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북적] 이 여름, 모히또에서 하와이 한 잔? 하와이하다

권애리 기자 ailee17@sbs.co.kr

작성 2020.06.21 07:42 수정 2020.06.22 09:4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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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247 : 이 여름, 모히또에서 하와이 한 잔? <하와이하다>

"시장에서 배추나 사과를 고르는 심정으로 파도를 고른다. 마트에서 과일 모양을 보고 들었다 놨다 하듯이. 햇빛에 반짝이며 저 멀리서 밀려오는 파도의 미묘한 곡선을 보며 미리부터 탈까 말까를 결정한다. 어떤 게 더 맛있을지 재며 들었다 놨다 할 때의 기분과 다르지 않다. 세상에 파도를 고르다니. 벅차다. 영광이다. 태어나 처음 가져보는 느낌이다. 파도를 기다리며 파도를 고르는 시간. 길어도 좋다."

여름입니다.

올해의 여름휴가철은 어떤 모습일까요. 휴가철이 돌아왔다고 해서 떠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분들도 올해는 좀 더 많을 것 같습니다. 떠날 채비를 차릴 수 있는 분들이라도 단지 휴가를 위해 한국을 벗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거고요. 이런 세상이구나, 새삼 받아들이기 힘든 여름을 맞고 있습니다.

올해는 휴가가 아예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지막으로 갔던 휴가가 자꾸 떠오릅니다. 제 최근 휴가는 지난해 5월이었습니다. 난생처음으로 하와이에 가봤는데, 정말 오랜만에 새까맣게 그을릴 때까지 온 세상 햇볕을 다 쬐며 돌아다녔어요. 혼자 괜히 비장했을 정도로 큰 의미를 두었던 일도 하나 해치웠고요^^ '하와이'라고 누군가 말하면, 왠지 조금은 애틋해지는, 특별히 마음에 남은 그리운 곳이 됐습니다.

오늘 함께 읽고 싶은 책 [하와이하다]는 지난해에 이어 하와이가 제게 준 두 번째 선물입니다. 동화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선현경 님이 글을 쓰고, 역시 만화가이자 에세이 작가인 이우일 님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두 분은 부부입니다.

저는 이 책을 서점에서 우연히 보자마자 바로 집어 들었습니다. 내용에 대해 아무 사전 지식이 없었지만, 표지만 보고 망설임 없이 그냥 샀습니다. 책 제목이 '하와이 하다'인데, 저자 중에 '이우일'이란 이름이 있는 걸 봤거든요.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우일 작가의 그림을 참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최근에는 접해보지 못했어요. '하와이'와 '이우일'이라니, 저로서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하고 나서, 비로소 이 책을 함께 쓴 두 분이 부부라는 걸 알았습니다. 다 읽은 지금은, 글을 쓴 아내 선현경 작가님에게로 '팬심'이 좀 더 옮겨간 상태입니다.ㅎㅎ

마지막 장을 덮으며 "역시!" 하고 쾌재를 불렀습니다. '북적북적 가족들에게 당장 소개하고 싶은, 녹음 시간을 앞당기고 싶을 정도로 멋진 책을 이렇게 쉽게 발견하다니!' 후련할 정도로 신나는 기분이 첫 번째였고요. '참 좋아했던 그 그림들을 그리던 이우일 작가님은 역시나 이렇게나 어울리는 분과 부부가 되어 30년을 함께 하고 있구나…' 혼자서 괜히 뿌듯하게 기뻐지기도 했어요.

"하와이에서는 이상하리만치 방향을 잘 알았다. 나는 손으로 글을 쓰는 시늉을 해봐야 오른쪽이 어느 쪽인지 알아채는 어벙한 사람이다. 그런 내가 하와이에서는 좌우가 헷갈리지 않았다. 여기서는 좌우 대신 산과 바다를 말하기 때문이다. 요가를 할 때도 훌라댄스를 배울 때도 오른쪽 왼쪽이 아닌 산 쪽과(Mauka) 바다 쪽으로(Makai) 말했다. 좌우가 헷갈리지 않으니 집이 헷갈리기 시작한 걸까? 돌아가야 하는데 집이 어딘지 모르겠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우린 여기서 무얼 하며 지낸 걸까.

