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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학 시절 운동권' 최형두, 통합당 간 이유

과거 '민정당사 점거 사건'으로 옥살이

SBS 뉴스

작성 2020.05.06 16:04 수정 2020.05.06 16:4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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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진의 뉴스브리핑]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SBS에 있습니다.

■ 방송 :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월~금 (14:00~16:00)
■ 진행 : 주영진 앵커
■ 대담 : 최형두 통합당 당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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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현역 4선 의원의 지역…공천 과정 어려움은 없었나?
"공천 과정서 최선 다해…자연스런 교체 과정이라 생각"

Q. 언론인이 된 계기는?
"박종철 치사 사건 등 정의 밝혀준 언론에 감명"

Q. 정치인으로 변신 계기는?
"총리실-靑-국회 거친 공직 경험 크게 평가받아"

Q. 왜 보수 정당으로 갔나?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체제의 정당성 인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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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영진/앵커: 이번 21대 국회에 새롭게 진출하게 된 화제의 당선인을 만나보는 시간. 오늘(6일)은 미래통합당 창원 마산합포구의 최형두 당선인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최형두 미래통합당 당선인: 안녕하십니까?

▷ 주영진/앵커: 축하 인사는 많이 받으셨죠?

▶ 최형두 미래통합당 당선인: 네.

▷ 주영진/앵커: 어떻습니까? 본선도 어렵겠습니다마는 당내 경선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 최형두 미래통합당 당선인: 당내 경선 매우 어려웠죠. 현역 중진 의원, 5선 의원이 계셨고.

▷ 주영진/앵커: 이주영 국회부의장.

▶ 최형두 미래통합당 당선인: 그리고 또 초선 의원 한 분 계셨습니다. 그래서 현역 의원 2분과 경쟁하는 구도였고 여기에 또 2명 신예.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2명의 경쟁자가 있었기 때문에 그게 거의 한 3월 20일까지 갔습니다. 굉장히 어려운 선거였고 또 본선 역시도 요즘 경남, 부산, 울산이 옛날 같지 않습니다. 거기도 민주당 지지세가 막강하고 해서 약간의 실수라든가 또 이런 걸 또 용납하지 않는 게 요즘 분위기여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 주영진/앵커: 이주영 국회부의장이 경선에서 배제가 되고 상당히 반발도 많이 했었는데 그 과정이 상당히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좀 들어요.

▶ 최형두 미래통합당 당선인: 아마도 당에서 그런 결정을 했을 때 지역 여론도 있었는데 저는 그 과정을 이제 신진대사의 과정으로 봤습니다. 자연에 신진대사가 있듯이 봄과 겨울이 서로 교대하고 서로 양보하고 이런 과정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과정이 조금 마찰음이 조금 컸던 셈인데 아무래도 이주영 부의장으로서는 한 번 더 하면 만일 다수당이 될 경우에 6선에 국회의장이 될 수 있는데 지역을 위해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말씀도 하셨고 또 저로서도 '새로운 여망들, 새로운 인물 또 새로운 전략에 대한 지역의 기대가 있고 해서 그것들이 자연스레 여론 수렴 과정을 통해서, 경선을 통해서 또 공천 과정을 통해서 결정될 것이다' 하고 모든 것을 다 운에 맡기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 주영진/앵커: 어떻습니까? 저는 사실 최형두 당선인이 정치권에 입문한 이후로는 오히려 자주 못 뵀고 예전에 언론사 선배로서 취재 현장에서 뵀던 기억이 나고 워싱턴 특파원도 저보다 먼저 하셨고 말이죠. 언론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 최형두 미래통합당 당선인: 이게 제 나이 딱 쉰이 될 때 총리실에서 제안이 왔습니다. 공보실장을 좀 하면 어떻겠냐고.

▷ 주영진/앵커: 당시 총리는?

