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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공사 중단에 끝 모를 이자 부담 "빚만 갚다 죽게 생겨"

-다인건설 주거용 오피스텔 공사 중단 사태

다인건설 공사 중단 아파텔

▶ [관련 기사] 미완공 집 떠안은 5,000세대 "빚 갚다 죽게 생겼어요"

주거형 오피스텔 공사를 전국에서 벌이던 건설사가 자금이 없다며 곳곳에서 1년 넘게 공사를 멈춰 세웠습니다. 준공은 기약 없이 미뤄지는데, 시행사는 자금이 부족하다며 약속한 이자 대납도 더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매달 70만 원가량의 이자 청구서가 분양 계약자들 집으로 날아들기 시작했습니다. 손해를 감수하고 해약한 뒤 부담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시행사는 공사를 끝마친 뒤에야 돈을 돌려줄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재난 시국에 분양 계약자들은 덫에 걸린 것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기약 없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곳이 전국 각지에 5천여 세대가 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모두 도급순위 66위 다인건설과 같은 그룹의 계열 시행사가 벌인 주거용 오피스텔 사업입니다.

각지에서 피해를 호소하는 피해자들을 찾아가 봤습니다.

● "지옥이 따로 없어요" 노인·신혼부부 피해 집중

주거용 오피스텔은 아파트보다는 비교적 저렴하고 분양받기가 수월하다는 점이 매력입니다. 이 매력에 혹해 노후에 새집에 한 번 살아보려 했던 노인 피해자가 많았습니다. 또 교통이 좋은 중심지 상업지구에 자리 잡아 젊은 예비부부 분양자들도 많았습니다. 집이 안 지어지고, 매달 수십만 원의 이자가 나오는 것이 피해자들에게 심각한 경제적 타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다인 피해자 전 모 씨

대구 동성로 다인 로얄팰리스에 주거용 오피스텔을 계약한 58살 전 모 씨는 치매를 앓는 90대 노모의 임대주택에서 같이 살고 있습니다. 벌써 1년 전에 새집에 입주했어야 맞는데, 공사는 기약 없이 멈춰서 있습니다. 올해 초부터는 시행사가 대신 내주기로 약속했던 중도금 대출 이자까지 청구되면서 매달 70만 원씩 부담해야 했습니다. 배달하는 특수고용직이던 전 씨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2월 코로나19에 감염됐습니다. 다행히 병은 나았지만 불안정했던 일자리는 전 씨에게 다시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온전히 회복되지도 않은 몸으로 뙤약볕에 마늘밭에 나가서 이자를 갚기 위해 일해야 하는 전 씨는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합니다.

"일도 못 하고 있지 이자는 내야 하는데 나는 피가 더 마르는데 밥이 넘어가지도 않아요. 잠도 안 오고. 이게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니까요. 계속 이자만 내다보면 죽을 때까지 진짜 빚만 갚다 죽게 생겼잖아요. 지옥이 따로 없어요 진짜. 그렇게 잘못 산 것 같진 않은데."

다인 피해자 신용등급

멈춰 선 공사 현장은 신혼의 단꿈과 청년의 미래도 멈춰 세웠습니다. 울산 번영로의 다인건설 오피스텔을 분양받은 32살 강 모 씨도 만나봤습니다. 신혼집으로 쓰려고 집을 계약했다가 이런 상황이 생기면서 결혼은 기약이 없이 미뤄졌습니다. 예정대로라면 이미 입주해서 신혼의 단꿈을 키워갔어야 할 집은 공사가 중단된 채 멈춰있는 상황. 게다가 갑작스러운 이자 폭탄을 떠안게 되면서 중도금 대출과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신용 불량자 신세로 전락했다고 합니다.

기준금리 0.5%의 초저금리 시대에도 중도금 이자는 담보도 없는 집단 대출인 데다가 대부분 2금융권이라 2016년 무렵 계약 당시에 정한 6%대 고리가 적용되고 있었습니다. 피해자들이 금리라도 낮춰 달라, 이자를 미뤄달라며 각 금융기관과 개별적으로 협상에 나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인 건설

57살 박 모 씨의 20대 딸은 이번 일로 취업 길까지 막혔다고 합니다. 빠듯한 살림에 이자를 제때 내지 못하자 금융기관은 재깍 통장을 압류해버렸습니다. 월급 통장으로 쓸 수 있는 본인 명의의 통장이 없다 보니 회사가 이를 이상하게 여긴 겁니다.

