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한명숙 10년 만에 드러난 진실? 10년 새 바뀐 건 여당 된 민주당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작성 2020.05.23 16:29 수정 2020.05.25 16:4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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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이었다. 2010년 4월 8일,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 사건(1차 사건) 재판 선고 딱 하루 전이었다. 검찰이 한 전 총리의 또 다른 범죄에 대해 압수수색에 나섰다. 당시 법원 기자실에선 '검찰의 무리수'라는 냉소가 새어 나왔고, 별건 수사 비판 속에 한명숙 전 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2차 사건)은 시작됐다.

사연 가득한 이 사건은 5년이 지난 2015년 8월 20일 대법원이 한 전 총리의 9억여 원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며 종결됐다. 권력층의 부정부패 사건 이상의 사법사적 의미를 남긴 채 말이다.

그런데 돌연 한 전 총리 재판이 재소환됐다. 민주당을 통해서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한 전 총리 사건의 진실이 10년 만에 밝혀지고 있다"며 한 전 총리를 법원과 검찰에 의해 희생된 '사법농단의 피해자'로 규정했다. 여당이 한 전 총리 구명 근거로 삼은 건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가 작성했다는 '비망록'이다. 비망록을 한 전 총리의 억울함을 풀 증거로 활용하려는 의도인데, 결론부터 말하면 비망록은 이미 법원에 제출돼 사법적 판단을 받았다. 그것도 아주 치열한 검증 과정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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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전 총리 석방
● '참회록'이라는 이름으로 제출됐던 '비망록'…법·검·변 모두 알고 있었다

한명숙 전 총리의 공소사실은 한만호 전 대표로부터 3차례에 걸쳐 9억여 원을 받은 것으로 압축된다.

① 2007. 3. 31. ~ 2007. 4. 초순경 : 5만 달러, 현금 1억 5천만 원, 수표 1억 원
② 2007. 4. 30. ~ 2007. 5. 초순경 : 17만 4천 달러, 현금 1억 3천만 원
③ 2007. 8. 29. ~ 2007. 9. 초순경 : 10만 3천500달러, 현금 2억 원

한 씨의 진술을 토대로 검찰은 2010년 7월 21일 한명숙 전 총리를 기소했다. 다섯 달 뒤인 12월 6일 첫 재판이 시작됐고, 2차 재판(12월 20일)에서 한만호 씨는 진술을 뒤집었다.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넨 사실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 돈을 건넸다는 취지였다.

법정은 술렁였다. 기자도, 법원도, 검찰도 예상 못한 진술 번복이었다. 검찰은 한만호 씨의 위증죄를 수사하겠다며 2011년 6월 11일 한 씨의 구치소를 압수수색해 메모, 편지, 그리고 일기장(여당이 '비망록'이라고 일컫는 자료)를 확보했다.

검찰의 압수수색 계기는 이랬다. 진술 번복 후 한 씨는 법정에서 종종 메모를 보며 증언했다. 검사의 요청으로 재판부가 이를 제지하기도 했다. 한 씨의 동료 수감자가 법정에서 "한 씨가 진술 번복할 내용을 메모한 뒤 중얼중얼 외우는 것을 봤다"는 증언도 했다. 이를 입증할 증거를 찾기 위해 검찰이 압수수색에 나서 확보한 게 '비망록'이었다.

'참회록, 변호인 접견노트'라는 이름으로 검찰이 직접 법정에 증거로 제출했다. '진술 번복을 모의한 증거'라는 취지의 의견서도 첨부했다. 법원, 검찰, 한명숙 전 총리의 변호인도 9년 전 비망록의 존재를 모두 알고 있었고 재판에서도 다뤄졌다는 뜻이다.

