은 없다. 잘하지 못해도 누구나 할 수는 있다. 그래서 제안한다. 말해보고 쓰자. 말하듯이 쓰자. 이렇게 권하는 이유는 말하기가 글쓰기보다 쉽기 때문이다. 우리는 태어나서 말을 먼저 배웠다. 남에게 말하는 게 여의치 않으면 혼잣말도 좋다.

나는 쓰기 전에 먼저 말해본다. 기고할 일이 있으면 차를 운전하면서 옆에 앉은 아내에게 말한다. "내가 어떤 주제로 글을 써야 하는데, 이런 내용으로 쓰려고 해. 한번 들어봐 줘." 그러면 아내가 "내가 운전할 테니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고 말해"라고 받아준다. 하지만 나는 조수석에 앉아 말하면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운전하면서 말해야 불쑥불쑥 잘 튀어나온다.

*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글을 쓰고 싶다면 먼저 말을 해보기를 권한다.

#1 일단 말해야 하는 5가지 이유

나는 말하면서 다섯 가지를 얻는다.

첫째, 생각을 얻는다. 말없이 생각만 할 때나 쓰면서 생각할 때보다 훨씬 생각이 잘 난다. 나는 그때마다 아내에게 메모해달라고 한다. 의외로 쓸 만한 내용을 많이 건진다. 말해보지 않았으면 얻을 수 없는 내용들이다.

둘째, 생각이 정리된다. 오랫동안 말해보라. 어느 순간 머리에 그림이 그려진다. '이렇게 쓰면 되겠구나!' 막연하고 갈피가 잡히지 않던 생각에 흐름이 잡히고 골자가 세워진다. 나는 이를 '졸가리(군더더기 없는 뼈대를 뜻하는 순우리말)가 타진다'라고 표현한다. 마치 엄마가 아이에게 잔소리를 잔뜩 늘어놓은 후 "엄마가 하는 말 알아듣겠어? 세 가지야. 첫째는 뭐, 둘째는 뭐, 셋째는 뭐" 하고 다시 강조하는 것과 같다. 이때 엄마가 처음부터 세 가지를 염두에 두고 말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말하면서 정리된 것이다. 이 얘기 저 얘기 좌충우돌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논리적 흐름을 찾는 게 아닐까 싶다.


셋째, 반응을 알 수 있다. 내 말이 재미있는지, 알아들을 만한지 확인할 수 있다. 아내가 없으면 혼자 산책하면서 말해본다. 누군가 내 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중얼거려본다.

넷째, 글 쓸 때의 호흡과 운율을 준비할 수 있다. 글을 낭독해보면 어떻게 계속하고 멈출지, 어디가 어색하고 막히는지 알게 된다. 같은 이유로 말해보고 쓰면 리듬을 살릴 수 있다.

다섯째, 말은 희한하게도 하면 할수록 양이 늘어난다. 어른들은 말이 많다. 말을 많이 해봐서 그런 것이다.

#2 나는 책을 '쓰지' 않았다.

나는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을 쓰지 않았다. 5년간 말했을 뿐이다. 청와대를 나오자마자 하마터면 쓸 뻔했다. '한겨레'에 청와대에서의 생활을 인터뷰한 기사가 실렸는데, 출판사 여러 곳에서 연락이 왔다. 인터뷰 내용으로 책을 쓰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다. 얼토당토않았다. '내가 무슨 책?' 당시만 해도 책을 쓴다는 걸 터무니없는 일로 여겼다.

다행히 그 후 5년간 책에 쓸 내용을 숙성시키고 여러 사람에게 검증받는 기회를 얻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내게 물었다. "청와대에서 겪은 재미있는 일화 없냐?",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분이냐?", "연설문은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오냐?", "연설비서관은 뭐 하는 사람이냐?" 등등. 수많은 질문에 답하면서 나도 모르게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걸 알게 되었다. 내 답변도 점점 나아졌다. 말이 진화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반응이 나쁜 말은 다음에 하지 않거나 다르게 말하고, 반응이 좋은 말은 기억해뒀다가 다시 써먹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리되었다. 그렇게 추려진 말들이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이 되었다. 그때까지 말해왔던 것이니 못 쓸 리가 없었다.