"면접에 보러 가서는 합격을 하면 사실은 통장이 압류되어서 못쓴다고 이렇게 하면 애를 이상한 눈으로 보는 거예요. 입금을 받을 수 없다고, '어머니 계좌로 해주시면 안 되냐'고 하니, '그렇게는 안 된다. 미안하다. 우리하고 일을 못 하겠다.'고 이렇게 얘기를 하죠."

이자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손해를 보고서라도 계약을 해지하려 했지만 헛일이었습니다. 시행사 측은 해약할 때에도 건물이 준공된 뒤 입주하게 되면 그때 돈을 돌려주겠다는 입장입니다.

건물은 안 올라가고, 고리의 이자는 다달이 나오고, 이 고통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상황. 이렇게 공사가 멈추거나 입주가 미뤄지고 있는 다인 건설의 사업장은 부산, 대구, 울산, 양산, 창원 등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9곳, 약 5천 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다인건설 취재

● 잔금 선납 받은 시행사…'사기' 의혹도 제기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해 건설 사업을 벌일 땐 신탁사가 자금 관리를 대리해 공사 대금이 잘 집행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다인 그룹의 일부 시행사들은 2017년~18년 무렵 분양자들에게 우편물, 문자 등을 보내 잔금을 미리 내면 할인을 해준다는 행사를 벌였습니다. 많게는 12%까지, 상당한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제안에 여러 분양자들이 이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다인 건설 선납금

그런데, 안내된 입금 계좌는 자금 관리를 맡은 신탁사가 아니라 시행사의 계좌였습니다. 신탁사가 아닌 곳으로 입금한 돈은 대금을 낸 것으로 보장받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 몰랐던 분양자들은 분양 계약을 한 시행사 측의 안내에 따라 할인된 분양대금을 시행사로 입금했습니다.

다인건설 선납금

하남 미사신도시에 오피스텔을 계약한 한 50대 김 모 씨는 할인 혜택을 준다기에 아예 1억 4천만 원가량의 중도금까지도 대출을 받지 않고 모두 선납해버렸습니다.

"차라리 이자 받는 것보다 선납 할인받는 게 낫겠다 싶어서 입금했거든요. 그러고 나서 보니까 신탁사에 입금이 안 되면 인정이 안 된다 그러더라고."

김 씨는 오피스텔 준공 후 입주까지 했지만, 소유권을 넘겨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해줘야 하는 신탁사로서는 분양 대금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소유권 이전이 곤란하다는 입장입니다. 분양자들은 시행사로 들어간 돈이 공사에 제대로 쓰인 건지, 어디에 쓰인 건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 돈은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요. 집 짓는다고 받아놓고." (최 모 씨, 대구 동성로 분양계약자)

다인건설 피해자 김 씨

다인건설 분양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나선 이상현 변호사는 시행사의 이런 행위가 사기나 횡령 등 범죄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시행사가 돈을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시행사가 돈을 받게 되면 이 돈을 다시 신탁사에 교부하지 않는 이상 수분양자에 대한 사기 또는 시행사 회사 자체에 대한 업무상 횡령죄가 될 수 있습니다."

비록 계약서상으로 '신탁사 명의의 지정계좌에 입금해야 한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어도, 시행사가 그걸 알면서 할인조건까지 내걸고 돈을 직접 받은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이상현 변호사

"시행사가 결국에는 이 돈을 어디에 썼는지 해명을 해야 하는 거고 해명을 하지 못하면 결국 시행사가 수분양자를 속여서 그 분양대금을 편취한 것이기 때문에 사기죄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시행사가 이렇게 받아 챙긴 돈은 취재 과정에서 확인된 액수만 전국에 350여 명, 160억 원이 넘습니다.