● 법조 브로커의 협박? 무죄 선고 1심도 "한만호가 자발적 동기로 진술"

증거로 제출된 비망록은 그 자체로 재판 과정에서 쟁점이 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비망록 자체가 쟁점이 될 필요가 없었다. 한 씨가 비망록 내용을 법정에서 직접 육성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한만호 씨는 한 전 총리에게 금품을 전달했다는 허위진술을 한 계기로 "검찰 조사 때 만난 남 모 씨의 겁박 때문"이라고 증언했다. 한 씨는 남 씨를 '법조 브로커'라고 비망록에서 지칭했지만, 당시 재판에선 한신건영 채권자 대표 또는 제보자로 통용됐다.

남 씨는 한 전 총리 기소 전인 2010년 4월 2일 한만호 씨와 검찰청사에서 만난 건 '사실'이다. 이 자리에서 "검찰에 협조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남 씨의 협박에 허위진술을 했다"는 게 한만호 씨의 주장이었다.

한 씨의 증언으로 남 씨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졌다. 당시 기억으론 남 씨가 의도적으로 검찰 연락을 피한 탓에 남 씨의 증인신문은 어렵게 열렸다. 남 씨를 상대로 변호인(한 전 총리 측) 신문도 진행됐다. 그리고 남 씨는 "검찰 수사에 협조하면 가석방 등 이익이 있을 수 있다"라는 식의 회유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협박이 아닌 회유였고, 법원도 '회유'를 사실로 인정했다.

법정에 나온 남 씨가 회유 취지의 발언을 인정했기 때문인데, 회유 발언의 무게감은 크지 않았다. 그냥 통상적 수준의 발언이었다는 게 남 씨의 취지였다. 이런 남 씨의 회유(?)에 한만호 씨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답변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 씨가 검찰에서 금품 공여 진술을 한 계기가 압박이나 회유가 아닌 스스로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 씨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조차 "한만호 씨의 금품 공여 진술은 검찰 수사에 협조해 회사를 되찾겠다는 자발적 동기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남 씨와의 면담이 한만호 씨의 허위진술 동기가 아니라는 점을 '한 전 총리의 유무죄와 관계없이' 재판부(1·2·3심) 모두가 인정한 것이다. 남 씨 관련 비망록 내용이 변호인이 쟁점화해 법적 판단을 받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명숙 전 총리
● 73회 출정에 조서는 5회뿐, 검찰의 강압…한만호 "자유스러운 분위기…검사님 죄송"

민주당은 "한만호 씨를 73회 불러 조사하면서 검찰은 조서를 5회만 남겼다"며 이를 새로운 의혹으로 제기하고 있다. 조서가 없는 68회 출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검찰의 강압과 회유 의혹을 제기한 건데, 이 역시 이미 재판에서 다뤄졌다.

검찰은 한명숙 전 총리 수사 초기 때인 2010년 4월1일 한만호 씨를 지검 특수부로 소환한 것을 시작으로, 4월에만 25회, 5월 14회, 6월 11회, 한 전 총리 기소 이후인 7월 10회, 8월 5회, 10월 4회, 11월 4회 등 1심 재판 첫 재판 시작 전에만 73차례 한 씨를 불렀다. 이 중 한 전 총리 관련 재판에 제출한 조서는 5회뿐인 건 사실이다.

68회 조사에선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한 전 총리 변호인으로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기록(조서)에 남길 수 없는 검찰의 회유와 압박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건 당연하다.

하지만 한만호 씨 스스로 이를 부정했다. 한 씨는 법정에서 진술 번복을 하며 이렇게 증언했다. "70번이 넘는 출정을 하면서, 허위진술을 계속 숨기는 게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검사님들이 강압적이지 않고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조사받게 해줘서 더욱 죄송하게 생각한다."

진술 번복 공여자는 으레 다음 수순으로 검찰의 강압수사를 언급하는데, 예상 밖의 증언이었다. 한 씨 스스로 법정에서 검찰의 강압은 없었고, 검찰은 금품 공여 진술이 허위였다는 걸 몰랐다고 인정한 것이었다. 검찰의 강요는 없었다는 건데, 한 씨는 재판이 진행되면서 이런 증언도 했다.

