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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우리도 집에 가게 해주세요"

바다에 떠있는 크루즈선 승무원들

[취재파일] "우리도 집에 가게 해주세요"
지난 2월 14일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해 있던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크루즈선에 있는 승무원과 전화 인터뷰를 하면서 저도 배 안의 상황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기자들이 알고 있던 것보다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승무원이 전한 내용을 근거로 SBS 뉴스에서 단독으로 방송도 했습니다. 많은 국내 방송사들이 승객에만 관심을 갖고 방송을 했을 뿐 누구도 승무원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보도 내용은 새롭고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이번에 또 그들의 생활을 취재했고 아쉽게도 방송하지는 못했지만 취재파일을 통해 더욱 자세하게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석 달이란 시간이 지났는데 승무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걱정도 됐습니다.

놀라운 것은 전 세계에 있는 크루즈선에 아직도 10만 명의 승무원들이 배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려 10만 명입니다. (이 가운데 5만 7천여 명은 미국 연안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모두 하루도 아니고, 50일 넘게 배 안에 갇혀 있습니다.

창문을 열어봐도 보이는 것은 바다뿐. 작은 공간에서 먹고 자고 지내는 승무원은 불면증과 우울증을 호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직원은 밤이 되면 술이 있어야 잘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크루즈 선박의 승객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왜 나오지 못하나?

크루즈선에서 코로나19 감염 환자가 잇따라 확인되면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지난 3월 14일부터 크루즈선의 미국 내 항해 금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지난 11일 기준 미국 연안에만 무려 124척의 크루즈선이 정박해 있습니다. 배 안에는 미국을 비롯해, 멕시코, 인도, 이탈리아 등 다양한 국적의 승무원들이 있는데, 출입국 관리 문제로 배에서 내릴 수 없는 상황입니다.

또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규정상 크루즈선 승무원은 특별 전세 항공기나 개인 차량을 통한 송환이나 선박 간 이동에 한해서만 하선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크루즈선사가 배 안에 코로나19 확진자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승무원이 내린 뒤 양성 반응을 보이면 크루즈선사는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도 문서 작성을 꺼리는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로얄 캐리비안 크루즈선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더 이상 못 참겠다!"

로얄 캐리비안 크루즈선에서는 승무원 15명이 3일간 단식투쟁을 벌였습니다. 배에서 내릴 수 있게 해달라는 조건 하나뿐이었습니다. 크루즈선 측은 요구조건을 모두 받아주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승무원도 발생했습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정박해 있던 크루즈선의 승무원이었던 39살 우크라이나 여성 승무원은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이런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로얄 캐리비안 크루즈선에서 하선한 승객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일부 미국 국적의 승무원은 까다로운 조건을 따른다는 조건 하에 집에 갈 수 있게 됐습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하선한 승무원은 집에까지 개인 교통을 이용해야 하며 집에 가는 길에 일반인과 접촉하면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로얄캐리비안에 있던 줄리아 위트콤 씨는 6주 만에 배에서 내려왔습니다. 로얄캐리비안 측이 줄리아를 위해 단독으로 탑승할 수 있는 버스를 마련해 주면서 위트콤 씨는 집에 갈 수 있었습니다. 고향에 도착한 위트콤 씨는 현재 자가 격리 중입니다.

위트콤 씨만큼 운이 좋은 승무원은 많지 않습니다. 테일러 그라임 씨는 승객이 한 명도 없는 크루즈선 안에서 생활한지도 벌써 63일이 지났습니다. 크루즈선에 있는 보석 가게에서 일했던 그는 그러나 언제 배에서 내려 집에 갈 수 있는지 모릅니다. 그라임 씨의 말이 더욱 충격적입니다. "저는 이제 희망이 없습니다. 이 작은 배 안에서 영원히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라임 씨 같은 승무원 수만 명이 아직도 바다 위에 남아있습니다. 모든 승무원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길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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