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선미네 비디오가게' 젖은 낙엽 같은 박미선, "내려가는 길 굴러 떨어지지 않을 것"

'선미네 비디오가게' 젖은 낙엽 같은 박미선, "내려가는 길 굴러 떨어지지 않을 것"
박미선이 33년을 버텨온 비결은?

7일에 방송된 SBS 스페셜에서는 파일럿 프로젝트 '선미네 비디오가게'를 선보였다.

이날 첫 손님은 멋진 언니 박미선. 박미선의 등장에 비디오가게 주인 선미는 "세상에 하나뿐인 인생 비디오를 제작해드린다"라고 밝혀 기대감을 높였다.

특별한 상영관으로 이동한 두 사람. 박미선은 "왜 날 1호 손님으로 초대했을까"라고 물었다. 이에 선미는 "나는 선배님이 우리나라 최고의 MC라고 생각한다. 이건 찐으로 직접 말한 거다"라고 했다.

이어 선미는 "요즘 친구들의 화두는 어떻게 버틸까인데 선배님은 33년 동안 버티지 않았냐. 33년 동안 살아남은 비결이 궁금하다"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박미선의 33년 역사가 담긴 비디오를 함께 시청했다. 가장 먼저 박미선과 절친한 사람들이 박미선에 대해 말했다.

양희은은 "쓰고 버리고 쓰고 버리고 이것도 흔히 일어나는 게 이 바닥이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살아남았다"라고 말했다. 또한 신동엽은 박미선의 데뷔에 대해 "저 여자 뭐지, 뭔데 저렇게 웃기고 예쁘지?"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1988년 방송계에 등장한 박미선은 '별난 여자'라는 코너로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당시 남성에게도 뒤지지 않고 당당한 여성상을 제시하며 걸 크러시 넘치는 박미선이라는 캐릭터의 등장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에 신동엽은 "미선이 누나의 등장은 되게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라고 말했다.

또한 양희은은 "요새는 여성들의 강한 개성을 인정받는 세상이지만 33년 전에는 아주 놀라웠다. 뒤통수를 맞는 충격 그 이상이었다"라고 했다.

92년 한국 방송대상에서 여자 코미디언상을 수상한 박미선. 이때 시상식장에는 풋풋한 모습이 정우성도 자리하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그 해 박미선은 현재의 남편이 된 이봉원과 코너를 꾸몄고 두 사람은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당시 여성들 사이에서는 독신으로 사는 것에 대한 생각도 바뀌던 시대였지만 여전히 유교사상으로 결혼에 대한 강박도 있던 시대에 살던 박미선은 이듬해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전까지 활발하게 하던 방송 활동은 뜸하게 된다. 이에 박미선은 "사랑이면 다 될 줄 알았지"라며 지난날을 떠올렸다. 결혼을 하면 여성은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당연하던 시절 박미선 또한 "방송 생활은 계속할 거지만 당분간 많은 활동은 삼가려고 한다"라며 하고 있던 모든 코너에서 하차 결혼 이후 남은 프로그램은 단 하나뿐이었다.

이에 박미선은 "결혼을 하면 일을 접고 살림을 해야 했던 시대. 그 시대가 그랬었던 거 같다. 후배들이 그런 이야기를 많이 물어보더라. 결혼은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은 반대. 결혼 출산으로 버텨나가는 것은 사회 자체가 너무 힘들다. 제도들이 마련된 후에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싶다. 강요는 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시간이 흘러 X세대가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며 자유와 개성이 두드러지던 1994년. 방송에는 이 당시 아침 방송의 MC로 활약하던 톱스타 이영애의 모습도 공개되어 눈길을 끌었다. 또한 모델로 활동하던 이정재의 풋풋한 모습도 확인했다. 이뿐만 아니라 20살의 전도연, 30대의 김흥국 등 다양한 스타들의 모습이 공개되었다.

신동엽이 개그계에 등장하고 이전의 개그와 달리 버라이어티적인 시도가 많았던 그때, 개그맨들은 어느 순간부터 배우와 가수들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에 박미선은 "변화와 적응이 필요했던 시기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시절 박미선은 프리선언을 하고 결혼 전처럼 다시 종횡무진 방송계를 누볐다. 결혼과 출산으로 방송을 떠나 있던 것은 단 2달.

