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어디?' 뉴욕과 서울사이에서 '리얼'하게 맞잡은 손
지난달 말 서울 강남구의 한 오피스에서 VR기기를 머리에 썼습니다. 증명사진을 입력하자 저를 닮은 3차원 캐릭터가 1분 만에 만들어졌습니다. 뉴욕에서 '스페이셜'이라는 스타트업을 이끌고 있는 이진하 대표 역시 VR기기를 쓰고 자신이 개발한 스페이셜의 가상공간에 접속해 저를 초대했습니다. "안녕하세요?" 2m 눈앞에 나타난 이진하 대표는 반갑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고 저도 핸드 컨트롤러를 움직여 그의 손을 맞잡을 수 있었습니다. 시각은 상당히 '리얼'한데, 촉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참 오묘한 느낌이었습니다. 현실 세계가 아닌 것은 알겠는데, 3차원 그래픽 게임을 할 때처럼 그 세계에 저도 모르게 몰입됐습니다.
3차원에서 디자인 협업을?
이진하 대표 "코로나19 잦아들 때까지 스페이셜 무료접속 제공"
스페이셜은 시험 단계가 아니라 이미 상용화 단계입니다. 바비인형으로 유명한 마텔사에서는 제품 콘셉트 디자인을 할 때 이미 이 3차원 공간을 통해 원격 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사도 스페이셜의 주요 파트너입니다. 스페이셜은 원래 기업들이 유료로 쓰는 솔루션이었지만 이 대표는 코로나19가 잦아들 때까지 누구나 무료로 접속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고 지난 5월 발표했습니다. 포춘 1000대 기업 중 30%의 기업들이 문의를 해 온 상황이고 이중 10%가 스페이셜을 이미 사용해봤다고 합니다. 실제로 써본 사람들의 반응을 묻자 이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것 같은 경험, 고립감 해소"
"줌(zoom) 같은 화상 미팅의 경우 정보를 주고받는 데는 유용하지만 장시간 이용하면 집에 혼자 있는 그 고립감까지 해결해 주진 못하잖아요. 그런데 스페이셜은 실제 오피스에서 함께 일하는 것 같은 경험을 주기 때문에 고립감이 없어지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편하다는 반응을 자주 듣습니다. 또 다른 장점은 화상채팅을 할 때는 한 번에 한 화면만 공유하지만, 스페이셜에선 동시에 여러 화면, 여러 3차원 피사체를 늘어놓고 작업할 수 있다는 거죠. 실제 오피스에서 일할 때처럼요."
VR기기가 주는 '피로감'의 한계, AR 글래스로 극복?
원격협업 수요 폭증…일하는 방식의 진화 어디까지?
물론 한계점도 있습니다. VR기기를 30분 이상 쓰자 땀이 흘렀고, 눈도 피로해져 오래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대표는 3차원 가상공간 협업과 관련해 VR보다는 AR에 더 기대가 크다고 전했습니다. 현재 스페이셜은 장시간 쓰고 있어도 피로감이 별로 없다는 일반적인 안경 형태의 AR글래스를 출시한 기업과 함께 AR 협업 기술을 개발 중입니다. 또 다른 단점은 오디오 지연 및 끊김 현상이었습니다. 간간히 목소리가 바뀌거나 1초 정도 오디오가 지연되는 것처럼 느껴져 상대방과 대화가 엉키기도 했습니다. 이런 부분은 5G 시대의 도래로 전송속도가 갈수록 향상되면 상당 부분 개선될 것이란 전망입니다. 이진하 스페이셜 대표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원격협업 수요가 폭증하고 있어 불과 2년쯤 뒤면 3차원 가상공간에서 협업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습니다.
스마트폰이 스마트안경으로 바뀌고 2차원 SNS 화면이 3차원 가상공간으로 바뀌는 시대가 생각보다 빨리 다가올 수도 있겠다 느껴졌습니다.
(SBS 뉴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