▶ 최형두 미래통합당 당선인: 김왕식 총리고요. 당시 장관은 임종용 장관이었습니다. 기자를 하면서 제가 기재부를 출입했는데 기재부 때 과장하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자로서 저를 좀 유심히 보셨던 것 같아요. 사람이 실력이 출중하지는 않지만 겸손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직을 한번 해 보면 어떠냐고. 공보실장 자리가 역대 언론인 출신들이 더러 맡아왔던 자리고 해서 추천이 왔는데 사실 과분하기도 하고 또 자신도 없었고 해서 고사를 했습니다. 고사하고 갈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고사가 길어지자 '공직 검증을 하자. 그사이에 답변을 더 기다려 주겠다. 검증에 동의해달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뭐 더 좋은 사람 찾아질 것이니까 그 동의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이 검증에 동의를 하고 나니까 온 동네에 평판 조회를 해서.

▷ 주영진/앵커: 이미 다 알려져버리는.

▶ 최형두 미래통합당 당선인: 이미 알려지고 만일 제가 못 가면 저 사람 뭔가 하자가 있어서 못 갔다. 이렇게 돼서 그래서 공직에 가게 되었는데. 그걸 어쩌다 공무원이라고 합니다. 어공이라고 그러죠, 이 같은 경우를. 별정직 1급이었는데.

▷ 주영진/앵커: 늘 공무원 하시는 분들은 또 늘공이라고 하죠.

▶ 최형두 미래통합당 당선인: 그것은 이제 행정고시를 보신 분들이고. 그런데 그 공직이 총리실로 끝난 게 아니고 우연치 않게 대통령 비서실로 이어지고 또 국회 대변인으로 이어져서 별정직으로는 참 드물게 총리실, 청와대, 국회 사무처, 국회 대변인까지 하는 그런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게 아마 우리 지역에서 기대하는 초선이지만 사실은 5선의 중진 의원이 얼마나 영향이 크겠습니까? 지역의 예산이라든가 정책이라든가 굉장히 큰 역량이 있을 텐데 그런 공직 경험, 국정의 어떻게 보면 핵심에서 국정을 배웠다는 것을 크게 평가해 준 것 같습니다.

▷ 주영진/앵커: 그러다가 이제 정치권에 입문하셔서 경선도 치르시고 본선도 치르시고 이제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셨네요. 인생은 정말 알 수가 없는 겁니다.

▶ 최형두 미래통합당 당선인: 알 수 없습니다.

▷ 주영진/앵커: 어떻습니까? 돌아온 길, 지금까지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또 앞으로 갈 길을 헤아려 보면 어떻습니까?

▶ 최형두 미래통합당 당선인: 제 나이와 비슷한 대학 때 친구들은 벌써 4선, 5선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자면 뒤늦게 정치의 길로 들어선 게 아닌가 싶은데 봉사라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대신에 우리 친구들이 국회의원 할 동안에 저는 그분들이 하지 못했던 다른 경험들 특파원도 해보고 또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국민의 삶의 곳곳을 다 살펴보고 정부가 하는 일을 안팎에서 살펴보기도 하고 또 짧지만 공부할 기회도 얻기도 해서 실생활로 그분들과 다른 인생의 경험이라든가 또 지혜를 쌓아온 거 아닌가. 그래서 이 역시도 제가 우리 지역구, 우리 고향과 작지만 우리나라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작은 디딤돌을 제가 쌓아온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 주영진/앵커: 미래통합당에 말이죠. 지금 대학교 당시에 친구분들 이야기를 하셨는데 미래통합당에서 대학 시절 최형두 당선인과 비슷한 길을 걸어온, 즉 당시에 민주화 운동을 하거나 학생 운동을 했던 동료들이 있습니까?

▶ 최형두 미래통합당 당선인: 많죠. 따지고 보면 많습니다. 이번에 공천을 못 받아서 그렇지. 공천 못 받거나 또는 당선이...

▷ 주영진/앵커: 그런데 당선인 중에는 많지 않죠?