"매주 나를 불러서 서너 시간씩 진술을 훈련 시키고… 머리 하얀 놈을 앉혀 놓고 잘하면 잘한다고 칭찬하고, 못하면 못한다고 분위기 죽이고, 그때마다 모멸감이 들었지만 속으로 진술 번복할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 참은 겁니다. 제가 저능아입니까. 저능아 취급한 것 아닙니까."

비망록에 등장하는 '검찰의 안내대로 따르는 강아지'라는 취지 주장을 한 씨가 법정에서 더 노골적으로 주장한 셈이다. 검찰은 73회 출정은 의혹을 확인하기 위한 정당한 절차였다고 반박했다. 한명숙 전 총리의 진술거부권 행사로 피고인 입장이 파악 안 된 상황에서 언론을 통해 검찰 수사의 허점이 지적되거나 새로운 의혹이 불거지면 이를 확인하고자 한만호 씨를 불렀다는 것이었다. (*검찰은 한 전 총리 외 채권 회수 목록에 적힌 다른 인물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는 입장이다)

이는 특수수사에서 주로 사용된 수사 방식이다. 통상 검찰은 기업 오너, 정치인 등 거물급 피의자는 한두 차례 소환에 그치지만, 공여자나 핵심 진술자는 수시로 불러 유대감을 형성해 수사의 미비점, 피의자에 대한 공격 포인트를 확인했다. 이번 정권 출범 이후 적폐 수사에서도 반복된 방식이다. 기록이 남지 않기에 설득을 가장한 회유가 있을 수도 있다. 밀행성을 빙자한 불투명한 수사라는 비판이 매번 제기됐던 이유다. 이런 지적에 검찰은 부패 척결을 위한 '수사 기술'이라는 현실적 이유를 들어왔는데, 한명숙 전 총리 사건에서도 반복된 것이다.

변호인은 이를 강하게 문제 삼았다. 당시 법정에서 이를 두고 검찰과 변호인은 고성을 주고받으며 공방을 벌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사법부의 결론은 '검찰권 남용으로 까진 볼 수 없다'였다. 법원은 "수사 개시부터 한만호 씨에 대한 법정 증인 신문이 이뤄지기까지 9개월이 소요됐다는 참작할 사정이 있고, 소환조사 과정에서 한만호에 대한 강압은 없었다"고 봤다.

한만호 씨 진술을 토대로 내린 결론이었고,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조차 같은 판단을 내리며 검찰 조서(금품 공여 진술)의 증거 능력(증명력과 별개로 증거로서 자격)을 인정했다. 한 전 총리 유무죄 판단과 무관하게 모든 재판부(1·2·3심)에서 검찰 수사 자체는 적법한 과정에서 이뤄졌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 횡령죄 추가 기소 두려워 허위진술?…"한만호가 먼저 금품 공여 진술"

비망록에서 한 씨는 검찰이 횡령으로 추가 기소를 할까 두려워 허위진술을 했다지만, 이 역시 10년 전 재판에서 제기됐던 내용이다.

한명숙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은 횡령죄 추가 기소의 두려움을 허위진술의 동기로 인정한 건 사실이다. 다만, 검찰의 압박이 아닌 "검찰이 원하는 답변을 하지 않을 경우 한 씨 스스로 횡령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는 한만호 씨의 "9억 원의 사용처를 밝히지 못하면 사실이든 아니든 내가 횡령했다는 이야기로 회자돼 피해자들에게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감을 가졌다"는 법정 증언에 근거한다.

1심조차 한 씨의 금품 공여 진술을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한 씨의 자발적 진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사용처를 밝히지 않으면 정치자금법 사건이 아닌 횡령죄 사건으로 전환돼 한 씨 혼자 처벌 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 한 전 총리를 먼저 진술했다는 것이다.

