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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시간가치를 거스르는 마이너스 금리 6년…유럽에서는 무슨 일이?

[취재파일] 시간가치를 거스르는 마이너스 금리 6년…유럽에서는 무슨 일이?
● 유럽중앙은행(ECB)의 마이너스 금리 6년…효과는?

일반적으로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경제주체는 미래의 소비보다는 현재의 소비를 선호하고, 예금 증서나 채권보다는 현금을 선호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자 또는 금리는 당장 쓰고 싶은 욕망을 누르고 소비를 미래의 일정 시점으로 미루는 인내와 함께 미래 일정 시점까지의 불확실성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간이 길수록 더 높은 이자율로 보상을 하며, 미래 일정 시점의 자산가치를 현재의 가치로 산정할 때는 그 이자율로 할인해서 계산한다. 이자율은 아무리 내려가도 0% 밑으로는 내려갈 수 없다고 받아들여졌다.
유럽은행의 정책금리와 예대 금리 : 보라색 선이 예치금리 DFR
지난 2014년 6월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런 전통 경제학에서의 고정관념을 깨고 정책금리 DFR(Debt Facility Rate: 예치금리)을 제로에서 -0.1%로 내렸다. ECB는 2019년 9월까지 4차례에 걸쳐 0.1%p씩 정책금리를 추가로 내려, 현재 예치금리는 -0.5%이다. 금리를 0%로 낮추고, 돈을 무제한으로 푸는 양적완화에도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 우려가 해소되지 않자 '마이너스 금리'라는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동원한 것이다.

각국 중앙은행은 시중은행과의 거래에 적용하는 정책금리로 기준금리, 수신금리, 대출금리를 활용한다. DFR은 시중은행이 유럽중앙은행에 돈을 맡길 때 적용하는 예치금리이다. 시중은행들이 대출이나 투자를 하고 남는 돈 1만 원을 중앙은행에 맡기면, 1년 후에는 이자는 고사하고 원금에서 0.5%(50원)를 떼고 9천950원을 되돌려 준다는 얘기다. 유럽중앙은행이 시장에서 채권 등을 사서 조정하는 기준금리 MRO(Main Refinancing Operation) 금리는 0%에 고정돼 있다.

● 기업예금 금리는 마이너스…가계 예금 금리는 아직 플러스

유럽중앙은행(ECB)이 정책금리를 마이너스로 낮추기 시작한 지 이달로 만 6년이 됐다. 위 표에서 보듯 그동안 유럽시중은행들의 대출금리와 예금금리는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평균 대출금리는 1%대에 머물고 있다. 예금금리는 0%대로 내려왔지만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 금리다.
유럽은행의 기업대상 예금금리와 대출금리
2020년 4월 유럽은행에서 기업들이 신규로 대출을 받을 때 부담한 평균 대출금리는 1.48%이다. 2014년 마이너스 정책금리를 도입한 이후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지만 대출금리는 아직 플러스 선에 머물러 있다. 기업의 신규 정기예금 금리는 평균 -0.05%, 하루짜리 예금 금리는 0%이다. 기업들이 일정기간을 약정하고 예금을 하려면 이자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예치 비용을 내야 하는 것이다.
유럽은행의 가계 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지난 4월 유럽은행에서 개인이 집을 사려고 대출을 받을 때 적용받은 평균 가계대출 금리는 신규대출 기준으로 1.44%였다. 개인이 은행에 예금을 할 때 적용된 정기예금 금리는 신규취급 예금을 기준으로 평균 0.26%, 하루짜리 예금금리는 0.02%였다. 정책금리가 마이너스지만 가계의 예금금리는 아직 소폭이지만 플러스 선에 머물러 있다.
유럽 비은행기업의 예금금리 별 비중
위 도표에서 보듯이 기존 예금의 만기가 돌아오면서 평균 예금금리는 점차 낮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기업의 경우 신규 예금에 마이너스 금리가 적용되면서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받는 예금의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다.

가계의 경우 예금에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는 것에 대한 적법성 논란이 있는 데다, 예금인출을 우려한 은행들이 가계 예금에 마이너스 금리 적용을 꺼리면서 플러스 선상에 머물러 있다고 유럽중앙은행은 밝혔다. 하지만 예금금리가 플러스라고 할지라도 각종 수수료 등 비용을 감안하면 실제 예금자들의 손익은 마이너스일 수 있다.
유럽은행의 현금 보유량 : 노란색 선
● ECB, "마이너스 금리, 대출과 투자 확대로 물가안정과 경기진작 효과"

유럽중앙은행(ECB)는 지난 5월 13일자로 발표한 '마이너스 금리와 통화정책의 효과(Negative rates and the transmission of monetary policy)' 보고서에서 지난 6년 동안의 마이너스 금리정책이 금융시장 불안을 완화하고, 디플레이션 우려에 빠졌던 물가를 안정시키는 한편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다.

