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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서울역 폭행 사건' 철도경찰 수사가 남긴 의문점 3가지

[취재파일] '서울역 폭행 사건' 철도경찰 수사가 남긴 의문점 3가지
지난달 26일 낮, 서울역에서 가만히 서서 휴대전화를 보던 여성에게 한 남성이 다짜고짜 욕설을 하고 주먹을 휘둘러 중상을 입힌 '서울역 묻지마 폭행 사건'. 사건 발생 후 며칠 뒤, 피해자 가족, 지인의 SNS와 저희 SBS 보도 등을 통해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졌고, 지난 한 주 내내 많은 이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건 자체도 충격적이었지만, 시민들이 더 분노한 건 바로 철도특별사법경찰의 지지부진한 수사였습니다. 폭행 사건 용의자를 사건 발생 후 엿새째 특정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그것도 대낮에 벌어진 폭행 사건의 용의자를 수사기관이 누군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걸 이해 못 하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하루 이틀 만에 확진자 동선이 전부 파악되는 걸 봐온 시민들로선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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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31일 SBS 8뉴스 방송 화면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여론이 악화되자 철도특별사법경찰은 경찰과의 공조를 통해 자택에 있던 피의자 이 모 씨를 일주일 만에 붙잡았습니다. 그렇게 사건도 어느 정도 일단락되는 줄 알았는데, 더 황당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체포 과정의 위법성이 문제 되면서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했고, 피의자 이 모 씨가 풀려난 겁니다. 피의자의 범행 동기와 추가 범행 사실 등이 명확하게 밝혀지기까진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결국, 비난의 화살은 수사를 맡았던 철도특별사법경찰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철도경찰의 수사 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닌지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강민우 취재파일 용
● 의문점 1 : '도주로 CCTV'를 왜 무시했나?

피의자가 피해자에게 주먹을 날리는 장면은 서울역 역사 내 CCTV 사각지대 문제로 촬영되지 않았습니다만, 피의자가 범행 전 다가오는 모습과 도주하는 모습이 담긴 CCTV는 충분히 많았습니다. 범행 직후 도망치는 방향을 폭행 피해자 김 모 씨는 철도특별사법경찰에 정확히 진술했습니다. 서울역 15번 출구를 빠져나가 무단횡단까지 하며 청파동 방향으로 도망쳤다는 겁니다.

사건을 접수한 철도경찰은 여기서 두 가지를 놓고 고민했습니다. 도주 경로를 추적해 나갈 것이냐, 용의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하기 전 경로를 역추적할 것이냐, 철도경찰은 여기서 후자를 택해 CCTV를 분석합니다. 그리고 용의자의 역사 내 이동 경로와 서울역까지 타고 온 버스 번호 등을 파악했습니다. 수사 인력이 제한된 만큼, 보다 효율적인 검거가 가능한 방향을 택하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철도경찰이 역추적하면서 발견한 CCTV엔 길 가던 여성을 밀치고 위협을 가하는 모습 등이 고스란히 찍혀있었습니다. 이 단계에서 철도경찰은 용의자가 불특정 대상에게 폭력적인 행동을 가한다는 걸 이미 확인했습니다. 추가 피해자가 더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유추할 수 있고, 더욱더 신속한 검거가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수사 방향을 '역추적' 하나로만 제한할 이유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됐다는 뜻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자문을 구했던 수사 전문가들은 적극적으로 수사 방향을 넓혀 역추적과 도주 방향 추적을 동시에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렇다면 도주 방향 CCTV 확인이 굉장히 까다로운 작업이었는가, 그것도 아닙니다. SBS 취재진이 피해자가 용의자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지점을 기준으로 3시간가량 직접 발품을 팔아 본 결과, 근처 CCTV에 선명하게 찍힌 용의자 모습을 다수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용의자가 신출귀몰한 도주극을 벌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고성능 CCTV가 골목 곳곳에 설치돼 추적 자체가 그리 어렵지도 않았습니다.

CCTV 분석으로 확인한 피의자 도주 경로

'도주 경로 파악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효과도 없을 것 같았다'라는 철도경찰의 해명에 수긍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취재진이 수사 전문가가 아니어서 잘못 판단하고 있는 걸까요? 그렇다고 하기엔, 서울 용산경찰서 베테랑 형사들이 공조 요청을 받자마자 도주 경로 CCTV 확보에 열을 올린 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 의문점 2 : 왜 경찰과의 공조에 소극적이었나?

문제는 철도특별사법경찰이 피의자를 역추적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CCTV 안에 추가 범행 장면이 있었고, 철도경찰은 이를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한 여성을 거칠게 밀고 위협하는가 하면, 복도에서 한 남성의 어깨를 거세게 밀치기도 했습니다. 앞서 '의문점 1'에서 언급한 것처럼, 불특정 대상에게 폭력적인 행위를 벌이는 장면이 이미 확인됐다면 도주 과정 등에서도 추가 범행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의심했어야 합니다.