집밥을 해 먹고 책상에 앉아 일을 하며 십오 년간 함께 지낸 카프카(우리 고양이)까지 함께 있었으니 여행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걸 빌려 쓰는 처지라 현지인도 아니었다. 맑고 깨끗한 공기 덕에 코딱지마저 내 것 같지 않게 투명하고 하얬다. 이런 곳에서 무얼 했냐 하면 우린 '하와이하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포르투갈에는 '창문하다janealer'라는 동사가 있다고 한다. 그곳에는 창문을 통해 바깥세상을 만나며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창을 통해 다른 삶을 보고 생각하는 일. 우리도 하와이를 통해 다른 세상을 보고 서로를 생각했다. 우린 하와이 했다."


두 분은 그냥 훌쩍! 한국을 떠나 미국 포틀랜드에서 몇 년간 지내다가, 하와이로 옮겨 1년 10개월을 보냈습니다. 이 책은 아내인 선현경 작가가 써 내려간 하와이 생활에 대한 일기입니다. 이우일 작가님은 특유의 촌철살인 같은 대사가 조금씩 섞인 일러스트로 참여해요.

'그냥 어느 날 훌쩍 떠나 OO서 살아본 이야기'는 거의 하나의 부문을 이룰 만큼 많습니다. 이 부문에서 지금까지 제가 가장 사랑한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였습니다. 이 책은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하 수상하게 울려 댈 겁니다. 그리고! 한국에선 바로 이 책, [하와이하다]가 이제 막 탄생했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ㅎㅎ(지난해 가을에 출간됐습니다.) 잔잔하게 들려오는 이 파도소리와 우쿨렐레 소리, 쉽게 떠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 악기점에 들러 고민을 말하니 주인이 웃는다.
"너의 첫 우쿨렐레를 사고 싶다고? 세상에. 나라도 고민이겠다. 결정하기 힘든 게 당연하지. 그냥 매일매일 와서 아무거나 들고 쳐봐. 어느 날 이게 딱 나의 우쿨렐레다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거야. 사는 건 그때 해도 돼. 내 고객 중에는 그렇게 메일 와서 치기만 하다가 가는 사람도 많아."


"우일이 사 들고 온 그 판에는 젊었던 아빠의 애창곡이 다 들어있었다. 하도 들어서 내 입에서 가사가 술술 따라 나왔다. 벌써 삼십오 년도 넘은 일이다. 그후 한 번도 듣지 않은 노래를, 아무렇지도 않게 따라 부르고 있다. 그때는 몰랐다. 그날 이후 아빠의 사업은 틀어지고 병이 생겨 아빠가 일찍 돌아가실 거란 걸 알았다면, 그렇게 얼굴을 찡그리며 반주하지 않았을 텐데. 그 노래를 아빠보다 더 늙은 나이에 하와이에서 듣게 될 줄 알았다면 그때 그리 짜증 내지는 않았을 텐데.
노래 몇 곡으로 오랫동안 꺼져 있던 마음 한쪽 깊은 방의 스위치가 켜졌다. 시간여행을 다녀온 듯 어지러웠다. 매달 마지막 토요일이 나도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내 작은 방의 스위치를 켜고 보니 그의 수집이 조금은 달라 보인다. 우일도 내가 모르는 그만의 어릴 적이 그리워 옛 음반을 들이고 장난감을 사는 걸까? 짐이 또 이렇게 늘기만 한다며 구박했는데 문득 그가 이해되었다. 따져보니 가장 좋아했던 점을 살면서 가장 큰 결점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 결점이 내가 예전에 그를 사랑한 이유였는데 말이다.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라, 자리에 누울 때 벗는 모자처럼 피곤하면 제일 먼저 집어던지게 돼 있거든." 김애란의 단편소설 [가리는 손]을 읽으며 적어둔 말이다. 부부 관계란 품이 드는 일이다. 그동안 피곤해서 집어던져버린 이해를 이제야 다시 집어 들고 있다."
(선현경 작가의 이 경험과 아주 흡사한 경험을 해본 일이 있는 저는 이 단락을 읽으며 한바탕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런데 이 단락은 이 글만으로 완성되지 않아요. 단락단락마다 붙어있는 일러스트가 그야말로 빛을 발하면서 완성시켜주는 단락입니다. 이우일 작가는, 뭐랄까… '좀 눈치 없는 남편'처럼 본인을 그려 놨습니다. 주저앉아서 LP테이블에 판을 올리면서 "나 어린 시절 안 그리운데?" 깐족대는 느낌으로요 ㅎㅎ 그러면서도, 그런 자신을 바라봐 주는 아내 선현경 작가의 모습을 뒷모습으로 슬쩍 넣어 놓습니다. 그 일러스트가 이 단락을 읽는 기분을 정말 적절하게 마무리지어 줍니다. 마음 한 켠의 술렁임이 그대로인 채인데도, 눈물을 닦고, 슬그머니 웃으면서 책장을 넘길 수 있게 해 줍니다. 글과 그림의 하모니로 비로소 한 권의 책이 완성품이 되는 어떤 경지를 곳곳에서 보여주는 책입니다. 낭독만으로 일러스트는 보여드릴 수가 없어서 너무 안타까우니, 부디 직접 책을… ㅎㅎㅎ)