'1·2·3심'이 자발적 진술이라는 동일한 결론을 내면서도, 유무죄(1심 무죄/­2·3심 유죄)를 엇갈리게 판단한 건 진술 내용(금품 공여)의 신뢰성을 달리 봤기 때문이다. 2·3심은 자발적 진술이며 허위 진술의 동기가 없고, 다른 증거만 봐도 한 씨의 금품 공여 진술은 사실로 인정된다고 본 것이다.

항소심(2심)과 대법원(3심)은 금품 전달 내역, 금품을 마련한 경리부장 정 모 씨 등의 법정 증언을 토대로 "한만호 씨가 먼저 검찰에 9억 원을 진술하기 전엔 검찰이 한 씨의 횡령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고, 한 씨가 자료(금품 전달 내역)를 알리기 전에 검찰은 한 씨 진술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자료도 없었다"고 판단했다. '한 씨가 먼저 진술하지 않았다면, 횡령도 정치자금법 위반도 검찰이 알 수 없었다'고 법원이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
● 친박계 의원 대신 로비스트 지목한 한 씨…법원 "한 씨 법정 진술 못 믿겠다"

'친박계 의원에게 6억 원을 줬는데, 검찰이 이를 덮고 한명숙 전 총리 쪽으로 준다고 조작했다는 주장'도 비망록에 나온다. 이는 언론엔 새롭게 나온 내용이지만, 비망록이 법정에 제출되면서 포함됐던 사안이다.

단지, 한 씨는 물론 한 전 총리 변호인이 법정에서 이를 쟁점화 하지 않았을 뿐이다. 대신 한만호 씨는 친박계 의원이 아닌 공사 수주를 위해 로비 명목으로 김 모 씨와 박 모 씨에게 5억여 원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법정에서 한 씨는 3억 원은 한 전 총리 비서에게 빌려줬고, 5억 원은 김 씨 등에게, 1억 원은 한 씨 본인이 썼다며 9억 원과 한 전 총리의 무관함을 주장했다)

검찰은 한 씨가 '김 씨와 박 씨에게 5억여 원을 건넸다'고 이미 법정에서 주장했기 때문에 비망록에 쓴 친박계 의원을 거론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즉, 비망록의 신뢰성을 한만호 씨 스스로 법정에서 부정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항소심과 대법원은 물론, 무죄를 선고한 1심조차 한만호 씨의 이런 주장(5억 원 로비자금 주장)을 믿지 않았다.

여권에선 무죄를 선고한 1심을 근거로 한만호 씨의 법정 진술에 신뢰성을 부여해 이를 비망록의 신뢰성으로 확장하려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1심조차 한 씨의 법정 진술에 큰 신뢰성을 부여하진 않았다. 1심이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한만호 씨의 검찰 진술(금품 공여)을 믿기 어렵다고 판단한 건 사실이지만, 한 씨 법정 증언의 신뢰성과 등가 교환시키진 않았다.

쉽게 말해 한 씨의 검찰 진술은 물론, 법정 진술도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1심 재판부는 이렇게 표현했다. "한만호 씨의 검찰 진술이나 법정 진술은 모두 일부는 진실, 일부는 허위, 과장, 왜곡, 착오를 포함했을 수 있다." 단선적으로 표현하면, 한 씨의 법정 진술도 못 믿겠지만, 검찰 진술도 못 믿어서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는 말이다.

● 민주당이 말하지 않는 유죄의 증거들

한만호 씨가 직접 법정에서 제기한 주장을 민주당은 이제 비망록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증거로 활용하려 하지만, 민주당은 간과한 게 있다. 치열했던 당시 재판이다. 사법부가 한 전 총리에게 유죄를 확정한 건 한만호 씨의 검찰 진술(금품 공여 진술)에 신뢰성를 부여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민주당이 거론하지 않은 다른 유죄의 증거들이 검찰과 변호인의 공방을 통해 재판에서 윤곽이 그려졌고, 사실의 조각을 맞춰나갔다.

