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이 지킨 문화재, 어쩌다 경매에 나왔나

권태훈 기자 rhorse@sbs.co.kr

작성 2020.05.21 14:0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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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보화각 

일본강점기에도 굳게 지켜온 문화재를 간송미술관이 경매에 내놓아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문화재가 경매 시장에 나온 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그러나 간송미술관이 1938년 설립 후 처음으로 처분하는 소장품 문화재여서 문화계가 놀라고 있습니다.

간송미술관은 사업가 간송 전형필(1906~1962)이 1938년 보화각이라는 이름으로 세운 우리나라 최초 사립미술관입니다.

간송이 전 재산을 털어 모은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신윤복의 미인도, 국보 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등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문화재 1만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보물 284호 금동여래입상과 보물 285호 금동보살입상이 오는 27일 열리는 케이옥션 경매에 출품됩니다.

각각 경매 시작가는 15억원입니다.

간판급 소장품은 아니지만 '문화재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간송의 수집품이기에 안타까움을 전합니다.

간송은 일제강점기 수탈되는 유산을 지키고 해외로 유출된 유산을 찾아오는 등 민족 문화유산을 수호한 인물입니다.

거부 전영기의 아들로 태어난 간송은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와세대대학교 법과에 진학했습니다.

휘문고보 시절 미술 교사가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이자 민족주의자 고희동이었습니다.

대학 진학 후에는 고희동의 소개로 알게 된 한학의 대가이자 민족미술의 대계를 정리한 '근역서화징'의 저자 오세창을 통해 민족문화 수호의 중요성을 깨닫고 안목을 키웠습니다.

1929년 부친 사망으로 젊은 나이에 대지주가 된 간송은 조선의 중요한 문화재를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연구하기 위해 엄혹한 시기였던 1938년 서울 성북동에 후에 간송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꾼 보화각을 지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의 감시와 탄압으로 일반에 개방하지 못했습니다.

간송은 1962년 급성 신우염으로 쓰러져 56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유지를 이어 후손들이 수집품을 지켜왔습니다.

지난 2018년 별세한 간송 장남 전성우 전 간송문화재단 이사장과 간송 손자인 전인건 간송미술관장까지 3대째입니다.

간송미술관은 재정난을 이기지 못하고 소장품 매각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울 신관, 대구 분관 건축 등을 추진하면서 자금난이 닥쳤고, 전성우 이사장 별세로 거액의 상속세가 부과돼 어쩔 수 없이 소장품을 팔게 됐다는 후문입니다.

불가피하게 소장품을 내놓게 된 간송은 공개적으로 알리지 않고 조용히 경매를 추진했습니다.

케이옥션은 이번 경매 도록과 홈페이지에 간송미술관 출품작을 넣지 않았습니다.

보물 두 점만 별도로 소개하는 자료 100여부를 따로 만들어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 컬렉터들에게 보냈습니다.

케이옥션 관계자는 21일 "위탁자인 간송미술관 측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 출품 사실을 사전에 공개하지 않았다"며 "프리뷰 전시에서는 작품을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문화재지만 경매 거래는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해외로의 판매는 제한되지만, 국내에서는 소재지와 보존상태가 확실하다면 매매가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간송미술관의 경매 출품을 놓고 문화계 시선은 엇갈립니다.

문화계 관계자는 "문화재도 거래될 수 있고, 사고파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사안만은 아니다"며 "다만 개인이 소장하게 되면 해당 문화재를 국민이 함께 향유하지 못할 우려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우리 유산을 헌신적으로 지켜온 간송의 수집품이 재정 문제로 팔린다는 것이 안타깝다"라며 "문화재를 지킨 이들이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판매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문제를 당국도 심각하게 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진=문화재청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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