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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중남미 '남녀 2부제' 외출 도입…그럼 트랜스젠더는?

코로나19에 묻혀서는 안 될 '가치'들

파나마 경찰이 외출 제한 단속하는 장면
중남미 몇몇 나라에선 코로나19 확산 방지책으로 '2부제 외출' 제도가 도입됐습니다. 2부제의 기준은 다름 아닌 '성별'입니다. 월요일과 수요일, 금요일은 여성만 외출할 수 있고, 화요일과 목요일, 토요일은 남성만 외출을 허용하는 식입니다. 일요일은 남녀 모두 집에 머물러야 합니다. 외출도 생필품과 의약품 구입과 같은 필수적인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 '남녀 2부제' 도입 이유는?

왜 이런 제도가 도입됐을까요? 한 마디로 '통제가 가장 쉽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현재 이 제도를 도입한 나라는 파나마와 페루, 콜롬비아 등입니다. 애초 파나마 정부는 성별이 아닌 신분증 끝자리 숫자에 따라 외출을 허용했습니다. 하지만 신분증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단속이 쉽지 않을뿐더러 위반자도 속출했습니다. 그 사이 코로나19 감염자는 계속 늘어났습니다. 그러자 파나마 당국은 좀 더 강도 높은 통제 방안을 도입했습니다. 바로 '남녀 2부제'입니다.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아도 육안으로 적발이 가능하기 때문에 단속이 쉽고, 더욱이 외출 인원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으니 '획기적'이라는 평가가 뒤따랐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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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의 성소수자 대피소
이 제도의 이면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트랜스젠더와 같은 성소수자들입니다. 자신의 육체적인 성과 정신적인 성을 반대로 인식하는 트랜스젠더들은 당장 외출이 쉽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남성의 신체를 지니고 태어났지만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여성으로 인식하는 트랜스젠더의 경우, 여성의 외출이 가능한 날에 외출했다가 자신이 여성임을 '입증'하지 못하면 단속 대상이 됩니다. 화장을 하고, '그들에게 여성임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옷을 입더라도 여성임을 '완벽'하게 '입증'하지 못하면, 다시 말해 '그들이 느끼기에 뭔가 어색하면' 이 역시 단속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제3의 성'을 인정하지 않고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이들에게 남성과 여성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이들에게는 '폭력'입니다.

콜롬비아인 트랜스젠더 앨리스 니콜렛 로드리게스
● "트랜스젠더들 굶어 죽고 있다"

콜롬비아의 트랜스젠더 앨리스 니콜렛 로드리게스는 "화장을 하지 않거나, 스커트를 입지 않고 외출할 경우 성 정체성을 부정당한다"며 "그들의 고정관념과 성 역할을 따르지 않으면 공적 장소에서 나의 정체성을 잃게 된다"고 호소했습니다. 얼마 전 폭력적인 일을 당했다고도 했습니다. 파나마의 트랜스젠더 로사 카브레라는 "단속 당국이 신분증을 요구해 보여주면, '당신은 오늘 외출이 불가능하다'며 나를 붙잡고 괴롭히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트랜스젠더 단체 대표 비너스 테자다
파나마의 트랜스젠더 단체 회장인 비너스 테자다는 "우리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당국의 외출 제한 조치에 동의하지만 친구들은 지금 '남자의 날'에도, '여자의 날'에도 외출을 할 수 없다"면서 "친구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우리도 외출할 권한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음식과 약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다른 트랜스젠더 단체 대표인 줄리 살라망카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 동안 트랜스젠더들은 바이러스에 맞서야 할 뿐만 아니라, 경찰의 폭력, 슈퍼마켓의 폭력, 일상의 폭력과도 싸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구 반대편 케냐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아프리카 일부 나라에서는 코로나19 확산을 저지한다는 명분 아래 공권력이 남용되고 있습니다. 통행 금지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경찰과 군대가 나서 시민을 향해 총을 쏘고 있습니다. 많은 시민이 코로나19 때문이 아닌 공권력에 의해 죽거나 다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는 세계적 대재앙이 분명합니다. 온 인류가 힘을 합쳐 극복해야 할 대상임이 자명합니다. 하지만 코로나19에 묻혀 민주주의의 다양한 가치마저 훼손돼서는 안 될 것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소중한 인권 의식까지 사라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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