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무엇에도 길들여지지 않은 김훈, 목놓아 울다

윤춘호 (논설위원) 기자 spring84@sbs.co.kr

작성 2020.06.20 09:34 수정 2020.06.26 14:2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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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영훈 제공)
그의 매력은 수컷의 매력이다. 전혀 길들여지지 않은 수컷의 매력이다. 그의 아버지도 그의 어머니도 그를 길들이지 못했다. 학교도 신문사도 그를 길들이지 못했다. 대학은 2년 만에 때려치웠고 신문사도 몇 번이나 걷어차고 나왔다. 종교도 그를 길들이지 못했고 사나운 권력도 그를 길들이는 데 실패했다. 그를 길들인 게 있다면 가난과 밥벌이의 고단함이다.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소설가 김훈 (사진=JTBC 뉴스 캡처)
1. 2015년 10월 그가 책 한 권을 들고 JTBC 뉴스룸에 출연했다. 김훈은 두 팔꿈치를 탁자 위에 올리고 상체를 앞으로 구부정하게 굽힌 자세로 말을 이어갔다. 방송에서 보기 드문 자세였다. 방송 경험이 많은 사람도 생방송이 진행되는 뉴스 스튜디오에 들어가면 긴장한다. 각종 조명 장치와 카메라와 방송 장비가 가득한 스튜디오는 일반인들이 좀처럼 접할 수 없는 낯선 곳이다. 여기에 생방송에서 자칫 실수라도 하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더해지면 출연자들은 긴장하고 몸이 굳어진다.

뉴스 스튜디오에 들어서는 순간 출연자는 포로가 된다. 정확히는 방송 진행자, 뉴스 앵커의 포로가 된다. 뉴스 스튜디오 안에서 그의 편은 아무도 없다. 출연자는 아무런 선택권도 없다. 앵커가 묻는 말에 답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한다. 방송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화면에 비치는지 알 수 없고 이를 살피거나 따질 여유도 없다. 당장 눈길을 어디에 둬야 될지 손은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당황스러울 뿐이다. 누가 그런 것을 가르쳐 주지도 않고 가르쳐 줘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때 앵커가 손을 내밀면 그 손이 구원의 손처럼 느껴진다. 그 손을 잡는 순간 그는 무장해제 된다. 이제 전적으로 앵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앵커가 말하는 대로, 요구하는 대로 따른다. 뉴스 앵커의 힘이 여기에서 나오고 방송사의 권력이 여기에서 시작된다.

그날 김훈은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긴장이란 남의 시선을 의식할 때 생기는 것인데 그는 사람의 눈이건 카메라의 눈이건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의 구부정한 자세는 그가 긴장하지 않았다는 표시이자 내가 당신들의 포로가 아니라는 선언이었다. 뉴스 스튜디오에서는 이래야 한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요구를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라며 삐딱한 동작 하나로 단호하게 거부해버렸다.

손석희는 출연자를 좌로 돌리고 우로 메치며 뉴스를 장악하는 재주가 특출난 사람이다. 뉴스 스튜디오 안에서 모든 것을 지휘하며 그 자신이 곧 뉴스가 되어 버린다. 그날은 달랐다. 출연자를 손아귀에 쥐려는 그의 몇 번의 시도는 별 성과 없이 끝났다. 손석희는 비실거리며 자주, 헤프게 웃었다. 전혀 길들여지지 않은 수컷 앞에서 잘 길들여진 수컷이 꼬리를 내렸다. 두 사람의 대결은 싱겁게 승부가 갈렸다. 김훈의 그 삐딱한 자세 하나로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김훈은 남의 우리 안에 들어와서도 자기의 룰로 싸우는 사람이다.

2. 1973년 한국일보에 입사한 이후 TV저널, 시사저널, 국민일보, 다시 한국일보, 다시 시사저널, 한겨레를 전전했다. 스무 번 사표를 냈고 여섯 번 직장을 바꿨다. 사표를 낸 이유는 늘 똑같았다. 동료들과의 불화 때문이었다. 후배일 때는 선배와 불화했고, 선배일 때는 후배와 불화했다.