박미선은 "이 곳을 떠나면 안 되니까 아등바등 뭐라도 잡고 있었던 거다. 그렇게 버텨야만 했다"라고 버틸 수밖에 없던 진짜 이유에 대해 말했다.

IMF 시대 1998년, 박미선에게는 위기와 웃음의 시기였다. 당시 큰 사랑을 받았던 '순풍 산부인과'. 이 시절에 대해 박미선은 "살면서 광고를 가장 많이 찍었던 때다"라고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때 박미선이 활약했던 장면들은 지금 세대들에게는 많은 패러디짤로 생성되며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큰 사랑을 받는 만큼 고민에도 빠졌던 시기. 당시 조연이었던 박미선은 더 활약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갈증을 느꼈음을 고백했다. 이에 박미선은 "실제로 감독을 찾아갔다. 왜 내가 받쳐주는 역할만 해야 하나 항의를 했다. 그랬더니 조금만 더 기다려보라고 하더라"라며 "그런데 그때는 버텨야 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비디오는 다시 시간을 달려 2004년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1999년 마지막 날 심은하의 청순한 모습, 2002년 월드컵에 흥분하는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다.

2004년의 박미선은 처음으로 패널을 맡게 되었다. 이에 박미선은 "마이크를 잡고 메인 MC만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섭외가 왔다. 그래서 박소현 씨 그만두세요 라고 물어봤더니 보조 패널이라고 하더라. 마치 여주인공을 맡던 여배우에게 아기 엄마 역할이 섭외가 들어온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라며 당시 느꼈던 상실감과 좌절감에 대해 말했다.

또한 박미선은 "한 선배가 네가 너무 말을 많이 해서 듣기 불편하다며 MC한테 맡기라고 하는데 집에 오는 길에 펑펑 울었다"라고 서러웠던 일화에 대해서도 공개했다. 이에 선미는 그 선배님은 뭐하시냐라고 물었고, 박미선은 "그 선배님 지금 노신다"라고 밝혀 듣는 이들을 짜릿하게 만들었다.

메인 MC에서 패널로 자리가 바뀐 박미선. 그때 박미선은 버티는 법을 배웠다. 김영철은 "미선 누나가 패널도 열심히 하라고 하더라.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넓게 보고 길게 보고 하라고 조언을 했다"라며 선배의 조언을 새기며 지금에 이르렀음을 고백했다.

비슷한 시기 드라마 속 조연으로도 등장하게 된 박미선. 이에 박미선은 "개그에서 부족한 게 있으니까 차선의 선택으로 드라마를 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또한 박미선은 "순풍 산부인과 이후로 그냥 아줌마처럼 뭔가 그동안 해왔던 일들이 인정받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도태됐다. 찾아주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직업이다. 그래서 들어오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 시작했고 자리를 옮긴다고 해서 내가 불행해질 거 같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박미선은 "젖은 낙엽 정신으로 살아야지. 어디든 붙어서 살아야지 그런 마음이었다"라며 "난 내가 연예인이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냥 여기는 내 직장이고 정년 퇴임할 때까지 오래 다녀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렇게 버텼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2008년, 박미선은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세바퀴'와 '해피투게더'에서 큰 활약을 펼친 박미선은 1주일 내내 TV와 라디오를 오가며 수도꼭지 연예인이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한동안 계속된 수상 러시.

이에 박미선은 "상을 정말 많이 받았지만 최우수상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더라. 1등만 기억하는 사회라 대상만 기억하는데 아쉽게 대상은 한 번도 타지 못했다. 그런데 그래서 더 오래 버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이때 선미는 박미선에게 "임팩트 있게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되고 사라지는 게 좋은 걸까, 아니면 무난하게 가는 게 좋은 걸까 뭐가 좋은 걸까 고민이다"라고 물었다.

