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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편 될 수 있다' 살생부 둔갑…70년째 묻힌 대학살

배정훈 기자 baejr@sbs.co.kr

작성 2020.06.22 21:11 수정 2020.06.23 09:2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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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올해는 6·25 한국전쟁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아직까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것 가운데 당시의 민간인 학살이 있는데, 저희가 이와 관련한 연속 보도를 준비했습니다. 

70년이 흐르며 피해 사실이 일부 확인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때 학살된 민간인이 얼마나 많은지, 그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먼저 배정훈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경남 마산항, 배 한 척이 떠납니다. 

1시간 걸리는 괭이 바다로 가는 길입니다. 

밤이면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해서 이름 붙여진 이곳에는 6·25 전쟁 발발 직후 민간인 700여 명이 수장됐습니다. 
 
6월이면 선상 추모제가 열리는데 올해로 13번째입니다. 

이곳에서 희생된 민간인들은 대부분 국민보도연맹 사건 희생자들입니다. 

[박재홍/창원 보도연맹 사건 피해자 유가족 : 속으로는 한번 불러보고 싶었지만 입으로는 안 나옵디다. 아버지라는 소리가, 아직은 한 번도 안 했습니다. 올해가 처음이었습니다. 70년 만에 처음 아버지라고 불러 봤습니다.]

보도연맹은 좌익 활동 경력자들을 교화하겠다며 1949년 4월 남한 정부가 만든 조직입니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자, 보도연맹 리스트가 살생부로 바뀝니다. 

최대 30만 명에 이른다는 보도연맹원이 북한 편이 될 수 있다며 군과 경찰이 이들을 집단 학살한 겁니다.

그리고 50여 년 뒤인 지난 2005년, 뒤늦게 보도연맹 사건 등 민간인 학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진실화해위원회가 꾸려졌습니다.

1만 명의 유가족이 진실 규명을 요청했고, 위원회가 활동한 4년여 동안 절반이 피해 사실을 인정받았습니다. 

[김동춘 교수/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발표 (2009년) : 매우 체계적으로 조직적으로 미처 체포하지 못한 연맹원들도 다 찾아서 학살했고.]

하지만 짧은 활동 기간 탓에 누가 왜, 얼마나 죽었는지, 또 누가 지시했는지 같은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6·25 전쟁 70년이 되는 올해,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진실 규명에 대한 계속된 요구 끝에 올 연말 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10년 만에 출범합니다.

[김동춘/성공회대 NGO 대학원장 : (보도연맹 사건은) 단군 이래로 한국 정부가 자국민을 이렇게 많이 학살한 예가 없어요. 단군 이래 최대 비극이에요.]

(영상취재 : 김용우, 영상편집 : 원형희, CG : 최재영, VJ : 정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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