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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재수에 강하다'라는 文 정부와 2번째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

[취재파일] '재수에 강하다'라는 文 정부와 2번째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
야구장 마운드에 선 투수. 그 투수를 마주한 타자. 수 싸움은 치열합니다. 때론 강속구로, 때론 변화구로 허점을 노려보지만, 타자는 빈틈이 없습니다. 밀고 당기고, 높고 낮고 가리지 않고 다 쳐냅니다. 그런 '전천후 타자'를 만나면 투수는 어떤 기분이 들까요? 막강한 내공의 고수를 만났을 때 전해지는 두려움. 더는 공을 던질 곳이 없을 거 같은 공포심이 몰려올 것입니다. 그렇게 심적으로 위축되는 그 순간, 승패는 사실상 결정됩니다.

● "투수에게 위협감을 주는 전천후 타자가 되겠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벌이는 정부 부처의 고위 공무원이 전한 말입니다. 이번 주 "'부동산 법인의 거래·비규제 지역 분양권 전매 규제' 강화 정책을 추가로 내놓은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투기 세력이 아무리 규제의 틈새를 찾아도, 언제든 과감하게 또 즉각적으로 대처할 것이다"라고 힘줘 말했습니다. 마치 '두더지 잡기 게임' 하듯, 규제 틈새로 머리를 내미는 '투기 두더지'를 망치로 때리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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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부동산세 인상

● 사실상 21번째 대책…핵심 대상은 '부동산 법인'

앞서 언급한 대로, 정부가 이번 주 부동산 투기 대책을 또다시 내놨습니다. 정부 출범 뒤 사실상 21번째로, 핵심 대상은 '부동산 법인'이었습니다. 12·16 대책 이후 개인이 아닌 '법인을 활용한 부동산 투기'가 늘어났다고 판단한 데 따른 긴급 처방입니다.

부동산 법인을 세우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같습니다. 바로 '돈'입니다. 각론적으로 보자면, 그 가운데서도 '다주택자에 대한 투기 규제 회피'가 대표적입니다. 기본적으로 법인이 소유한 주택은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이런 허점을 이용해 다주택자가 가짜 법인을 세우고, 그 법인으로 아파트 소유권을 넘겨 보유세를 줄이는 것입니다. 만약 다음 달까지 다주택자가 10년 이상 보유한 아파트를 팔면 양도세율 중과도 피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법인이 집을 처분해도, 세율이 최고 35%에 불과해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율(최고 62%)보다 낮습니다. 본인 명의로 1채·법인 명의로 1채, 이렇게 분산해두면 세금을 훨씬 적게 낼 수 있는 것입니다.

부동산 법인은 '자녀에게 아파트를 편법 증여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합니다. 자녀 명의로 법인을 만들어 그곳으로 돈을 보내고, 그 법인 명의로 고가의 아파트를 사버리는 것입니다. 20대 초반 딸 명의로 법인을 만든 뒤, 그 법인에 돈을 보내 고가의 아파트를 사준 병원장이 국세청 실거래가 조사에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자금 출처 조사를 받지 않으려고 돈을 법인으로 보내는 이른바 '세탁'을 한 뒤, 법인 명의로 고가의 아파트를 사들인 사례도 다수 포착됐습니다.

●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을 곳으로" vs "끝까지 판다"

이처럼 부동산 법인을 활용한 편법 거래가 성행하자, 정부는 레이더 높이 세우고 또 현미경을 들이대며 강도 높은 조사에 나섰습니다. 주요 조사 대상지는 고가 아파트가 밀집한 강남 지역 등 서울 주요 도심이었습니다.

이들 지역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압박이 들어오자, 부동산 법인들은 영악하게(?) 레이더망에 잡히지 않을 곳을 찾아 나섰습니다. 같은 수도권이지만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그래서 집값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곳. 바로 경기 남부(군포, 안산, 시흥, 오산, 평택, 화성)와 인천 서·연수구 등이 다음 목적지였습니다.