무차별 폭행 범행 전 포착된 피의자의 이상행동

역사 밖에서의 범행은 철도경찰 관할이 아닙니다. 따라서, 빠르게 공조 수사를 요청하거나 그게 어려웠다면 추가 범행 가능성을 인접 경찰에 알려 자체 수사에 들어가도록 했어야 합니다. 더 많은 수사 인력이 한 용의자를 다각적으로 쫓기 시작한다면 좀 더 빨리 잡을 수 있다는 건 수사 전문가가 아니어도 충분히 유추해낼 수 있는 일반적 상식입니다. 하지만, 철도경찰은 어느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경찰은 철도경찰을 통해서가 아닌, 언론 보도를 보고 나서야 추가 범행 사실은 인지했고, 그제야 수사에 착수할 수 있었습니다.

철도경찰 수사 관계자는 피의자 체포 직후, '공조 요청이 충분히 이뤄졌다'라면서, 더딘 공조 수사를 비판한 언론에 대해 '섭섭하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취재 결과 철도경찰이 언급한 '공조'는 남대문경찰서에 설치된 CCTV 보여 달라고 한 게 전부였습니다. 인근 경찰서에선 언론 보도로 '서울역 폭행' 사건에 관심이 커지자 아예 수사 인력을 미리 준비도 해놨었는데 요청이 오지 않아 대기만 하고 있던 걸로 확인됐습니다. 결국, 정식적인 공조 수사가 이뤄진 건 사건 발생 후 일주일이 지난 뒤였습니다. 이마저도 서울지방경찰청이 먼저 공조를 하겠다고 제안해서 이뤄졌습니다.

공조 수사가 시작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피의자를 체포한 사실을 미뤄볼 때 철도경찰이 수많은 비판을 감내하면서까지 경찰과의 공조에 소극적으로 나선 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강민우 취재파일 용
● 의문점 3 : 왜 '긴급체포'라는 무리수를 뒀나?

수사 초기 용의자 특정에 어려움을 겪던 철도특별사법경찰은 역추적을 통해 마침내 동선을 대략 파악했습니다. 상도동의 한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역에 온 걸 확인한 겁니다. 이를 토대로 주변 주민들을 탐문 수사했고, 용의자 이 씨의 신원 특정과 함께 주거지 확인까지 성공했습니다. 체포 당일인 2일 오후에 이뤄진 일입니다.

이 씨가 집에 있는 건 파악이 되는데 연락도 받지 않고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자 철도경찰은 문을 강제로 따고 들어가 체포하기에 이릅니다. 긴급체포가 이뤄진 건데, 이 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유가 바로 이 체포 과정이 위법했다고 법원이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체포영장을 발부받지 않고 체포하는 '긴급체포'는 형사소송법에 의해 엄격히 통제되고 있는 방식입니다. 법원은 당시 상황이 긴급체포를 해야 할 만큼 급박하지 않았다고 봤습니다. 법원의 '현실과 동떨어진 판결'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영장주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순간, 수사 기관의 무리한 수사와 인권침해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방안이 사실상 없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법원의 판단이 틀렸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강민우 취재파일용

경찰·검찰 등 복수의 수사 전문가들 역시 법원이 긴급체포를 허용하는 범위가 점차 좁아지고 있고, 관련 판례까지 존재하는 상황에서 집 안에 들어가 체포하는 건 '무리수'였다고 말합니다. 우선 체포영장을 신청하고, 체포영장 발부를 기다리는 사이 이 씨가 집을 빠져나오면, 그때 긴급체포했어도 늦지 않았을 것이란 판단입니다. 철도경찰은 장시간 이 씨 주거지 근처에서 잠복을 했고, 도주 위험성 등 때문에 불가피한 판단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체포 1시간여 전까지 주변 주민들을 대상으로 탐문 수사하는 게 CCTV를 통해 확인되고, 이 씨가 거주하는 곳의 출구가 제한되어 있다는 점을 볼 때, 해명에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입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서 이 씨에게 폭행을 당했거나 위협을 당했다는 피해 사례들이 추가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철도특별사법경찰은 경찰과의 추가 수사를 통해서 영장을 추가로 신청할지, 아니면 수사관들이 직접 이 씨를 찾아가 수사를 진행할지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범행 동기 등 아직까지 남아 있는 여러 의문점들은 추가 수사에서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의 추가 수사 과정에선 철도특별사법경찰이 지난 수사 과정에서 보여 준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더딘 수사와 성급한 체포로 작금의 사태를 자초했다'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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