▶ [관련 기사] "분양금 깎아준다" 솔깃한 제안…잔금 입 닦은 시행사

● 다인그룹 "이자 대납해 피해 줄이려고 선납 받은 것"

다인건설

시행사 측은 이렇게 미리 받은 돈을 이자 대납하는 비용으로 사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각지의 중도금 대출 이자를 잔금을 미리 받아내 메우려 했다는 겁니다. 돈은 없는데 이자 부담을 분양자들에게 돌리면 항의가 심하니 이를 일단 선납 받은 잔금으로 막아보려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받은 돈은 나중에 그만큼 덜 받으면 되니 큰 문제는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자금이 부족해 공사가 멈춘 이유에 대해서는 2017년부터 강화된 중도금 대출 규제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사업을 벌이던 중에 2017년부터 중도금 대출 규제가 심해지면서 집단 대출이 불가능한 사업장이 늘어났고, 이런 사업장들의 책임 준공을 위해 건설사가 자체 자금으로 공사를 진행하다 보니 자금 사정이 나빠졌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멈춰있는 사업은 개발신탁에 넘기고, 남은 사업장은 어떻게든 공사를 진행해 피해자들의 부담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끝까지 책임을 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다인그룹 김환기 이사 만남

다인그룹의 영남권 사업을 총괄하는 김환기 이사를 만나서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 [관련 기사] 건설회사는 자금난 핑계…오피스텔 분양 보증은 '선택'

● 예방책은 없을까? "선분양 금지해야"

이와 유사한 선분양 피해를 막기 위한 제도로 분양보증 제도가 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건설사들의 부도로 아파트 분양자들의 피해가 커지자 이를 예방하기 위해 정부는 분양보증 제도를 만들고 주택도시보증공사가 현재 이 제도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피스텔은 분양보증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200가구 이상의 아파트는 주택법에 따라 분양 보증이 의무화돼 있지만, 주거용 오피스텔은 이번 사례처럼 신탁 방식이나 분양 보증,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어 있습니다.

화강윤 cg

1인 가구 증가 등 생활환경의 변화와 함께 주거용 오피스텔 수요도 늘어나는 만큼 오피스텔도 분양 보증을 의무화하자는 논의도 있지만, 이 역시 쉽지 않습니다. 주택용으로 지어지는 아파트와는 달리 주거용 오피스텔은 주로 주택과 상가가 같은 건물에 들어가는 형태로 지어집니다. 그런데 상가는 주택보다 미분양 가능성이 더 높은 등 상대적으로 보증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분양 보증 도입이 어렵다는 겁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근본적으로 오피스텔에서도 선분양제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후분양제가 자리 잡지 않으면 이런 문제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겁니다.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피해자들, 국회에 호소

당장 지금 다인 로얄팰리스에 발이 묶인 피해자들은 각자 긴 소송 과정을 통해 돈을 받아내거나, 건물이 다 지어질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피해자들은 비상대책위를 꾸리고 지난해부터 집회와 언론 제보 등에 나서고 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의 수가 많은데도 한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지역별로 사업장이 흩어져있는 데다가 처한 상황도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느 지역은 건물이 준공 직전이고 어느 지역은 중간에 멈춘 상태라 피해자들의 입장도 제각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해지 계약을 맺고 환불을 기다리는 피해자와 공사가 재개돼 건물이 준공되기만을 기다리는 피해자들의 입장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다인건설 피해자

일부 피해자들은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에 고소하는 등 다인 그룹에 형사적인 책임을 묻기 위한 절차에 나섰습니다. 대구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오동석 다인 그룹 회장 등 관계자 3명을 입건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해 지역이 여러 곳이다 보니 담당 수사기관 역시 각지에 흩어져 있고, 수많은 피해자의 사례를 일일이 검토하려다 보니 수사 진행은 더디기만 합니다.

피해자들은 이제 정치권에 해결을 요구하고 나서기로 했습니다. 적극적인 수사와 이자 부담 경감, 공사 진행, 계약 이행 등을 요구하며 오는 7월 3일 서울 여의도의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집회를 벌일 예정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새로 출범한 21대 국회가 얼마나 귀를 기울일지 지켜봐야겠습니다.

* 취재 과정에서 정재은 스크립터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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