책을 쓰고 싶은 사람에게 먼저 말해보라고 권한다. 특정 주제로 열 시간 이상 말할 수 있으면 당장 책을 써도 된다. 예를 들어 자서전을 쓰고 싶으면 자신에 관해 말해보라. 열 시간 이상 말할 수 있으면 이미 책 한 권을 쓴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구술을 시작하면서 종종 이렇게 말했다. "받아 적지 말게. 지금은 받아 적어봤자 소용없네. 그냥 잘 듣게." 그러다 어느 순간 "지금부터"라는 말과 함께 받아 적기 시작하면 말이 아니라 글이었다. 그전까지는 말이 아니라 생각이었다. 그분은 말로 생각하고, 말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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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책을 쓰지 않았다. 5년간 말했을 뿐이다." data-captionyn="Y" id="i201444159"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200625/201444159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
#3 좔좔 나오는 말, 술술 읽히는 글

말한 것을 글로 바꾸면 그냥 쓴 글보다 술술 읽힌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구어체라서 쉽게 읽힌다. 독자는 눈으로 읽는 것 같지만, 머릿속에서 소리 내 읽고 듣는다. 누구나 읽는 것보다는 듣는 게 더 잘 쏙쏙 들어온다. 어려운 내용도 말로 설명해 주면 이해가 빠르다. 직장에서 보고서 내용이 잘 이해 안 된다는 상사에게 말로 설명하면 바로 알아듣고 이렇게 묻는다. "아, 그런 내용이에요? 그럼 그렇게 쓰지, 왜 이렇게 썼어요?"

둘째, 독자의 반응을 미리 알고 쓴 글이므로 쉽게 읽힌다. 보통은 글이 내 손을 떠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다음 독자의 반응을 접하게 된다. 그때는 이미 늦었다. 독자의 지적과 짜증을 듣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말을 해보면 이런 반응을 먼저 알 수 있고, 그걸 반영해서 쓸 수 있다.

셋째, 말은 꾸미거나 욕심을 부릴 여지가 없어서 쉽다. 말은 핵심으로 곧장 들어간다. 물에 빠진 사람은 "사람 살려"라고, 도둑을 본 사람은 "도둑이야"라고 외친다. 군더더기가 없고 생생하다. 그러나 글은 다르다. 더 아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잘 쓴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궁리한다. 그래서 글은 말보다 자연스럽지 않고 배배 꼬인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할 때 강의를 녹취해서 책을 만든 적이 있다. 유명 저자에게 책을 써달라고 하면 바쁘다며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두 시간짜리 강의를 다섯 차례만 해달라고 하면 승낙한다. 그 강의 내용을 녹취해서 정리한 다음 저자의 검토를 받아 몇 차례 수정을 거치면 책이 된다. 강의를 어려워하는 저자에게는 인터뷰를 권한다. 몇 회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해 분량을 채우면 책 한 권이 나온다. 

 
이렇게 말은 책도 만든다. 말해보고 쓰자.

더욱이 글은 말과 달리 고칠 수 있고 즉흥적으로 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못 쓸 이유가 없다.

* 편집자 주 : 강원국 작가의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법' 시리즈는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든 바로 써먹을 수 있는 말하기, 글쓰기 방법을 알려 드립니다. 격주 금요일 '인-잇'에서 만나보세요.

인잇 강원국 네임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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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국의 '말 잘하고 글 잘 쓰는법', 계속 이어집니다.
① [인-잇] 술술 읽히는 글쓰기? 입부터 먼저 열어라
[인-잇] 나는 '관종'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인-잇] 위기를 기적으로 바꾸는 말.한.마.디
                 
인잇 사람과 생각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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