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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쌍용차 복직자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을들의 다툼' 부추기는 사회

'2009년 여름, 회색 작업복 차림으로 공장 지붕 위를 질주하는 조합원들. 무장한 채 그들을 쫓는 경찰특공대. 하늘에서 쏟아지는 최루액 비. 맞서 던지는 화염병. 77일의 옥쇄 파업. 대한문 분향소. 사회적 대타협. 계속되는 복직 연기. 해고자와 그 가족 30명의 이어지는 죽음.'

쌍용차를 떠올리면 눈 앞에 펼쳐지는 장면입니다. 그로부터 10년 11개월 만에 마지막 복직대상자 47명 중 35명이 지난 4일 평택공장으로 출근했습니다. 가장 마지막으로 복직하겠다고 얘기해 온 김득중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과 77일간의 공장 점거 파업을 주도한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도 포함됐습니다.
쌍용차 복직자 환영
● '복직 투쟁' 11년의 세월, 축하와 비난의 시선

강산이 변하는 동안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은 국가폭력과 '먹튀 자본', 부실 경영 책임을 가리키는 대신 해고자들을 향했습니다. 회사의 경영 악화로 해고당한 '가장'들의 11년 가까운 싸움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기도 했습니다. 때론 이들의 복직 투쟁이 전 직장의 정규직 자리로 복직하겠다는 아집으로 비쳤습니다. 해고자들은 '이제 회사와 그만 싸우고 새 직장을 알아보라'는 이야기를 거의 매일같이 들어야 했습니다. 11년, 이들을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건 건 '왜 아직도 싸우고 있느냐'란 비아냥이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의 시선은 더 냉소적이었습니다. 상당수 기사 댓글은 이들의 복직 투쟁을 응원하기보다 냉담하고 비하하는 눈초리였습니다. 일부 비정규직과 실업자는 이들의 싸움을 자신들의 정규직 일자리를 빼앗는 '배부른 요구'로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쌍용차 복직자 환영
● '을과 을의 다툼' 부추기는 사회

'경영난 속 기어코 성공한 기득권 정규직 노조의 복직 투쟁'이라는 이 프레임은 11년 간 갈등과 아픔을 만들어 낸 '갑'과 사회적 구조에 대한 논쟁을 지웠습니다. 잘 드러나지 않는 '사회적 구조' 대신 눈에 보이는 해고 노동자들에 대한 비난은 한 줌 먼지보다 가벼웠습니다.

해고를 바라보는 '냉소적인 시선'은 코로나19발 경제 위기로 가장 먼저 잘려 나가는 사람들에게도 유사하게 반복됐습니다. 전례 없는 위기 속 선진국들이 시행하는 '해고 없는 정부 지원책'을 요구하는 노동계에 대해서도 '기업이 어려운데 어떻게 고용을 보장하냐'며 외려 사업주에 감정 이입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거리로 내몰린 하청·계약·파견 노동자들의 외침은 '떼쓰기'로 묘사되기도 했습니다.

● 한국 사회에서 '해고' 당한다는 것

하지만, 해고 노동자가 겪었던 일들이 나와 아무런 관계없는 일은 아닙니다. 내가 만약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잘린다면, 나와 우리 가족을 한국 사회의 공적 안전망이 책임져준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철탑에 오르거나 천막 아래 장기 농성 중인 해고자들의 사연을 굳이 알지 못하더라도, 공적 안전망이 취약한 한국과 같은 나라에선 정말 '해고가 살인'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법에서도 정리 해고의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습니다. 정리해고는 '노동자의 잘못이 아닌 사용자 측 사정으로 인한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를 의미합니다. 노동자는 분명히 귀책사유가 없지만, 생계 기반을 대부분 잃게 되기 때문에 그만큼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이면서 적극적 노동시장 프로그램에 가장 적은 돈을 투자하는 나라인 한국에서 '쌍용차의 비극'은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습니다.

● '누군가는 그 사람 편에 서야 한다'

쌍용차 복직자들은 이제 일터로 돌아가게 됐지만, 여전히 싸움이 현재 진행형인 곳들도 많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확산하는 경제 불황으로 해고 불안에 떠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그저 '남의 일'로 여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정리해고가 언제든 사회적 참사로 비화하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쌍용차 노사 갈등 / 해고자 복직 시위
'쉬운 해고'가 남긴 아픔과 상처는 아직도 선명합니다. 하지만 11년 만에 작업복을 입은 35명의 쌍용차 복직자들의 표정은 설렘이었습니다. 쌍용차의 교훈은 명확합니다. 해고자들의 외침을 단순한 '의자놀이'로 이해해서는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겁니다. 점점 고용 불안이 상수가 되는 한국 사회에서 해고자와 그 가족들이 겪은 고통은 우리가 얼마든지 겪을 수 있는 '오래된 미래'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을 다시 한번 축하합니다.

참고문헌
<아픔이 길이 되려면>(2017, 김승섭 지음, 동아시아)
<노동자, 쓰러지다> (2016, 희정 지음, 오월의 봄)
<노동자의 변호사들, 대한민국을 뒤흔든 노동사건 10장면> (2013, 민주노총 법률원, 오준호 지음, 미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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