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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무기한 월세 연장 제도' 일본에서 벌어지는 일은?

[취재파일] '무기한 월세 연장 제도' 일본에서 벌어지는 일은?

최호원 기자

작성 2020.06.13 10:24 수정 2020.06.15 15:4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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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아래 사진)이 대표 발의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세입자가 3기분 연체 등의 과실이 없는 한 집주인은 2년 단위의 전월세 계약을 무조건 연장해줘야 한다. 2) 전월세 금액의 증액은 이전 금액의 5%를 초과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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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야당들은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법률이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박 의원은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 등이 이미 비슷한 임대차 안정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이 선택한 정책인 만큼 위헌 논란보다는 우리 시스템이나 국민 정서에 맞는지, 그리고 정책 도입의 충격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 등을 차분히 검토해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저는 2016-2018년 특파원으로 근무했던 일본 사례를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일본의 임대차 제도는 2년 단위 월세 계약을 기본으로 하고 있고, 박 의원의 개정안처럼 "건물 임대인은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지 않을 경우 계약 해지를 할 수 없다"(차지차거법 28조)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일본의 임대차 시장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1. 세입자를 까다롭게 고르는 집주인·건물주

저도 도쿄에서 집을 임대해서 살았지만, 정말 세입자가 마음 편히 살 수 있습니다. 2년 계약은 거의 처음 월세 그대로 갱신됩니다. 심리적인 안정감도 상당합니다. 반면, 일본 집주인들은 생각이 복잡합니다. 월세를 마음대로 올릴 수도, 세입자를 마음대로 내보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본 집주인들은 처음부터 세입자를 매우 까다롭게 고릅니다. 월세가 밀리지 않을지, 집을 깨끗하게 쓸지, 문제가 생겼을 때 대화가 통할지 등을 살핍니다. 부동산 중개업소에 1) 애완동물이 없을 것 2) 아이들이 없거나 적을 것 3) 외국인이 아닐 것 4) 확실한 직장과 수입이 있을 것 등을 말해놓는 경우도 많습니다.

*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도쿄 '집주인 페스티벌' 포스터. 세입자 모집 등의 정보를 교환한다.

도요타자동차의 경우 일본에 온 외국인 엔지니어들이 집을 구하지 못하자 회사 측이 부동산 중개사무소들에 연락해 외국인을 차별하지 말아줄 것을 부탁하기도 헀습니다. 제 지인은 강아지 두 마리를 기른다는 이유로 계약을 거절당했는데, 결국 다른 집주인에게 '월세를 10% 더 올려주겠다'고 말해 겨우 집을 빌릴 수 있었습니다. 특이한 집주인들도 많습니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공무원은 안 받겠다고 한 집주인의 경우도 들어봤습니다. 상가 점포의 경우 가게 사장이 건물주에게 "이런 장사를 할 것이고, 이렇게 돈을 벌어 월세를 밀리지 않겠다"는 PT를 하거나 보고서를 제출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어떨까요?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세입자를 구하려는 집주인들이 더 많지 않나요? 저런 조건을 내세우면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2. 월세 인상의 복잡한 절차

일본 집주인 건물주가 월세 인상을 요구하려면 다음의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인상 요구 통지서와 근거 서류를 임차인에게 발송 ▷세입자가 거부하면 지역 간이재판소에 중재 요청 ▷한 달에 한 번씩 재판소에 가 세입자와 공식 협의 ▷최종 결렬 시 정식 재판. 일본 변호사들은 "세입자에게 통지서를 보낼 때 월세 인상이 왜 필요한지 그 사유를 충분히 적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대충 적었다가는 간이재판소에서 '근거없는 인상'으로 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처럼 그냥 월세 인상을 통보하고 "못 내면 나가!"라는 건 있을 수 없습니다.

니혼케이자이신문 그래프 번역

물론 세입자가 월세 인상을 받아들이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정말 주변 시세와 큰 차이가 있는 경우입니다. 간이재판소에서 집주인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크면 그냥 월세 인상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집주인도 법적 다툼을 원하지 않습니다. 일본에선 2년 계약을 갱신할 때 세입자가 갱신료(월세 한 달분 정도)를 집주인들에게 주는데요, 집주인들이 원만한 월세 인상을 위해 "대신 갱신료를 받지 않겠다"고 제안하기도 합니다.

박 의원은 개정안에서 아예 월세 인상 상한을 5% 이하로 뒀죠. 또 각 시도가 주택임대표산정위원회를 두고, 1년마다 지역별로 적절한 표준임대료 기준을 산정 고시하도록 했습니다.

3. 일본 간이재판소의 판단은?

