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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댓말 판결문', 권위적인 사법부 인식 바꿀까

<앵커>

다른 공문서들과 달리, 법원의 판결문은 지난 70여 년 동안, 유독 반말체로 써왔습니다. 불친절한 건 물론, 위압적이죠. 반말이 당연한 줄 알았던 판결문에, 처음으로 존댓말을 쓰기 시작한 판사가 나왔습니다.

조기호 기자가 만났습니다.

<기자>

지난해, 1년이 넘는 소송에서 이긴 양진석 씨. 하지만 판결문을 읽으면서 명령이나 지시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양진석/재독 교포 기업인 : 우리가 이겼다 하더라도 칼로 자르듯이 ~한다, ~한다… 이런 게 꼭 군대 있을 때 상사들이 얘기하듯이 그런 느낌을 갖죠.]

또 다른 소송 당사자, 김 모 씨의 경험도 비슷합니다.

[김 모 씨/소송 당사자 : 그냥 (판결문) 봉투만 봐도 그냥 막 떨려요. 그걸 열었을 때 막 반말로 돼 있으면 내가 죄인 취급 받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우리나라 헌법이 제정된 1948년 7월 17일 이래로 법원은 모든 판결문을 다 이렇게 반말체로 작성해왔습니다.

하지만 이 오래된, 견고한 흐름을 깬, 이른바 '존댓말 판결문'이 나왔습니다.

지난달 23일 대전고등법원 민사 판결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주문과 판결 이유 등이 모두 반말이었는데, 이 판결문은 모든 문장이 존댓말입니다.

또 다른 가처분 소송 결정문이나 형사 사건 결정문 역시 모든 문장이 존댓말로 돼 있습니다.

7년 전 사법부가 유신 체제의 잘못을 사과하며 판결문의 한 문장을 존댓말로 쓴 적은 있지만, 판결문 전체를 존댓말로 쓴 건 처음입니다.

이 판결문을 쓴 판사는 최근 1년 동안 단계적으로 존댓말을 늘려왔습니다.

[이인석/대전고등법원 고법 판사 : 반말에서 존댓말로 바꾸는 게 처음에는 저도 굉장히 어려웠어요. 판결문 주문은 강제 집행이거든요. 국가 권력이 강제 집행하기 때문에 여기에 의문이 있으면 안 되고 명확해야 하거든요.]

아직 판사 한 명이 시작한 움직임인 데다가 법조계의 반발도 예상되지만 사법부가 지나치게 권위적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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