실제로 이들 지역에선 최근 몇 달 새 부동산 법인의 주택 거래 비중이 '극적으로' 높아졌습니다. 전체 주택 거래 중 부동산 법인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인천은 지난해 평균은 1.7%에 불과했지만 지난 3월에는 11.3%로 급증했습니다. 군포(2.4%→8.5%), 안산(1.5%→7.8%), 시흥(2.5%→6.0%), 오산(2.9%→13.2%), 평택(1.9%→10.9%) 등 경기 남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림 1. 경기 남부·인천 부동산 법인 거래 비중

이처럼 부동산 법인들이 이들 지역에서 활성화된 것은, 앞서 언급한 대로 주택 거래가가 상대적으로 낮아 자금 추적을 피하기 좋기 때문입니다. 현재 비규제 지역에서 거래가가 6억 원 미만이면 자금조달계획서를 내지 않아도 되는데, 이 점을 교묘하게 파고든 것입니다. 이들 지역에서 지난 1월부터 지난달까지 거래된 주택가를 보면 6억 미만이 대부분입니다. (※ 안산 단원 : 98.0%, 시흥 : 98.9%, 화성 : 93.4%, 평택 : 98.4%, 군포 : 96.3%, 인천 서구 : 98.1%)

실제로 해당 지역들을 직접 가서 취재해 보니, 공인중개소 상당수가 '부동산 법인이 소유한 주택'부터 권했습니다. "인테리어와 내부 수리를 싹 다 해준다", "전세 반환 보증보험도 들어주니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라며 법인 소유 주택부터 우선 보여줬습니다. 또 현지에서는 "이사를 서둘러 가야 해 집을 알아보는데, 공인중개소에서 죄다 법인 소유 물건만 보여줘 굉장히 난감했다. 몇 달 새 집값도 엄청 올랐다"라고 불만을 토로하는 주민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 "동작 그만! 밑장 빼기냐?"

앞서 그랬듯, 정부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칼을 빼 들었습니다. 마치 영화 '타짜'에 나오는 명대사, "동작 그만! 밑장 빼기냐?"를 외치듯 말입니다. 정부는 우선 이들 지역 부동산 법인에 대한 실거래 특별 조사에 나섰습니다. 1) 본인이 임원으로 있는 법인에 주택을 팔았거나, 2) 같은 사람이 여러 개 법인을 설립해 각 법인을 통해 주택을 사들였거나, 3) 미성년자가 집을 샀거나 혹은 4) 외지인이 빈번하게 다른 지역의 주택 매수한 사례가 주요 조사 대상입니다.

더 나아가 자금조달계획서 제출 대상을 모든 법인 거래로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개인과 법인 구분 없이 규제 지역은 3억 원 이상, 비규제 지역은 6억 원 이상 주택 거래 시에만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해야 했는데, 이것을 예외 없이 전부 다 내도록 의무화해버린 것입니다. 법인 거래 서식도 따로 만들고, 자본금이나 임원 정보, 업종 등 자세한 정보를 모두 신고하게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규제 제도를 강화한 것을 넘어, "투기 세력에 조금의 빈틈도 주지 않겠다"라는 정부의 굳은 다짐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남영우 국토부 토지정책과장도 "편법으로 활용돼 왔던 법인의 주택 거래를 철저하게 관리해, 투기 통로로 활용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취지다. 엄격하고 철저하게 관리를 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라고 밝혔습니다. 말 그대로 "끝까지 파겠다"는 것입니다.

아파트 분양권 (사진=연합뉴스)

● 또 다른 히든카드, '분양권 전매 금지'

정부의 칼이 향한 곳은 '비규제 지역 부동산 법인'만은 아닙니다. 수도권과 지방 광역시 대부분 지역 민간택지에서 공급되는 주택의 분양권 전매도 금지한 것입니다. 청약에 당첨돼도 웃돈을 받고 바로 팔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정부가 가지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수도권 청약 열기가 너무 뜨겁다. (정부는 대개 '과열'이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2) 이처럼 어렵게 당첨된 분양권이 곧바로 팔려나간다.