△ 한만호 씨가 건넨 수표 1억 원이 한명숙 전 총리 동생의 계좌로 꽂힌 금융 거래 내역 △ 한 씨의 지시로 불법 정치자금을 조성한 경리부장의 정 모 씨의 진술 (*정 씨는 법정에서 한만호 씨가 한 전 총리에게 건넬 돈을 준비시킬 땐 매번 '은팔치 차고 안 차고는 너하기 나름'이라고 주의를 줬다고 진술) △ '한', '의원', '한 의원' 등으로 금품 전달 내역이 적힌 채권 회수 목록과 장부 △ 검찰 수사 시작 전 이미 한명숙 전 총리 측에 금전 반환을 요구한 접견 내용 △ 회사가 어려워진 후 한만호 씨가 입원한 당일(08년 2월 27일) 한 씨 부친의 전화를 받고 한명숙 전 총리가 병문안을 온 사실 △ 바로 다음 날 2억 원이 한만호 씨에게 반환된 사실 △ 반환 직후 한 전 총리와 한만호씨가 통화한 사실 등이 있다.

이 외 한명숙 전 총리와 한만호씨의 금전거래가 이뤄질 친분이 충분하다는 증거들도 다수 재판에서 드러났다. △ 검찰 수사 착수 6년 전인 2004년 시세보다 싼 값에 한 전 총리에게 사무실을 임대해 준 사실 △ 한만호 씨, 한 씨 부친이 한 전 총리와 식사를 하며 넥타이를 선물받은 사실 △ 한 씨가 한 전 총리 집에 방문해 인테리어 공사를 해준 사실 △ 한 전 총리의 초대로 한 씨가 총리 공관에서 대형 건설사 대표들과 오찬을 한 사실 △ 한 전 총리 대선 경선 때 한 씨가 한신건영 소유 버스를 무상 제공한 사실(한신건영 직원들도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 다양한 방식으로 진실을 찾기 위한 공방이 벌어졌다. 한만호 씨와 한 전 총리에게 건넬 돈을 마련했다는 경리부장의 대질도, 로비스트(5억여 원 사용처 공방)로 지목된 김 씨, 박 씨와의 대질도 법정에서 이뤄졌다. 당시 법정에서 지켜본 신문에서 한만호 씨는 정 씨, 김 씨, 박 씨의 증언에 반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대질조사 후 진술이 바뀌는 등 일관된 주장을 하지도 않았다. 또 법원이 남다른 증명력을 인정하며 한 전 총리 유죄의 유력한 증거로 삼은 채권 회수 목록 등 장부에 적힌 다른 은행 직원도 알선수재로 유죄가 확정되기도 했다.

● 방어권이 보장된 공판중심주의…한명숙 재판의 사법사적 의미

한명숙 전 총리의 1차 사건(뇌물 사건)과 2차 사건(불법 정치자금 사건)은 사법사적으로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 법원은 선언적 내용에 그쳤던 공판중심주의를 현실에서 구현시켰고, 검찰은 수사 보다(못지않게) 공소 유지가 중요하다는 걸 절감했고, 변호사의 변론과 방어 능력의 성취도 있었다. 검찰과 변호사가 모두 법정이라는 무대 위에서 자신들이 가진 최선의 방법으로 공방을 벌였다는 뜻이다.

사실심(1·2심)에선 강금실 전 법무장관은 물론 탁월한 변론 실력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백승헌 전 민변 회장 등 변호사 6명이 참여(대법원 재판에선 김능환 전 대법관도 변호인에 합류)해 한 전 총리를 변호했다. 이들은 한만호씨를 수시로 법정에 출석시켜 증언을 들었고, 변호인 주도로 다양한 증인 신문을 진행했다. 재판 과정에서 한명숙 전 총리의 방어권이 충분히 행사됐다는 뜻이다. (*도리어 검찰이 재판 진행 방식을 문제 삼은 적은 있다)

● '별건 표적 수사' 한명숙 수사의 문제점…사정 수사에 동원되는 명분

법원과 검찰 등 권력기관의 무오류는 기대할 수 없다. 검찰은 범죄 사실만 기소하고, 법원은 공소사실에 대한 유무죄 판단만 내리기에 법적 진실과 실체적 진실엔 항상 간극이 존재한다. 때론 권력기관의 무책임으로 억울한 사법 피해자가 발생하기도 한다. 용공 조작으로 대표되는 재심 사건들이 단적인 예다.

