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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말만 잘하는 김 부장, 인사평가는 왜 좋지?

김창규│입사 21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회사 보직자 애환을 연재 중

지역본부에 도착했다. 먼저 와 있는 지사장들과 회사 돌아가는 얘기, 최근 이슈 등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다가 또 평가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당신은 사업부문장이 좋아하잖아. 또 잘 나오겠지."

"무슨 소리야. 나 작년에 목표 미달이었거든."

"선수끼리 왜 그래? 그게 목표 미달과 무슨 상관이야?"

선배 지사장들끼리 숙덕숙덕 거리는 이야기다. 어디나 그렇겠지만 개개인의 평가 등급은 회사가 공개하지 않는다. 물론 개인들끼리도 공유 금지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를 받았는지 항상 궁금해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본인이 말했든지, 정보가 샜든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누가 상위 등급이고 누가 하위 등급인지 알게 된다. 난 조용히 앉아서 대화에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런데 00사업부의 김 부장 말이야. 걔는 어떻게 그렇게 평가를 잘 받는지 모르겠어? 말은 번지르하지만 성과는 사실 별도 없던데 말이야."

"말을 잘하긴 정말 잘하나 봐. 과업이 잘못되어도 뭘 어떻게 둘러대는지 윗사람들이 고개를 끄덕끄덕거리게 만들더라고. 정말 대단한 말빨이야."

"그럼 차 부장은?"

"걔는 골프로 성공했지. 실력이 거의 프로라서 경영진들 모임에, 주요 고객과 함께 가는 라운딩에 항상 초대를 받는다고 하더군. 거기서 점수를 따겠지. 뭐"

"그것도 능력이네."


말만 번지르르~하던데, 인사평가는 왜 좋은 거야?

이런 대화를 듣자 좀 화가 났다. 회사가 친목 단체도 아니고 말을 잘하고 잡기에 능해 상급자와 좋게 지낸다고 평가를 잘 받는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런 점들이 평가자 성향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평가에 반영되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래서 억울하다는 사람이 여기저기 나타나곤 한다.

아이구, 회의 시작이다. 정신 차리자. 이번 회의는 분위기가 좋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실적이 한참 미달이니……. 예상대로 지역본부장은 우리들을 엄청 깼다. 특히나 자기가 구체적으로 지시 못하지만 밑에서 알아서 해 주었으면 하는 업무의 실적이 저조할 때는 답답함을 토로하며 "지사장들 정도 되었으면 정무적 판단을 잘해야지."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렇게 회의는 끝났고 복귀하는 동안 차 안에서 나는 피곤함에도 오늘 들은 이런 말들이 떠올랐다.

"평가 잘 받는 것이 목표 미달과 무슨 상관이냐?"

"말빨이 좋아, 골프를 잘 쳐서 윗 분들과 잘 어울려, 정무적 판단을 참 잘 해. 그래서 직속 상사가(최고경영자 포함) 좋아하잖아."

평가를 할 때 우리는 공정해야 한다,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이성적 기준을 중요시 여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평가자도 사람인지라 본능적으로 내 의도대로 일을 하고, 나한테 잘하고, 나를 즐겁게 해 주는 직원들에게 마음이 더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무슨 프로인지는 모르겠는데 라디오에서 귀가 번쩍 뜨이는 내용이 들린다. 사마천이 쓴 <사기>의 한 대목을 소개한다.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누구는 악하게 살아도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하고 조심스럽게 사는데도 재앙을 만나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낀다.>

사마천의 고민은 나에게 이렇게 다가왔다.

<업무 능력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말을 잘하고 잡기에 능해 경영층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직장 내에서 높은 자리를 유지하며 승승장구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주인의식을 갖고 성실히 일하면서 곧은 말과 행동을 하여 동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평가를 제대로 못 받아 비참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이런 사실은 나를 매우 당혹스럽게 한다.>

사무실에 돌아온 뒤 인사평가를 하기 위해 평가 시스템을 열었다.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우선 대상자들 중에 누가 목표를 달성했고 누가 못했는지를 추려냈다. 목표 달성한 사람들도 달성율이 높은 순으로 우열순위를 정했다. 목표 미달자도 마찬가지로 작업했다. 늘 그렇듯이 몇 가지 벽에 부딪쳤다. 개인별 부여된 목표의 적절성, 목표 달성이 오직 그 직원의 힘으로만 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벽 하나요, 근면 및 성실 여부의 기준, 조직 기여 정도는 무엇으로 판단하는지가 두 번째 벽이었다. 도저히 객관화할 수 없는 항목들을 어떻게 수치화할 수 있을까? 설사 그 사항들을 수치화했더라도 그 수치가 나의 주관성을 완전 배제했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또 다른 벽도 있다. 직원들 중에 한 두 명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능력이 비슷비슷하다. 이런 엇비슷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서열을 매겨야 하나? 이런 사실, 그러니까 객관적 기준으로 평가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심히 주관적인 평가로 인해 억울해 하는 사람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로 인해 느낀 당혹감보다 나를 더 당혹스럽게 했다. 결국 난 어쩔 수 없이 내가 생각하기에 공정하지만 '객관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기준'으로 평가를 하고 말았다.


피드백 설문조사 (사진=픽사베이)
피드백 설문조사 (사진=픽사베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나 역시 평가받는 사람인데 그렇다면 임원들은 나를 어떤 기준으로 평가를 할까?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업무를 잘한다(대부분의 사람들이 동료들보다 본인이 일을 더 잘한다는 착각에 빠져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내 직급, 직책 정도이면 누구나 다 업무를 잘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경영층은 무슨 근거로 지사장들의 우열을 정할까? 평가를 함에 있어서 각자가 자신만의 원칙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그들도 내가 하는 방식과 별반 차이는 없을 것 같다.

평가를 잘 받고 싶나? 그렇다면 나는 나를 나쁘게 평가할 것 같은 윗사람을 미워하지만 말고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무엇을 더 보완해야 할까'를 깊이 생각해 봐야겠다. 그것이 업무능력 향상이든, 업무성과 극대화이든 아니면 윗사람과 친밀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실천하든 뭐든 말이다.

회사 생활, 하나만 잘해서는 2% 부족하다.

#인-잇 #인잇 #김창규 #결국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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