실제로 올해 청약 경쟁률을 보면, 분양 단지 10곳 중 4곳 이상이 20대 1을 넘겼습니다. 이렇게 높은 경쟁률을 뚫고 당첨된 상당수의 분양권은 어찌 된 일인지 전매 제한 기간이 끝나자마자 6개월 안에 팔려나갔습니다. "새로 지은 좋은 아파트에 가족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해보겠다"라며, 고이 간직해온 청약통장을 내밀었던 서민들로서는 허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서울과 같은 투기과열지구는 분양에 당첨돼도 입주할 때까지 팔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 하지만, 수도권과 광역시 가운데 조정대상지역이 아닌 곳은 당첨 뒤 6개월이 지나면 분양권을 팔 수 있습니다. 또 비규제 지역 민간 택지는 당첨 이후 곧바로 팔 수도 있습니다. 청약에 당첨된 뒤 아파트 건물이 지어지기도 전에 분양권을 팔아 차익을 남기는 것입니다.

이 같은 문제를 막기 위해 정부가 오는 8월부터 수도권과 광역시의 전매 제한이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조정대상지역뿐만 아니라 대부분 지역에 분양권 전매를 '소유권 이전등기' 이후로 막은 것입니다. 신축 아파트 경우 분양을 마치고 실제 준공까지는 대개 2~3년 걸리고, 입주하고도 소유권 이전 등기까지 또 몇 달이 더 걸립니다. 결국, 이 동안은 청약에 당첨돼도 분양권을 팔아넘기지 못하게 됩니다. 강화된 전매 제한 규제는 오는 8월 주택법 시행령이 개정 이후 모집 공고를 낸 아파트 단지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부동산, 아파트 (사진=연합뉴스)

● "재수에 강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앞서 대선후보인 시절, 한 예능프로그램에 나와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재수에 강하다. 대학도 재수로 갔고, 사법시험도 재수였다. 대선도 재수다." 또 모 대학 졸업식에서도 "대학 입시도, 졸업도, 사법시험도, 변호사도, 대통령 선거도 실패 후에 더 잘할 수 있었다"라고 축사를 전했습니다.

국토교통부를 출입하는 기자로서 연이어 나오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보며, 저는 "재수에 강하다"라는 문 대통령 발언을 자주 떠올리게 됩니다. "시장에 지나치게 많이 개입한다", "투기 세력보다 서민부터 죽는다", "공산주의 국가처럼 세금을 걷는다" 등등 다양한 비판에도 부동산 투기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은 확고부동해 보였습니다.

오히려 '집값을 잡는 데 실패했다. 그것도 처절하게' 이 같은 혹평을 받았던 참여정부의 실책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어금니를 꽉 깨문 굳은 의지가 보였습니다. 마치 '전 타석에서는 삼진을 당했지만, 이번 타석에서는 무슨 공이든 다 쳐내고 말겠다'라며 배트를 움켜쥐는 '4번 타자'처럼 말입니다. 부동산 정책을 정하고 집행하는 정부 부처 공무원들은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다른 결과를 바라는 사람은 정신병자이다"라는 아인슈타인의 일갈도 가슴에 담아두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옳을까 아니면 잘못됐을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사회학자 레몽 아롱의 말처럼 "정치적 선택이란 선과 악 사이의 선택이 아닌,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중의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오늘 대한민국의 집값에 대해 만족하는 국민이 많을지 아니면 불만족한 국민이 많을지를 떠올려보면, 각자 나름의 답에 다다를 수 있을 거 같기도 합니다. 2번째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시청자,독자 여러분과 함께 잘 지켜보겠습니다.


▶ 세금 혜택 악용한 '법인 주택 거래'…정부, 특별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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