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인-잇] "왜 사람을 멋대로 뽑아?" 그게 시작이었다

김창규│입사 21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회사 보직자 애환을 연재 중

오프라인이 된 지역의 대리점장을 구하는 일이 최근 우리 지사의 현안이었다. 직영 운영으로 당장의 급한 불은 껐지만 이것은 비용 대비 효율이 떨어지고 그 지역의 매출도 급감할 수밖에 없는 방식이어서 어서 빨리 신규 대리점장을 구해야만 했다.

나는 해당 지역의 가 지점장에게 가서 대리점장 구인 진행사항에 대해 물었다. 다행히 후보자가 3명 있고 그중에서 가 지점장이 보기에는 B가 적합하다고 한다. 궁금함이 들어 이력서를 보자고 했다. 살펴보니 내가 생각하기에는 지점장이 추천한 후보자는 재무 부분이 약했다.

"대리점을 하려면 적어도 어느 정도의 재무 능력은 필수인데……"

나는 이런 염려를 내비쳤지만 지점장은 뜻을 굽히지 않고 B가 제일 낫다며 그 날 안에 결재를 상신하겠다고 버텼다.

"지점장. 수고는 했는데 좀 더 검토했으면 해요."

"(머뭇거리며) 이 분이랑 대리점 개설 거의 다 얘기가 다 되었습니다."

"뭐라고? 그냥 지점장이 이미 결정했다는 얘기야?"

"그게 아니라……"

"이 사람 이거, 대리점장 선임을 마음대로 확정하면 어떻게 합니까? 나는 그냥 도장만 찍는 사람입니까?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평소에 보면 당신이 지점장이라고 마음대로 하는 것 같아요. 직원들 휴가 가는 것도 왜 가 지점장 전결로 합니까?"


내가 서명만 하는 사람인가!

내가 화를 내며 따지자 지점장은 당황해하며 "지점 내의 일이라 그렇게 판단했다"는 취지의 해명을 했다.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면서도 "어쨌든 보고를 잘하는 게 직장 생활의 기본"이라고 잔소리를 해댔다. 유쾌하지 못한 대화를 끝낸 뒤 난 사무실로 복귀하기 위해 차를 탔다. 머리를 비우며 운전을 하고 있는데 다 지점장한테 전화가 왔다. 겁이 덜컥 났다. 지난번 회의 자리에서 주요 고객 한분이 이탈 움직임이 있다고 했는데 혹시 그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무슨 일이에요?"

"예. 구역조정 때문에 나 대리점장과 다 대리점장의 갈등이 깊어졌습니다. 오셔서 좀……"

"내가 가면 해결이 되나요? 하하하… 어쨌든 필요하면 가죠."

"감사합니다."


겉으로는 웃으며 전화를 끊었지만 속으로는 황당했다. 아니 자기네 대리점끼리 싸우는 문제를 굳이 내가 가서 왜 조정을 해 줘야 하나? 지점장인 자기가 하면 되는데 말이다. 그렇게 혀를 차는 중에 또 전화가 왔다. 이번엔 본사 판매팀장이다.

"판매총괄 임원께서 전국 판매원들 주간활동보고를 받으신다고 합니다. 참고하세요."

"그 많은 판매원들 활동을 다 체크하신다고요?! 회사 전체로는 판매 실적을 달성하지 않습니까.
비상 상황도 아닌데 굳이 그러실 필요가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직접 관리하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요."


피곤이 몰려왔다. 판매총괄 임원이니 영업 관련 이것저것 다 확인하고 독려하겠다는데 뭐라 할 말은 없지만 너무 지나치게 치고 들어온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본인이 다 관장할 거라면 전국의 판매원을 모두 본사 판매팀 소속으로 하고 각 지사장, 지점장에게는 판매에 대한 책임을 면하게 하든지 그것도 아니면서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기사 뭐 판매총괄 임원뿐만 아니라 대부분 임원들이 그렇기도 하다.

사무실로 복귀해서 결재함을 열었다. 이런, 엎드려 절 받기이다. 아까 휴가에 대해 지적당했던 지점 직원들의 휴가원이 나한테 올라온 것이다. 씁쓸한 마음으로 결재했다.

권한이란 무엇이던가...

잠시 기대앉아 '권한'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봤다.

관리 조직에 있어서의 권한이라는 것은,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사항을 결정하고 그 조직 구성원들로 하여금 따르도록 하는 권리 또는 지위의 범위를 말한다. 이것은 그 조직을 유지, 발전하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임에는 분명하다.

그런데 이 권한은 그 지휘의 범위에 있어서 경계가 애매하다. 물론 정상적인 회사는 조직별, 직책별 업무분장을 세분화하면서 자연스럽게 권한도 규정되어 있지만 현실적으로 각 조직 단위당 책임자는 그 조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이것 저것 다 간섭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보직자 성향에 따라 자신이 생각하는 본인의 권한 범위를 다르게 생각하곤 한다. 누구는 1에서 10까지를 모두 본인의 권한으로 생각하고 누구는 1에서 3까지만 자기 권한이고 나머지는 하급 보직자의 권한이라고 생각하는 것.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각 조직별 수장들이 바로 밑의 수장들과 갈등을 겪고 눈에 보이지 않는 다툼을 벌인다.

내가 판매총괄 임원의 간섭에 대해 불만을 품은 것은 내 판매(원) 권한을 침범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내가 가 지점장에게 화를 낸 것은 내 결심이 필요한 사항을 왜 단독으로 결정했는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반대로 내가 다 지점장에 대해 실망스럽게 생각한 것은 본인 권한 내에서 해결할 일을 굳이 나한테 얘기할 것이 뭐냐는 일종의 답답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을 그들이 안다면 판매총괄 임원과 가 지점장은 내가 그들의 권한을 무시했다고 기분 나빠 할 것이고,  다 지점장 입장에서는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회피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퇴근할 무렵 이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가 지점장이 보낸 메일이다. 자신이 B 대리점장을 적합하다고 판단했던 사유를 잔뜩 써 놓고 말미에 이 사안에 대한 결재를 상신했다는 내용이었다. 결재함으로 갔다. 난 그 문서를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자신들 관할 대리점장을 그 지역 지점장인 자기가 뽑는다는데 내가 뭔데 이래라저래라 하지? 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나도 지사장인데 후보자들의 면접도 직접 보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디까지가 내 권한일까? 한참 더 고민을 해 봐야겠다.

#인-잇 #인잇 #김창규 #결국꼰대

# 본 글과 함께 챙겨 볼 '인-잇', 만나보세요.
[인-잇] 일 잘하는 최 대리, 김 부장은 왜 싫어할까
[인-잇] 말만 잘하는 김 부장, 인사평가는 왜 좋지?
인잇 시즌 2 엔드

인잇 사람과 생각을 잇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