그는 불화의 원인은 전적으로 상대방에게 있었다고 말했다. (2002년 월간조선 오효진 인터뷰) 자신의 잘못은 전혀 없고 남들이 다 잘못했다는 것인데 그가 혈기 방장했고 유난히 위악을 떨던 시절의 주장이라 지금도 그리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의 불화는 길들인 자와 길들여지지 않은 자들 사이의 불화였고 그는 갈등을 견디질 못했다. 아니, 견디지 않았다. 그는 수시로 때려치웠고 걸핏하면 사표를 던졌다. 그나마 언론사였으니 그의 야생성을 조금이나마 인정했을 것이다. 만약 그의 어렸을 때 희망처럼 전자회사에 들어가 생산라인을 관리하는 임원이 되었더라면 그의 인생은 지금보다 훨씬 더 허랑방탕해졌을 것이다.

장명수 전 한국일보 사장 같이 품이 넓고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해준 선배를 만난 것이 인생의 지복이었다. 장명수는 김훈이 무슨 큰 상을 받는 자리에 참석해 축사하면서 김훈은 비상한 문장만큼이나 생각과 행동도 비상한 후배였다고 회고했다. 말이 좋아 비상한 생각과 행동이었지, 사실은 함께 일하기 힘든 고약한 후배였다는 말을 그렇게 에둘러 표현한 것일 텐데 그런 장명수를 김훈은 "나를 가슴에 품고 젖을 먹이면서 길러준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

2004년, 이제는 제목만으로도 전설인 한국일보 문학기행 연재 기사를 책으로 묶어내면서 김훈은 장명수에 대한 고마움을 그답지 않은 나긋나긋한 언사로 적어내고 있다. 네 쪽 정도의 짧은 서문에서 장명수란 이름을 여섯 번 부르고 장 선배, 장 부장이란 말은 열 번이나 적었다. 장명수는 이를 자랑해도 좋을 것이다.

저자의 눈이 불량기가 있으니 기자 할 만하다며 고졸인 김훈을 받아준 한국일보 창업주 장기영이 김훈을 기자로 입문시켰다면, 저자가 행동과 생각은 괴팍하나 문장만큼은 비상하다며 그에게 기회를 주고 판을 깔아준 장명수는 그를 기자로 완성시킨 사람이다. 장기영이 그를 알아보았고 장명수는 이 거친 준마를 다룰 줄 알았다. 두 명의 장 씨가 우리 시대 최고 문장가를 만들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장기영이나 장명수 같을 리 없었다. 그는 어느 회사에 있든 "조직 내의 섬 같은 존재"였다.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았고 남이 다가오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혼자 밥 먹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혼자 있는 것이 더 편하고 더 좋았단다. 그의 지인의 말을 빌리면 그는 "혼자 놀 때 깨가 쏟아졌다".

그는 자신을 묶어두고 길들이려는 모든 시도에 대해 적대감에 가까운 경계심을 보였다. 그를 '관계'로 묶어두려는 사람들을 의심했고 '제도'의 틀 안에 갇혀 있는 것을 못 견뎌 했고 무엇보다 '연대'라는 명분을 앞세워 무리 짓기를 일삼는 자들을 경멸했다.

"나는 쫓겨나고 제외되고 고립되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아요. 누가 나를 욕한다고 해서 고유한 내 자신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도 아니에요. 반대로 내 편이 많다고 해서 아늑함을 느끼거나 든든함을 느끼지도 않아요." (2019. 9. 고려대 강연)

3. 지난 4월, 그가 길바닥에 주저앉아 배달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받아 적고 있었다. 단돈 몇천 원을 더 벌기 위해 신호를 무시하고 목숨을 담보로 잡힌 채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사연을 취재하고 있었다.

지난 4월 29일 라이더유니온 총회에 참석한 소설가 김훈 (사진=연합뉴스)
코로나 와중에 건강이 좋지 않아 수시로 병원을 오가던 때였다. 그의 취재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오히려 더 구조화되고 토착화되고 있는 빈곤 문제를 지적하고 눈비 오는 날에 고작 100원을 더 주면서 이들에게 목숨을 걸라고 우리 사회가 요구해도 되는 것이냐고 묻는 기사로 이어졌다.

그는 생명안전시민넷이라는 시민단체 공동대표로 활동 중이다. 청년들 일하는데 이름만 빌려준 거라지만 그의 삶에서 이런 일은 초유의 일이다. 한국일보에 갓 입사한 올챙이 기자 시절 "나는 일체의 깃발을 혐오하는 자다"라고 호기롭게 선언한 이후 어느 단체나 조직에 소속된 적이 없던 그다.

