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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군사행동 보류, 확성기 철거…북한은 왜 갑자기 선회했나?

[취재파일] 군사행동 보류, 확성기 철거…북한은 왜 갑자기 선회했나?
북한의 행동이 하루 만에 싹 바뀌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확성기를 설치하고 대남 비난 기사를 쏟아내는 등 대남 규탄 일색이더니, 오늘(24일) 아침 대남 군사행동계획을 보류한다는 당 중앙군사위 예비회의 결과가 나온 뒤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최전방 지역에서는 확성기가 철거되기 시작했고, 노동신문 등 매체에서는 대남 비난 기사가 사라졌습니다. '조선의오늘' 같은 대외 선전매체에서는 오늘(24일) 새벽 보도했던 대남 비난 기사들을 삭제하기까지 했습니다.

확성기 설치 사흘 만에 철거가 단행되고, 새벽에 보도했던 대남 비난 기사들을 급히 삭제했다는 것은 북한의 입장 선회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애초부터 김여정이 주도하는 대남 공세를 김정은 위원장이 주재하는 당 중앙군사위에서 보류시켜 악역과 선한 역할을 나누는 역할 분담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얘기입니다.

대남 군사행동을 하겠다는 총참모부의 계획을 북한 주민들이 볼 수 있는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 등에 그대로 공개해왔다는 것도 북한이 애초부터 극적인 입장 전환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근거로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최근 며칠 사이 북한에서는 지금의 대남 공세가 적절한 노선인지를 놓고 심각한 문제제기가 있었고, 어제(23일) 김정은 위원장이 전격적으로 입장 전환을 결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노동당 중앙군사위 예비회의서 김정은 위원장이 대남 군사행동계획 '보류'를 지시했다고 밝힌 노동신문 보도

● 북한이 바뀐 이유는

북한은 왜 갑자기 입장 전환을 결정했을까? 여기부터는 추정의 영역입니다. 다만, 북한이 갑자기 계획을 변경했다면 최근 상황의 변화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추론은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남한 쪽에서 있었던 최근 상황 가운데 북한이 예상하지 못했을 변수는 지난 17일 청와대의 강력한 대북 비판일 것입니다. 청와대는 당시 '몰상식', '사리 분별 못하는 언행' 등 강도 높은 문구로 북한을 비판했습니다. 남북 협력에만 매진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문재인 정부에서 예상외의 강한 대북 비판이 나온 것은 북한으로서는 예상 못 한 카드였을 것입니다. 북한은 아직까지도 청와대의 강한 대북 비판에 대해 직접적인 맞대응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청와대가 이렇게 강한 대북 비판 입장을 내놓게 된 이유 중의 하나인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이로 인한 남한 내 반북 정서의 확산도 북한에게는 고려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남한이라는 카드는 언젠가는 다시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자칫 남한이 완전히 돌아서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도 생겼을 것입니다.

지난 17일, 대북 입장 발표하는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 개성공단 군부대 진주 쉽지 않아

다음으로 북한 상황을 보겠습니다. 북한군 총참모부가 밝힌 대남 군사행동은 개성공단과 금강산으로의 군부대 진주, 철거 GP 복구, 접경지 군사훈련 재개, 대남전단살포 군사안전 보장 등입니다. 개성공단 지역에 북한군 수십 명이 나타나고 철거된 GP 지역에 북한군이 출현한 것은 실제로 이러한 행동 실행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개성공단에 군부대가 다시 진주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개성공단에는 남한에서 전기를 보내주는데 지금은 우리가 전기를 끊어버렸고, 북한군이 막사 새로 짓고 군부대 건설하려면 전기, 물 문제를 새로 해결해야 합니다.

개성공단에 군부대 전개를 반대했던 북한군 간부들이 명령 불복종을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는 북한 전문매체(데일리NK)의 보도도 있었습니다. 포병부대는 공격한 뒤 은폐하기 위한 방어시설이 필요한데 탁 트여있는 개성공단 지역에 포병부대가 배치되면 적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가 처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확성기 설치도 일선 북한군 부대 입장에서 보면 문제가 많습니다. 남한도 확성기를 재설치해서 확성기 싸움을 하면 절대적으로 불리한 것이 북한군인데, 이걸 먼저 설치하겠다고 나오니 일선 북한군 부대에서는 불만이 있었을 것입니다. 철거 GP를 다시 복구한다는 것도 장비가 부족한 북한군에서 선뜻 엄두가 안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일선에서 이런 불만들이 제기되니 군권을 최종적으로 행사하는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는 그대로 밀고 나가기가 부담스러웠을 수 있습니다.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한 야산 중턱에 설치됐던 대남 확성기 (사진=연합뉴스)

● 북한 향후 행동 좀 더 지켜봐야

물론 북한의 향후 행동은 좀 더 관찰이 필요해 보입니다. 대남 군사행동을 '취소'한 것이 아니라 '보류'한 것이고, 이미 1천200만 장이나 만들었다는 대남전단을 그냥 버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주민들에게 한껏 고취시킨 대남 적대 감정을 분출시킬 모종의 조치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잠시 쉬어가는 것인지, 기존의 정책 노선 오류를 수정하는 것인지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봐야 정확한 판단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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