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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북전단, '죄' 아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죄'…오락가락 정부

[취재파일] 대북전단, '죄' 아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죄'…오락가락 정부

안정식 북한전문기자 cs7922@sbs.co.kr

작성 2020.06.11 11:30 수정 2020.06.12 15:5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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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단 살포 단체 고발
정부가 북한에 전단을 보내온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와 쌀과 성경책 등을 페트병에 담아 강으로 북한에 보내온 큰샘의 박정오 대표를 경찰에 고발하기로 했습니다. 남북교류협력법상의 반출 승인 규정을 위반했고, 남북정상 간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함으로써 남북 간 긴장을 조성하고 접경지역 주민들의 생명, 안전에 위험을 초래하는 등 공익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반출승인 규정 위반'이란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북한에 물건을 보냈다는 뜻입니다. 남북한은 헌법상 하나의 나라이기 때문에 수출, 수입이라는 말 대신 반출, 반입이라는 말을 쓰는데, 북한이라는 특수 지역에 물건을 보내거나 북한으로부터 물건을 들여오려면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교역을 하든 인도적 목적의 지원을 하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전단이나 페트병이 이러한 반출물품의 범주에 해당된다는 게 정부의 설명입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 정부 입장, 며칠 만에 완전히 뒤바뀌어

이런 논란을 차치하고라도 정부의 이번 결정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먼저, 정부 입장이 며칠 사이로 180도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북한 김여정이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는 담화를 냈던 지난 4일 통일부는 주요 당국자가 기자들을 만나 현행 교류협력법으로는 대북전단 살포를 규제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전단 살포를 막는 법을 만들고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6일 만인 어제(10일)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전단살포를 현행 교류협력법의 반출승인 규정 위반으로 해석하기로 유권해석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판단이 바뀐 이유로 정부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었습니다. 전단 살포가 4·27 남북정상 간 합의에 위배된다는 점과, 대북전단 관련 소송에서 표현의 자유는 지역주민 안전 등을 위해 필요한 경우 제한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온 점, 전단 외에 살포되는 물건과 살포기술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 전단을 통한 코로나19 감염을 북한이 우려하고 있다는 점, 접경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크다는 점 등입니다.

*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대북전단 김여정 담화 정부 빠른 입장 발표
6일 전까지만 해도 죄가 안된다고 봤던 것을 6일 만에 죄가 된다고 판단했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설사 그렇게 판단했다 해도 처벌은 해석이 바뀐 뒤부터 이뤄져야 합니다. 정부가 죄가 안된다고 판단하는 시점에서 행동한 일에 대해 나중에 해석이 바뀌었다고 처벌하겠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새로 바뀐 해석을 가지고 과거의 전단 살포 행위를 처벌해달라고 경찰에 고발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는 현재 범법 행위를 하고 있지 않더라도 언제 어떻게 처벌받을지 모르는 위험 속에 살아야 합니다. 어느 정부 부처가 어떤 해석을 하느냐에 따라 지금 죄가 아닌 것도 죄가 될 수 있고, 그 해석에 따라 과거의 일까지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정부, 돌발적인 태도 보여서는 안 돼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를 처벌하는 법을 만들 수는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찬반 논란이 있지만, 정부가 법을 만들면 반대하는 쪽에서 헌법에 위배됐다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이에 따라 헌법재판소와 같은 곳에서 결정을 내리면 됩니다. 우리 사회가 정해놓은 법적 절차에 따라 일을 진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법에 대한 해석을 정부가 6일 만에 이리저리 바꾸고, 바꾼 해석에 의거해 과거 행위까지 처벌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정부는 합리성과 법적 안정성, 예측 가능성 등을 고려해 일을 진행해야 하는 것이지, 급하다고 해서 돌발적인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됩니다. 정부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게 되면 자칫 사회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정부가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정부의 갑작스러운 이번 결정이 남북 간 연락망을 모두 차단시킨 북한의 압박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이렇게 무리수를 둔다고 해서 북한이 태도를 바꿔 남한과 대화에 나설까요. 전국적인 대남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는 북한은 이미 대남 적대 긴장 조성을 사회적 의제로 설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당장은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의 압박에 허둥대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정부가 안타깝습니다.
대북전단 살포 비난 항의집회 연 북한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 (사진=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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