그가 지난달 시민단체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지인에게 정말이냐고 몇 차례나 물었다.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그의 모습을 확인하고서도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그가 참여한 집회는 재난사고, 산업재해 피해자 가족들과 함께한 자리였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5월 7일 안전 사회 위한 정책 과제 제안 기자회견 중인 소설가 김훈 (사진=연합뉴스)
"우리 사회는 이 일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 다 압니다.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하느냐에 대한 방안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어디로 가면 문제가 해결되는지 갈 길이 뻔히 보이는데 그런데 우리는 그 길로 가지 않습니다. 그 길로 지금 가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간단한 이야기를 오늘 이 자리에서 하는 것입니다."
(2019. 5. 7. 청와대 앞 시위)

최근 2~3년 사이 일용직 건설 노동자를 비롯한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그의 발언 수위와 빈도와 집요함은 놀랍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하고 때로는 낯설다. 깃발을 들고 선봉에 서고 무리를 짓는 것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누구는 이런 그를 두고 보수에서 진보로 뒤늦게 개종한 거 같다고도 했고 어느 독설가는 김훈이 고상하게 진보의 위선에 침을 뱉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김훈은 언어에 집착하는 나머지 사회의식이 박약한 거 아니냐는 비판이 있는데?"

2007년 도올 김용옥이 이렇게 물었을 때 김훈은 분명히 이렇게 답했다.

"사회의식? 그 무슨 말라빠진 사회의식입니까? 돈 많은 사람들이 존경받는 사회를 만들어주고 그들로부터 세금을 뜯어내는 것이 나은 겁니다. 저는 인간의 바탕은 개별적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공동체적 존재라는 전제하에서 주장되고 있는 모든 가치가 개별적 존재 속에서 구현되지 않으면 공허한 것입니다." (2007. 4. 중앙일보)

불과 몇 년 전까지 그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폭력과 악이야말로 세계의 근본적 바탕이라고. 약육강식의 법칙을 벗어나려는 일체의 시도가 실패했다고, 약육강식의 제도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그러니 도덕 따위 운운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랬던 그가 이제 참혹하게 죽은 사람들의 영정 앞에서 소리 내 운다. 모든 깃발을 혐오한다던 그가 연대의 깃발을 들고 핍박받는 자들과의 연대를 촉구한다.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바치는 그의 글은 이 시대 명문 중의 명문이지만 공사 현장에서 떨어져 숨진 일용직 노동자들을 애도하는 그의 조사는 글을 넘어 아예 통곡이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그가 이 초라한 죽음들 앞에서 통곡을 한다. 목을 놓아 운다. 대통령님, 총리님, 국회의장님, 검찰 총장님의 소맷자락을 잡고 통곡한다…. 재벌 회장님, 전무님, 상무님, 추기경님, 종정님, 보수 논객님, 진보 논객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운다. 아이고, 아이고 목놓아 운다. 제발 살려달라고 이 가여운 목숨들 제발 살려달라고 땅을 치며 울고 떼굴떼굴 뒹굴면서 운다. (<김훈, 죽음의 자리로 밥벌이 간다> 참조 2019. 11. 25. 경향신문)

세상의 근본 바탕은 폭력과 악이라며 짐짓 야만을 당연시하던 김훈이 이렇게 운다. 세상은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것이라고, 약한 자는 먹히고 강한 자가 먹는 것은 빼도 박도 못할 운명이라고 태연히 말하던 그가 이렇게 서럽게 운다.

4. 무엇이 이 초라하고 작은 죽음 앞에서 그를 울게 만들었을까. 그에게 그 이유를 듣고 싶었으나 그는 물을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는 인터뷰 요청을 다소 퉁명스럽게 거절했다. 그나마 전화로 거절하는 이유를 설명해준 것을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중간에서 말을 넣어준 사람의 얼굴을 봐서 그랬을 것이다.

그는 느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 중간중간을 끊어가면서 거절의 이유를 설명했다.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자 한 자 읽는 거 같았다.

"책이 나와서… 신간이 나와서… 신간 관련해서는 인터뷰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신간이 나와 있는 동안은 제가 매체에 나오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서 당분간 안 하려고 합니다. 신간이 서점에서 사라지면, 독자들의 생각에서 잊혀지면, 그때 인터뷰를 하려고 합니다. 책의 기운이 없어진 다음에 인터뷰를 하겠습니다."

