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내 목숨은 정말 돈보다 위에 있을까

최정규 |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겸 활동가

SBS 뉴스

작성 2020.05.06 11:02 수정 2020.05.06 11:0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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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화재 참사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가 잠잠해져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기대를 가지게 된 2020년 4월 29일, 공사장에서 일하던 38명의 시민들은 영영 일상으로 복귀할 수 없게 되었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참사 사건, 아직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걸 우연히 발생한 화재 사고, 도저히 피할 수 없었던 사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왜 우리는 이런 사고를 알면서도 피할 수 없는지를 되물으며 공사현장에서 흔히 발생하는 상황을 생각해본다. 일반적으로 도급계약에 기재된 공사 마감일이 다가오면 공사를 맡은 시공사의 마음은 복잡해진다. 안전을 위해서 여러 공정을 차근차근 밟아가야 하는데 공사 마감일을 준수하지 못했을 때 발생할 지체상여금(하루 지체할 때마다 일정한 금액을 지급하도록 기재되어 있음) 금액이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이 순간 시공사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 앞에 놓인다. 안전을 위해 차근차근 밟아가야 할 공정을 급하게 몰아쳐 공사 마감일을 맞추거나, 아니면 지체상여금을 감수하거나.

이 선택 앞에서 전자보다 후자의 선택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안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치러야 할 대가가 지체상여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니 아예 비교할 생각을 말도록 압도적으로 커야 한다. 왜냐하면 지체상여금은 공사마감일이 늦어지면 확실히 지불해야 할 돈이지만 안전사고로 인해 부담해야 할 비용들은 선택의 시점에선 아직 불확실한 예상비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사전 경고가 몇 차례 있었기에 사고 발생이 충분히 예견된 상황에도 시공사는 스스럼없이 안전을 포기하곤 한다. 윤리적 비난만 감수하면 될 뿐 경제적으로는 해볼 만한, 아니 어쩌면 더 나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현행 법원에서 내려지는 판결은 산재사업주에게 지나치게 관대한데, 지난 10년간 산재 사망사고로 인해 실형을 선고받은 비율은 0.5%, 유족들에게 배상해야 할 위자료 기준도 교통사고와 동일하게 사망 시 1억 원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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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상여금 몇 푼 아끼려고 지금까지 사업하며 번 돈을 다 모아도, 평생 모아도 구경할 수 없는 돈을 부담해야 하는 그런 선택을 하다니, 참으로 어리석었다'는 비난을 받을 만큼 그 치러야 할 대가가 막중하지 않다면 우린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산재사건이 대한민국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다보면 비판의 목소리가 들리곤 한다. "사업이란게 일정한 리스크를 감당할 수밖에 없는 건데 이렇게 치러야 할 대가가 크면 누가 그걸 감수하고 사업을 하겠는가?"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논리와 철저히 타협해 왔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질문은 모순 덩어리다. 생명과 안전은 한번 침해되면 영영 돌이킬 수 없기에 사업주가 감당하고 말고를 논할 수 있는 리스크의 문제가 아니며, 그 어떤 가치보다 최우선해야 하는 불가침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당연한 진리를 2014년 4월 16일 일어난 세월호 사건으로 재차 깨달았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린 정말 깨닫기나 한 것일까? 지난 2016년에 만들어진 '존엄과 안전에 관한 4. 16. 인권선언'의 내용을 보면 너무나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 (2016)

​하나.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은 최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돈이나 권력은 인간의 생명과 존엄보다 앞설 수 없다.


대한민국 일터에서는 하루 평균 3명 꼴로 사고를 당해 누군가가 숨지고 있다. 코로나 19라는 전염병마저 극복한 우리라면, 산재사망도 막아낼 수 있지 않을까? 질병관리본부가 매일 코로나 19 확진자를 발표하는 것처럼 국가가 매일 산재 사망사건을 브리핑하고 핸드폰 알림 문자로 통보해 그 경각심을 지속적으로 가지게 해 주면 어떨까?

시민들이 서로 연대하고 협력해서 막아내야 하는 건 코로나 19와 같은 전염병만이 아니다. 산재사망사건도 우리가 연대하고 협력해 반드시 막아내기를, 그 어려운 걸 해냈다고 스스로 칭찬할 수 있는 그 날이 오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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