[먼 북소리]의 하루키는 젊다면 여전히 젊지만 실은 마냥 젊지만은 않기 시작하던 나이에 어느 날 유럽으로 훌쩍 떠나서, 때로 몰아치던 폭풍우와 마비의 감각을 딛고 자신 안에서 [노르웨이의 숲]을 길어 올렸죠.

[하와이하다]의 선현경-이우일 부부는 그보다 더 살아온 나이에 품 안의 딸까지 떠나보내고, 어느 날 훌쩍 하와이로 떠나 '먼 길을 돌아와 다시 내 안으로부터 일어서는' 시간을 차곡차곡 만들어 나갑니다. 나이 들어가는 삶을 생각하고, 잃어야 할 것들을 잘 잃는 태도를 생각하고, 하와이의 파도를 골라타며... 더욱더 풍요롭고 용감해진 자기 자신과 서로를 발견해 나갑니다.

[먼 북소리]보다 조금 더 소박하고, 훨씬 더 잔잔하고,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관계와 서로에 대해 꾸밈없는 질답을 이어나가는 책입니다.

[먼 북소리]처럼 북채로 가슴을 두들겨 온다기보다, 잔잔하게 조금씩, 통째로 스며듭니다. 담담하고 담백하게… 그러다 성큼 마음 깊이 다가서는 아내 선현경 작가님의 글에 절묘한 화음과 불협화음을 짜넣는 남편 이우일 작가님의 그림은 [먼 북소리]가 따라오지 못할 '플러스 알파'고요^^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에세이집 중, 제게는 앞으로도 단연 손꼽게 될 책입니다.

"걱정 돌이가 어떻게 그리 변한 것인지 물으니 우일이 말한다.

"지금보다 더 좋아지기를 바란다는 건 욕심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앞으로 내게는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가 없더라고. 시간이 가면 몸은 더 늙고 힘들어질 거야. 지구 환경도 더 나빠져 바다에 못 들어갈지도 몰라. 그래서 오늘에 충실하려고."
역시나 이번에도 어두운 미래를 상상한 그였다. 성격은 그대로인데 삶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 그래, 바라던 바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건 정신병 초기 증세라고. 다른 미래를 원한다면 지금 여기, 바로 이 순간부터 다르면 된다. 우린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좋은 오늘을, 함께 살아가겠구나."


아마도 몸으로는 떠나지 못할 이 여름, 이 책과 함께 떠나 하와이 해 보실래요? 쉘 위 하와이?

*출판사 '비채'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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