한명숙 전 총리 재판을 이런 사건과 동류로 볼 수 있을까. 적어도 비망록만을 근거로 한명숙 전 총리를 무고한 희생자, 사법 피해자로 볼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다만 검찰의 수사 착수 동기엔 비판의 여지가 있다. 패색이 짙은 1차 사건(특수2부 뇌물 사건)의 1심 선고 하루 전날 2차 사건(특수1부 정치자금법 사건) 압수수색에 나서면서 별건 수사, 표적 수사 지적은 피할 수 없었다.

특수2부의 무너진 자존심을 특수1부가 회복하려는 의도도 엿보였고, 부패 척결이라는 명분보단 검찰의 자존심이 먼저였다는 인상도 지울 수가 없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오래 전 첩보가 접수돼 수사에 착수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부패 혐의를 인지하고도 덮으라는 것이냐"고 항변한다. 정권 교체 후 반복된 전 정권 사정(司正) 수사와 같은 명분인데,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적폐 수사 때도 같은 논리가 작동했다.

(사진=연합뉴스)
● 공수처까지 거론하는 민주당…"공수처 수사가 도리어 범죄"

수사 동기의 순수성을 의심받는 상황에서 검찰은 한 전 총리를 기소해 유죄가 확정됐다. 진술을 유도하거나, 강요 압박한 사실이 없다는 것도 확인되면서 검찰 수사의 적법성을 사법부는 인정했다. 비망록도 한만호 씨의 위증 재판까지 포함하면 6개 재판부를 통해 판단을 받았고, 관여한 법관(대법관 포함)만 25명이다.

비망록이 한 전 총리의 재심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건 법률가들이 다수 포진한 민주당도 알고 있을 테다. 재심 사유를 열거한 형사소송법 420조에 포함되지 않는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당에선 당시 검찰을 공수처 수사 대상으로 거론하고 있지만 이 역시 무리수다.

민주당 주장대로라면 검사들에게 적용 가능한 혐의는 직권남용 정도인데 공소시효는 7년이다. 이미 시효는 완성됐다. 특히 사법부가 한 전 총리의 유죄를 확정하며 검찰 수사의 적법성까지 인정했다는 점에서 공수처 수사가 도리어 범죄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 10년 만에 밝혀진 진실? 10년 사이 바뀐 건 여당이 된 민주당

민주당이 염두엔 둔 건 종국적으로 한 전 총리 복권 정도로 보인다. 여당이 비망록을 근거로 법원 검찰을 비판하며 한 전 총리를 희생자로 만들어 사면복권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마치 경제인 단체가 "검찰 수사와 법원의 단죄로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경제 위기에 처했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면, 역대 청와대가 화답하듯 경제인 특별사면을 단행했던 것과 흡사하다.

민주당의 포석이 무엇인지 단정할 수 없지만, 이 과정에서 부패사범과 경제사범 등 권력층 특별사면복권이 낳은 비극을 간과해선 안 된다. (*청와대는 이광재 당선인을 복권하며 정치자금법 위반은 부패 범죄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부정의를 교정해야 할 특별사면이 도리어 '유권무죄(有權無罪)' 문화만 조장시켜 법치주의를 훼손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된다.

민주당은 "10년 만에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다"고 말하지만, 새롭게 드러난 증거는 없다. 10년 동안 달라진 건, 민주당이 야당에서 집권여당이 됐다는 점 뿐이다. 유무죄가 달라질 수 있는 새로운 증거에 여야는 포함되지 않는다.

한명숙,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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