이에 박미선은 "어차피 내가 좋아하는 일이 이것이고 잘할 수 있는 것도 이 일, 오래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강한 사람 아닐까 싶다. 그러다 보면 더 좋은 일도 생기고 임팩트도 생길 것이다"라고 따뜻한 조언을 했다.

박미선은 전성기를 지나 낙하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2014년부터 3년 동안 하차한 프로그램만 11개.

신동엽은 "누나가 마음이 썩 좋지만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양희은은 "일이 늘 있었기 때문에 일이 없으면 막막하고 허전해하는 모습도 보였다. 내가 어느 날 애썼다. 참 애썼다 그러니까 코가 빨개지고 눈에서 눈물이 그렁그렁하더라"라며 안타까워했다.

박미선은 "갑자기 모든 프로그램이 끝났다. 제일 기분 나쁜 건 빠지는 자리에 내가 있다는 게 너무 속상했다. 내가 남아있는 자들보다 못한가 싶어서 자괴감이 들었다"라며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으니까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계속 거듭된 위기감을 극복한 비결에 대해 "나는 언젠가 내려갈 것이다. 지금 내려가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자리를 비워줘야 한다. 그렇지만 그래도 굴러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다. 천천히 버티면서 내려갈 것이다. 잘 내려가는 것이 더 힘들다"라고 말했다.

2020년 새롭게 시작된 박미선의 삶. 박미선은 개인 채널을 활동을 통해 어느 때보다 핫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에 양희은은 "요새 보면 유튜브 하는 게 가장 자기 다운 것 같다. 자기가 주도권을 갖고 하는 것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라며 "비록 하고 있는 그 일이 처음일지언정 카메라 앞에서는 33년 차 내공이 있는 사람이다"라며 계속해서 박미선이 진가를 발휘할 것이라 말했다.

장도연은 "요즘 라떼는 말이야 하면서 과거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꼰대스러운 선배가 많잖냐. 그런데 미선 선배는 항상 지금 너희는 어때? 하고 묻는다. 궁금해하고 늘 호기심이 있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계속 그냥 계신 게 아니라 계속 노력하시는 걸 어린 친구들도 알아보니까 7,80이 되어도 언니라는 타이틀이 잘 어울릴 거 같다"라고 덧붙였다.

방송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높였던 박미선. 이에 장도연은 "자신의 목소리를 뒤도 안 돌아보고 지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것은 용기도 있고 당당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부럽고 쫓아서 하고 싶고 따라 하고 싶은 그런 사람이다"라고 박미선에 대해 말했다.

또한 신동엽은 "누나는 늘 나무처럼 그 자리에 있었다. 누나는 흔들리지 않고 버텨냈다. 33년을 이렇게 버텼는데 44년 55년이 지나도 여전히 저력을 보여줄 것이다"라며 박미선의 내일을 응원했다.

비디오를 다 본 박미선은 "너무 감동받은 영상이었다. 내가 저 때 저런 일들이 있었지. 저러면서 성장해왔지,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열심히 살았구나 싶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그리고 선미는 "언니의 비디오를 보면서 사랑하는 일을 계속하다 보면 내가 살아남을 수 있겠구나, 내가 버틸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박미선은 자신의 비디오에 대한 제목을 붙였다. 몇 가지 제시어를 들은 박미선은 "사실 별난 여자라는 제목을 짓고 싶었다. 제일 처음 했던 코너고 큰 사랑을 받았던 코너였다"라고 했다. 이어 박미선은 자신이 좋아하는 젖은 낙엽과 별난 여자를 합성한 '젖은 별난 여자'를 최종 제목으로 확정했다.

젖은 낙엽처럼 33년을 버텨온 별난 여자 박미선, 그녀는 분명 44년 55년이 지나도 젖은 낙엽처럼 꿋꿋하게 위기를 극복하고 버텨낼 것이다.

한편 '선미네 비디오 가게'는 아카이브 영상을 통해 시대를 돌아보고 그 속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재발견하는 프로그램으로, 다큐멘터리와 토크쇼가 결합한 새로운 형식의 '아카이브 휴먼 다큐 토크쇼'다.

(SBS funE 김효정 에디터)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