▶ 최형두 미래통합당 당선인: 당선인 중에는 아마 찾아보면 있을 겁니다. 그런데 미래통합당, 저 같은 경우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우리 모두가 그렇게 했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자랑하지도 않았고 뭐 그것을 부끄러운 기록으로 숨기지도 않았고. 그 시절이 30여 년 전인데 지금과 상당히 달랐습니다. 민주적 기본권이라는 게 사실 없었거든요.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도 없었고 정치인도, 국회의원도 어떤 사람은 아예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수가 없었습니다. 국민들의 기본권, 언론의 자유라든가 표현의 자유라든가 이런 것도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고 그 시절에 요즘은 영화의 소재가 되고 있습니다마는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의 기본적인 민주화, 대통령 직선제 이런 걸 위해서 저 같은 대학생도 그랬고 많은 시민들이 이룩해서 우리의 오늘날의 민주주의라든가 이런 것들이 결코 우연하게 이루어진 게 아닙니다. 다 그 시절 노력들의 산물이고 저 역시도 그 대열에 잠깐 합류했을 뿐이고요. 그거를 뭐 감추지도 않고 또 그게 자랑할 것도 아니고. 왜냐하면 대부분의 많은 우리 시대의 동료들이 다 했기 때문에 우리 선배들도 했고 그렇습니다.

▷ 주영진/앵커: '감출 필요도 없지만 자랑할 것도 아니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당시에 기사에 등장할 정도로 최형두 당선인이 그냥 학생운동을 함께했던 사람이 아니라 상당히 주도적으로 해왔던 학생이 아닐까 싶고요. 기사에까지 지금 나오고 있는데 민정당사. 저 당시에는 난동이라고 기사를 썼네요. 민주화 투쟁, 학생연합회 공동회장 최형두. 서울대 사회학과 4학년 이렇게 기사가 떴습니다. 제가 이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또 사진도 한 장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은데요. 저때 저 사건 때문에 아마 옥살이도 하셨죠?

▶ 최형두 미래통합당 당선인: 네.

▷ 주영진/앵커: 얼마나 하셨습니까?

▶ 최형두 미래통합당 당선인: 감옥에서 한 10개월 살았고요. 항소심에서 풀려났습니다. 풀려났는데 수배를 한 3년간 당했습니다.

▷ 주영진/앵커: 수배를 한 3년 동안.

▶ 최형두 미래통합당 당선인: 지금 시절을 생각해보면 박종철 사건이 저 전후에 있었습니다.

▷ 주영진/앵커: 1987년 1월에 알려졌죠.

▶ 최형두 미래통합당 당선인: 그 일이 있었고 제가 87년 4월에 붙잡혔고. 그런데 85년 가을부터 굉장히 뭐랄까요. 학생 운동에 대한 법률 적용이 굉장히 무서워졌습니다. 국가보안법이 등장하고 또 그 시기에 어떤 공안 당국에서 어떤 징후를 느꼈는지 모르겠는데 굉장히 수사도 좀 가혹했고 고문 사건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상당히 수배 기간이 길었는데 그런 뒤에 붙잡히게 됐죠. 붙잡히게 되었고 당시에 그 사건이라는 것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남영동의 김근태 씨 고문 사건. 굉장히 많았습니다.

▷ 주영진/앵커: 전 열린우리당 의장 하셨던.

▶ 최형두 미래통합당 당선인: 그 사건들이 이제 87년에 보면 이게 지금은 직선제가 자연스럽게 된 것 같지만 당시 집권자들은 직선제를 안 하려고 사실 계엄령을 발동하려고 했다는 것이 나중에 여러 기록에 나타나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 과정에서 민주화를 바라는 시민들과 또 그거를 군부독재를 계속 이어나가려는 그런 집권층과의 갈등이 큰 시점이었고 그 시점에 특별히 이제 그런 고문 사건들도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 주영진/앵커: 제가 예전의 일들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한 건 사실은 저 당시에 학생운동하고 민주화운동 하셨던 많은 분들이 민주당 쪽에 가 있단 말이죠. 미래통합당에는 물론 있겠습니다마는 적어요. 지금도 뭐 생각하면 원희룡 제주지사 정도 생각이 난단 말이죠. 그러니까 최형두 당선인 같은 경우는 왜 민주당이 아니라 보수 정당. 특히 80년대 저 당시에 군사 독재 정부의 어떤 면에서 뿌리가 있는, 그렇죠? 당시 민주정의당. 이런 보수정당에 합류해서 정치하기로 결심을 했을까. 이 부분을 사실 듣고 싶어서.