이자 마진이 감소해 은행의 수익성이 악화될 것으로 우려했지만, 부실 대출이 줄고 대출의 절대 규모가 확대된 데다 자산 가격이 상승했다는 분석이다. 마이너스 금리가 은행의 수익성에 미친 영향은 중립적이었다는 것이다.

마이너스 금리가 확대될 경우 예금을 꺼리고 현금을 선호해 통화가 사장되는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아직 급격한 예금 이탈이나 현금 사장(Cash hoarding)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위의 도표에서 보듯이 은행들이 초과 지준을 중앙은행에 예치하지 않고 보유하는 경우가 증가하면서 은행의 현금 보유규모가 늘었지만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부동산 구입을 위한 대출이 늘어나고 위험 자산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면서 자산 버블이 형성된 곳이 있지만, 부동산 담보대출 비율 LTV와 대출상환비율 DSR, 대출 만기 조정 등을 통한 시장 안정 정책으로 관리해 큰 문제가 없었다고 평가했다. ECB는 금융기관들에 대한 건전성 감독을 통해 위험 자산에 대한 지나친 투자도 적절하게 관리했다고 진단했다.
유럽기업들의 투자 : 노란 선이 유동자산이 많은 기업의 투자로 증가세다.
● 마이너스 금리, 자산버블 형성과 통화 사장 우려도

마이너스 금리가 확산됨에도 불구하고 예금인출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금융기관에 돈을 맡김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자산관리와 결제의 편리성이 이자 손실보다 더 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마이너스 금리가 장기화하고, 현재 -0.5%대인 정책금리가 더욱 하락할 경우 은행에 돈을 맡기기보다 현금을 찾아 스스로 보관함으로써 손실을 줄이려는 욕구가 더욱 커질 수 있고, 이는 통화 사장(Cash Hoarding)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대출을 받아 주식이나 부동산 등 위험 자산을 매입하는 투기가 늘어나면서 자산 버블이 형성되고,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자소득이 줄면서 연금 생활자들의 소득이 줄고, 이는 소비위축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기업들이 구조조정보다는 차입을 선택해서 좀비 기업을 양산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오는 2022년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하겠다고 밝힌 미국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마이너스 금리의 전달 경로나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면서 마이너스 정책금리의 도입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예금에 징벌적 이자를 부과하고 대출에는 오히려 이자를 얹어줘 권장하는 마이너스 금리는 언제라도 역효과 날 수 있는 만큼 치밀한 모니터링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지속적으로 내리면서 지난 2008년 연 5%를 넘었던 기준금리는 현재 0.5%로 제로 수준에 근접했다. 세계적인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들이 발행한 채권도 매입하기로 하는 등 통화공급도 확대하고 있다. 금리인하와 통화공급 확대에 힘입어 수도권의 부동산 시장과 주식시장은 코로나19 팬데믹과 글로벌 경기침체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다.

마이너스 수준까지 금리를 낮추고 유동성을 무제한 지원하며, 국민들에게 현금까지 지급하는 세계 각국 정부의 경제정책은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기준, 뉴노멀(New Normal)이 됐다. 부실기업까지 지원하는 이런 정책에 힘입어 세계의 금융시장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경기침체에도 금융시장이 활황 장세를 보이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금융시장과 실물경제가 따로 움직이는 'Great Divide(대 이반)'로 표현했다. 풀린 돈이 실물경기 진작으로 이어지지 않고 금융시장에서만 돌고, 자산 가격의 상승을 유발해 빈부격차를 확대하는 현상도 대변하는 말이다.

하지만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이 말했듯이 '해수욕장에 물이 빠지고 나면 누가 팬티를 입지 않았는지 아는 법'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무엇이 거품이었는지, 위기에 제대로 대응한 가계나 정부, 기업과 그렇지 못한 경제주체 사이에 옥석도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역대 최대 규모로 풀린 돈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경우, 이는 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부채가 많은 기업과 가계에 타격을 주고 금융시스템에 위협을 가할 수도 있다.

초저금리와 통화팽창이 유발하는 부작용을 치밀하게 감시하고, 비효율과 낭비를 최소화하면서 적재적소에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 정책이 의도한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철저한 대책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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