간이재판소까지 간다면 집주인은 상당한 비용을 써야 합니다. 변호사도 구해야 하고, 주변보다 임대료가 싸다는 걸 증명할 부동산 감정도 필요합니다. 아무리 서류를 잘 준비해도 월세 인상을 인정받기란 쉽지 않습니다. 간이재판소가 세입자의 생활 권리를 더욱 중요하게 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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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특파원 시절에 만난 아베 데츠오 변호사(위 사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라면 가게가 하나 있다고 칩시다. 그 가게가 한 장소에서 오래 장사를 했다면 처음부터 동네 손님을 모우려는 노력을 많이 했겠죠. 그리고 라면 가게를 중심으로 작은 상권도 만들어졌을 겁니다. 간이재판소에선 그런 라면 가게의 노력을 인정해줍니다. 또 가게가 없어질 경우 단골 손님들의 생활패턴이나 삶도 바뀌죠. 이런 것까지 봅니다. 물론 주변보다 임대료가 아주 싸다? 그럼 인상이 될 수도 있겠죠. 그런데, 보통 주변보다 15% 이상, 20% 이상은 싸야 합니다. 또 집주인이 감정평가서 등으로 증명을 해야 하고요, 제 경험상 10% 정도 싼 수준이라면 인상이 어렵습니다. 인상이 돼도 5% 미만인데, 그럼 재판 비용과 시간 등을 고려할 때 오히려 집주인에겐 마이너스죠."

개인적으론 일본에 100년 된 식당들이 유지되고,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도 잘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이런 임대차 제도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재판까지 가지 않더라도 집주인의 월세 인상 요구는 그 말만으로도 세입자에게 부담이 되죠. 제가 아는 한 일본인 사장은 도쿄 도심에서 사무실을 6년간 써왔는데, 7년차 때 건물주가 임대료 20% 인상을 요구했습니다. 물론 단박에 거부했습니다. 지금도 사무실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 계속 사무실 이전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4. 꼴불견 집주인 건물주와의 갈등

"월세를 올리고 싶은데 거부당했다, 그래도 꼭 이 세입자를 내보내고, 다음 세입자 때 월세를 팍 올려 받고 싶다!" 이런 상황에서 나오는 것이 바로 꼴불견 집주인, 건물주들입니다. 각종 꼬투리를 잡아 세입자를 괴롭힙니다. "임대 공간을 자주 손상시킨다", "주변에서 민원 제기가 들어온다", 또 계약서의 아주 사소한 부분을 들어 "계약을 위반했다"고 난리를 피웁니다. 이미 이유가 정당한가, 계약을 위반했나? 이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정신적으로 세입자에게 압박해 퇴거를 요구하는 겁니다. '건물 노후화로 인한 장기 리모델링'을 이유로 드는 건 양반입니다. 지진이 많은 일본이라 세입자들도 흔히 퇴거에 동의해줍니다.

집주인 건물주가 먼저 퇴거를 요청할 경우엔 세입자에게 퇴거료(이사 비용)를 줘야 합니다. 월세 20만 엔짜리 식당을 퇴거시키기 위해 퇴거료와 각종 지원비 등으로 3천만 엔까지 지원해준 건물주도 있었습니다.

5. 새 세입자를 상대로 대폭 인상?

싼 월세로 오래 눌러 앉아있던 세입자를 드디어 내보냈습니다. 그럼 새 세입자에게는 대폭 월세를 올려받아야죠. 한 30,40%? 그런데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다음 계약 갱신 때 오히려 세입자가 월세 인하를 요구할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입자도 똑같이 자료를 준비해서 간이재판소에 중재를 요청합니다. "주변 시세보다 너무 높다"는 거죠.

더욱이 일본은 잦은 지진으로 '건물은 노후화된다'는 개념이 강합니다. 주변 개발이 엄청나게 이뤄지거나, 상권이 급격히 활성화되지 않는 한 정서적으로 임대료를 꾸준히 올려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일본=도쿄'라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 지방 도시들은 경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 오히려 임대료를 포함해 디플레이션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일본의 월세(X)와 건물 건축 연한(Y)의 관계. 오래된 건물일수록 월세가 낮다.

6. 부동산 재산 가치의 영향

이런 임대차 제도는 일본 부동산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부동산 수익은 크게 임대 수익+가치 상승 두 가지죠. 그런데 임대 수익으론 안정적인 수익이 나올 순 있지만, 큰 돈을 벌 순 없습니다. 그래서 남은 것이 바로 가치 상승형 부동산 투자입니다. 어느 지역이 개발되고 어느 상권이 발전할 것인가를 잘 살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일본 서점에 가면 도시 개발 관련 책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도쿄미래계획2020 책자

20**년 도쿄의 모습은 이렇다!는 식입니다. 컬러로 도쿄 각 지역의 개발 계획을 설명합니다. 이런 정보를 이용해 신축 분양 부동산을 사는 겁니다. 그리고, 첫 세입자에게 높은 월세를 받는 거죠.

일본 부동산업체 SUUMO 분석자료

도쿄 부동산시장도 오르긴 올랐습니다. 특히 2013년에 2020 도쿄올림픽 유치 발표 이후 상승세가 시작됐죠. 즉, 도쿄올림픽에 맞춘 수도권 개발 호재로 부동산의 가치가 상승했거나, 가치 상승의 기대가 있었던 겁니다. 임대 수익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엔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박주민 의원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우리의 전월세 제도는 역사가 깊습니다. 큰 변화를 가져올 법안인 만큼 서민들의 고통과 집주인들의 재산권, 국제적 흐름, 경제에 미칠 영향까지 면밀한 분석이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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