▶ 최형두 미래통합당 당선인: 그거는 아마 경험이 다를 겁니다. 저 역시도 88년에 석방이 되었을 때 이제 정치권에 제안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양 김 씨. DJ, YS 모두 젊은 피 수혈한다고 저도 그 젊은 피 수혈 리스트에 있더라고요, 보니까. 당시 저는 어느 정도 민주화되었기 때문에 또 제가 당시에 학생운동을 하면서 저희 선친이 말단 공무원이었는데 엄청나게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많이 눈물 흘리시고 해서 이제 일정하게 했기 때문에 나는 실력을 길러야겠다 그래서 나는 종합상사에서 우리나라 외화벌이에 제가 외화 가득을 하는데 좀 앞장서볼까 생각도 했었고 다른 하나는 기자를 하게 된 것은 저 시기에 사실 저도 도움을 받았는데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밝혔던 게 언론이었습니다. 지금은 다 보수 언론으로 지칭되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 주영진/앵커: 동아일보.

▶ 최형두 미래통합당 당선인: 이런 신문들이 앞장섰던 것이죠. 그리고 저 당시에 저도 오랜 수배 끝에 붙잡혔는데 그때 어느 군실에 잡혀있었습니다. 고문 사건으로 막 고문의 위협도 받은 시기인데 그 시기에 제 소재를 찾아서 우리 가족들한테 알려주어서 그 면회를 오게끔 해줬던 것도 언론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 언론이라는 게 참 이 역할이 크다. 특히 이 민주화의 물꼬를 트기도 했고. 그래서 언론계 시험을 보게 된 것이 저로서는 여러 가지 배우는 우리 경제에 대해서도 배우게 되고 또 우리 사회에 대해서도 배우게 되고 또 외교 안보도 배우게 되는 굉장히 귀중한 기회가 되었고요. 그런 과정이 민주당에 갔던 우리 친구들, 처음부터 민주화의 그 시각으로만 쭉 봐왔던 시각과 달리 산업화라든가 또는 국제화, 국제적인 체제라든가 이런 걸 보게 되었고 특히 이제 미국에서 공부했던 시기. 미시경제학을 배워보니까 이게 왜 선량한 정책들이 시장에서 참혹하게 실패했는가. 지금 우리 정부가 겪고 있는 최저임금제 좋은 정책이죠. 그리고 52시간 노동제 좋은 정책일 텐데 그로 인해서 실업이 더 늘어나고 그로 인해서 어려운 사람들이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게 선량한 정책과 시장의 실패라는 것이 왜 그런가에 대해서 보다 공부하게 되는 기회도 되었고. 그래서 그것이 반드시 옳은 말, 선량한 정책 의도로만 되는 게 아니고 자유민주주의라든가 시장경제라는 게 다 이유가 있는 체제다. 대한민국에 공과가 있지만 대한민국이 오늘날 이렇게 오게 된 데는 한미 동맹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다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다 특파원 시절까지 하면서 책까지 냈습니다.

▷ 주영진/앵커: 기억납니다.

▶ 최형두 미래통합당 당선인: 그런 과정들이 저한테는 우리 민주당에 가 있는 친구들과 다른 이런 지적인 어떤 자양분이 됐던 것 같고 또 많은 부분 송영길 의원이라든가 한미FTA 이런 부분에서는 뜻이 같습니다. 탈핵, 요즘 탈원전 문제, 신한울 3, 4호기 재개 문제에 대해서도 민주당 친구들과 뜻을 나눈 친구들이 있고요.

▷ 주영진/앵커: 알겠습니다. 최형두 당선인과 이야기를 지금 마무리해야 하는데 혹시 이재용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문 발표한다고 하는데 현장 그림이 들어오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잘 알고 있는 분이 나오고 있네요. 우리 최형두 당선인도 잘 알고 계시죠. 삼성전자 백수현 지금 부사장인가요? SBS 경제부장 출신의 백수현 부사장이 사회를 보고 있는데 최형두 당선인과는 여기서 좀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를 직접 저희가 실시간으로 보여드려야 하기 때문에 잠깐 우리 최형두 당선인 얼굴 좀 보여주시죠. 오늘 더 이상 질문은 안 드리겠고요. 오늘 하신 말씀 꼭 지켜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최형두 미래통합당 당선인: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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