한 번 더 생각을 해주실 수 없느냐, 신간에 대한 인터뷰가 아니다, 당신이 신간을 냈는지 어땠는지 별 관심이 없다, 당신의 문학이 아닌 당신의 삶에 대해 관심이 있을 뿐이라고 말하려고 하였으나 그의 목소리를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듣고 나니 그러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그의 거절은 단호해서 재고의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어느 매체와도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던 그가 기자간담회를 하기로 한 것은 출판사 대표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간곡한 요청 때문이었다. 사람 사는 일이란 내 주장만 고집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단다.

지난 16일 새 장편소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 나선 소설가 김훈 (사진=연합뉴스)
지난 16일 오후, 서울 마포 합정동 기자간담회장에 한 노인이 들어섰다. 어깨가 구부정했다. 40여 명의 기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자를 눌러 쓰고 헐렁한 셔츠를 입은 그가 노란 메모지를 보면서 신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의 발언 도중 잘 안 들린다는 기자들의 항의가 잇따랐는데 그것은 음향 시설이나 마이크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의 말을 듣는 이에게 분명하게 전달하겠다는 의지 자체가 없었다. 그는 마지못해 이 자리에 나왔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했다. 물론 쇠잔해진 기력 탓일 수도 있겠다.

그의 발언이 끝나고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거의 주지 않은 채, 마치 자기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처럼 답했다. 그의 말하는 속도가 글 쓰는 속도와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기자들이 그에게 무엇을 어떻게 물어야 할지 난감해하는 듯했다.

지난 16일 새 장편소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 나선 소설가 김훈 (사진=연합뉴스)
그가 답을 하는 동안에 기자들의 컴퓨터 자판 소리가 중간중간 끊겼다. 그의 말을 잘 못 알아듣고 있다는 의미였다. 말이 어렵기도 했지만, 발음 자체가 명료하지 않았다. 대여섯 명쯤 질문을 한 뒤 누군가가 선생님 힘드시니 그만하자고 했다. 그 제안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5. 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가 따뜻하고 다감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나이가 많든 적든, 지위가 높든 낮든 누구에게도 말을 놓지 않는 예의 바른 사람이라는 증언 역시 공통된다. 먼저 사람을 찾지는 않지만 오겠다는 사람, 특히 후배들은 막지 않는다는 말은 다소 뜻밖이었다. 자기 글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서 단 한 글자도 손대지 못 하게 할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단다. 같이 일하기 편한 작가, 신뢰할 만한 작가라는 말도 생각하지 못한 평가였다.

"책 편집 때문에 열 번 전화해도 백 번 전화해도 귀찮다 하지 않고 다 받으세요. 저희들이 말하는 것을 흔쾌히 수용하세요. 고맙다는 말을 이렇게 많이 하는 어른을 본 적이 없어요. 전화를 할 때마다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마음이 차가운 사람이라면 이럴 수 있을까요?" (소설 '남한산성' 편집자 A씨)

초등학교 다니는 지인의 딸에게 마흔여덟 가지 색깔의 크레파스를 선물하는 따뜻함이 있고 오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 출발을 하는 후배의 사무실을 불쑥 찾아 격려하는 말 많지 않은 아버지 같은 자상함도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요 몇 년 새 노동 문제에 대한 그의 관심과 행동은 느닷없는 일이 아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소외되고 연약하고 보호 받지 못하는 우리 사회 약자에 대한 관심이 조금 더 확대되고 강화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측은지심의 확대일 뿐 새로운 운동의 시작도 진보로의 개종도, 진보에 대한 우아한 야유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적잖은 인터뷰 가운데 묻는 자와 답하는 자의 균형이 잡힌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2002년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을 받고 난 뒤 오효진과 가진 인터뷰, 또 하나는 2014년 전직 기자들과 가진 질문과 답변이 그런대로 균형이 맞는 인터뷰다.

다른 많은 인터뷰에서 묻는 자들은 답하는 자의 위광에 지레 겁을 먹고 그의 눈을 제대로 마주 보지 못하고 주눅 들어 받아 적기 바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때로는 거만한 황제처럼 때로는 게으른 교주처럼 답을 흘렸다. 그가 흘린 답을 묻는 자들이 주워 담기 급급했다.

