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WTO 첫 여성 사무총장 배출 도전하는 한국…'개도국의 희망' 될까

노동규 기자 laborstar@sbs.co.kr

작성 2020.06.24 09:03 수정 2020.06.24 09:1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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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통상자원부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이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도전을 공식화했다. WTO 사무총장직은 유 본부장 스스로 오래 품어온 꿈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 최초로 산업부 1급·차관급 공무원에 오른 유 본부장이 당선될 경우, 164개국이 모인 WTO 역사상 첫 여성 사무총장이 되는 것이라고 산업부는 밝혔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 (사진=연합뉴스)
● 후보 등록 뒤 3개월 경주…코로나 사태가 변수

WTO 사무총장 선출은 후보자 지명 후 석 달 동안 진행된다. 최고기구인 각료회의 아래 3개 핵심 조직인 일반의사회와 분쟁해결기구, 무역정책검토기구의 의장이 모여 일종의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한다. 전임 사무총장의 사퇴로 갑자기 개시된 절차상, 유 본부장은 오는 7월 8일까지 입후보를 마친 뒤 3개월간의 경주에 돌입하게 된다. 한 달 안에 제네바 WTO 본부에서 회원국들을 상대로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하는 원칙과 전례에 비춰 유 본부장이 각국을 돌며 유세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3주 정도다.

제네바에서의 프레젠테이션과 질의응답, 기자회견 등을 거치면 각국의 선호투표는 하루 만에 이뤄지지 않고 몇 날 며칠간 시간을 두고 이뤄진다. 이미 나이지리아와 멕시코 등 국가도 후보를 낸 경선 상황. 각국을 상대로 처음 한 달 안에 한국 출신 사무총장이 나와야 하는 이유를 이해시키지 못한다면 일찌감치 탈락하고 남은 두 달을 다른 국가 후보들의 싸움만 지켜봐야 한다. 단,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이동이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 예년과 다르다. WTO 사무국은 올해 선거 절차를 어떻게 진행할지, 세부사항을 정하기 위해 각국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출, 무역, 경제 (사진=연합뉴스)
● 전쟁 폐허에서 무역 대국 된 한국…"개도국 지지 중요"

UN 반기문, WHO 이종욱 등 국제기구 수장을 여럿 배출한 한국으로서도 WTO 사무총장이란 자리가 가진 의미는 각별하다.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나라가 여기까지 오는 덴 자유무역의 힘이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닌 탓이다. 개발도상국에서 세계 10대 무역 대국이 된 한국의 사례는 그 자체로 자유무역 질서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셈이다. 164개 회원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개도국들에 있어 한국 출신 사무총장은 하나의 '희망'이 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통상교섭본부장 출신으로 그 자신 WTO 사무총장직에도 도전했었던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은 "제네바에 대사관도 못 내는 가난한 나라들이 많다"며 "이들 나라에 무역으로 성공한 한국의 경험을 공유하고 실효적인 무역 원조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어필하면 지지를 얻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1국 1표인 WTO에선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 강대국 못지않게 개도국의 지지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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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게 멈춘' WTO 바로 세울까…"정부 외교 지원 필수"

차기 사무총장에겐 유명무실해진 WTO를 바로 세울 막중한 책무가 놓여 있다. 중도 사퇴한 전임 호베르투 아제베두 사무총장은 앞서 한 외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지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 협상도 없고, 모든 것이 멈춰 있다." WTO의 현재 처지를 이보다 더 극적으로 보여주는 말이 없다는 평가다.

2차 대전 후 세계의 번영을 불러온 다자무역 질서지만, 일찍이 도하라운드 협상에 실패하며 각국은 개별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각자도생 중이다. 여기에 트럼프로 상징되는 스트롱맨들은 보호무역주의를 부추기며 WTO 체제를 고사시키고 있다. 차기 WTO 사무총장은 위협받는 다자무역을 붙잡고 전자상거래 등이 떠오른 21세기의 무역 규범까지 새롭게 정립하는 숙제를 떠안은 셈이다.

일본의 일방적 수출 규제로 분쟁 중인 우리로선 분쟁 해결 상소기구의 정상화도 중요하다. 거칠게 말해 WTO의 전부는 '분쟁 해결 권한'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지만 WTO의 대법원이라 할 상소기구는 미국의 위원 선임 반대로 공전 중이다. 줄곧 미국 등 강대국의 불만을 산 이 기구의 권한을 다른 회원국의 이해를 아우르면서 어떻게 재정의해야 하는지도 차기 사무총장 앞에 놓여 있는 고민이다.

박 전 본부장은 "(무역)분쟁 해결이야말로 큰 나라 작은 나라 할 것 없이 모든 나라가 관심 있는 분야로, 각국이 동의할 규칙만 잘 이끌어내면 분쟁 해결 기구 정상화가 어려운 과제만은 아니다"며 "방역 등으로 한국의 이미지가 좋아진 지금 정부의 외교적 지원이 더해지면 유 본부장의 WTO 사무총장 당선도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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