자유인의 냄새, 퇴폐적인 수컷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는 교주가 되기에 딱 좋은 자질을 갖추고 있다. 김훈의 왕국에서 그를 교주처럼 떠받들며 그의 신민으로 살겠다는 사람이 적어도 수만 명은 될 것이다. 잠재적인 교도들의 존재조차 거추장스럽게 여기고, 교주가 돼 달라는 그들의 애원을 애써 무시하던 그가 새삼 이름을 탐하거나 명예를 얻기 위해 깃발을 들고 나섰을 리는 없다.

"나는 되고 싶은 게 별로 없어요.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욕심도 없어요. 그런 목표 자체가 없어요. 글을 통해 여론을 형성하겠다는 목표, 그런 허영심이 없어요. 나의 논리 앞에 남을 대령시키려는 의도가 없어요. 말을 가지고 남과 정의를 다투려는 의도가 없어요. 그저 나 자신을 표현하고 싶을 뿐이에요.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의 전부예요" (2014. 10. 한국언론문화포럼)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광고 한 편 찍자는 제안을 받고 100억 원 주면 찍겠다는 말로 거절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 자리 저 자리 맡아달라는 여, 야 정치권의 구애에 대해서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칭찬 들어 마땅한 일을 해놓고도 전혀 티를 내지 않는다. 대대로 한양 하고도 사대문 안에서만 살았다는 것을 은근히 자랑하는 귀족주의의 옅은 흔적이 그런 데서 보이기도 한다.

6. 완고하고 뻣뻣하기만 하던 그가 수굿해졌다. 예를 들면 그의 이런 말은 얼마나 낯선가?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게 목표고, 죽은 뒤에 친절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2015년 신동아 김호기 인터뷰)

그는 최근 펴낸 소설에서 돈몰(旽沒)이란 단어를 썼다. 나이 든 노인이 새벽에 강물을 따라 어느 날 문득 조용히 사라지는 것,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왕은 별이 맑으니 새벽바람을 쐬러 가자고 말했으나 쪽배를 타고 나하가 닿는 하구 쪽으로 스스로 사라지려는 것이었다. 오래전에 끊긴 돈몰(旽沒)의 풍속을 따라 왕은 나하 하구 명도에 자신의 백골을 버릴 작정이었다." (김훈, 달 너머로 달리는 말)

그가 꿈꾸는 삶의 마지막이 돈몰(旽沒)일 텐데 거기에 이르기 전까지 그는 관념이 아닌 삶의 실체, 구체적 일상을 가지고 놀고 싶은 모양이다. 오랫동안 생각을 가지고 놀던 그가 이제 사람의 몸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는 것이다.

지난 16일 새 장편소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 나선 소설가 김훈 (사진=연합뉴스)
Q. 무엇을 더 쓸 작정인가?

"여생의 시간을 아껴서 사랑과 희망, 인간과 영성, 내 이웃들의 슬픔과 기쁨, 살아 있는 것들의 표정에 관해서 말하고 싶다." (2020. 6. 16. 기자간담회)

수컷에게는 수컷의, 암컷에게는 암컷의 본성이 있고 그 본성을 따르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나 자신의 슬픔과 아픔을 남에게 드러내고 보이는 것은 못난 자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그는 완고한 보수주의자이다. 노동 문제에 대한 그의 각별한 관심 역시 약자에 대한 연민과 동정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지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를 회복하기 위한 '운동'은 아니다. 올해 73살, 이제 노년의 지경에 이른 그에게 사고의 변화를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노년으로 접어들면서 아픈 거야 당연한 거고 육친을 보내는 아픔도 피할 수 없는 일일 텐데 그런 일 겪으면서 김훈은 사는 일의 경건함을 자주 생각하나 보다. 경이로운 생명들이 돈 몇 푼 때문에 어이없고 비참하게 스러지는데 그 죽음 앞에서 우는 이 적고 그런 죽음 막자고 외치는 사람이 없으니, 그 죽음 앞에서 나라도 울고 그 죽음 막는 일에 나라도 나서야겠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는 지금 어떤 강을 건너고 있다. 강의 저쪽과 이쪽은 바로 지척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근본적인 거리다. 약육강식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하는 것과 약육강식의 제도화, 토착화만은 막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른 이야기다. 그의 말과 행동이 어디까지 나아갈 것인지 지켜볼 만한데 분명한 것은 가난이 그를 길들였다면 이제 세월이 그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 윤춘호 기자가 전하는 '그, 사람' 지금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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