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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일 잘하는 최 대리, 김 부장은 왜 싫어할까

김창규│입사 21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회사 보직자 애환을 연재 중

사무실 회사 직원 갈등 (사진=픽사베이)

이메일이 왔다.
어느 시점까지 직원 평가를 하라는 내용이다.


좀 짜증이 났다. 평가가 중요하지만 회사 구조상 내 평가로 직원이 백프로 승진하거나, 성과급을 더 받거나 하지는 않으나, 당연히 신경을 굉장히 많이 쓸 수밖에 없는 이 업무. 솔직히 하기 싫다. 게다가 등급을 나눌 때마다 나를 원망하며 쳐다보는 누군가를 생각하면 더 그렇다. 그래서 "에이, 이거 나중에 하자"하고 뒤로 일을 미루었다. 그러자마자 전화벨이 울리는데... 이런, 인사팀장이다.

"이번에 평가하는 방법이 좀 바뀌었어요. 중간 평균을 85점에 맞춰 주세요. 보직자 성향에 따라 점수가 너무 높거나 낮아서 작년에 특히 좀 문제가 됐습니다. 등급을 너무 높거나 낮게 줄 때는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작년에 무슨 문제가 있었나요?"

"몇 명에게 논란이 있었습니다. 어떤 직원에 대한 평가가 보직자에 따라 극과 극이어서 그 사유를 확인했더니 어느 한 분이 객관적으로 평가를 하지 않았던 게 드러나서 좀 시끄러웠죠."

전화를 끊고 그게 누굴까 생각을 해 봤다. 여러 명 떠오른다. '누구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는 정말 쉽지 않지'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최 대리가 보고할 것이 있다고 문을 두드린다. 그는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과 고집스러운 말투로 내가 확인해 달라는 것에 대해 설명했다.

"아, 그렇군요. 덕분에 하나 또 알았네. (조심스럽게) 그런데 이 부분, 이것 규정에 맞게 한 것인가요? 아닌 것 같은데?"

"(약간 신경질적인 말투로) 아닙니다. 규정이 바뀌었어요. (단호하게) 이렇게 하는 게 맞습니다."

"그래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시 확인해 주세요."

"(마지못해 한다는 말투로) 예."

나는 "알았다, 고맙다"라고는 대답했다. 하지만 흠잡을 것 없는 깔끔한 최 대리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언제나처럼 그와 대면한 뒤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이 점이 그를 오랫동안 대리 직급에 머물게 한 이유일 거라고 생각했다. 일은 그럭저럭하는데 왜 저럴까? 궁금했다. 최 대리의 1차 평가자인 '가' 지점장을 불렀다. 이런저런 업무 얘기하다가 자연스럽게 최 대리에 대해 물었다. 지점장 얘기를 종합하면 이렇다.

"원래부터 표정이 밝지 않고 무뚝뚝했다. 그리고 자기 주장이 굉장히 강해서 상급자 지시에 호락호락 반응하지 않았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맞지도 않는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으니 상급자들이 괘씸하게 여겼다. 하지만 성실하고 맡은 일은 잘한다."

근면하고 일은 잘하는데 몇 년째 과장 진급 누락이라?
인사팀장 말대로 객관적이지 못한 평가의 결과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의 언행을 보면 누구라도 좋은 평가를 주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그런데 저 친구 스스로는 상급자에게 무례하게 보여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계속 저럴까? 답답했다. 난 '가' 지점장에게 최 대리와 면담도 하고 교육도 해보라고 권했다. 그러자 그 지점장, 이렇게 말한다.

"쉽지 않습니다. 일단 피해 의식이 상당합니다. 몇 년 전 지점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가 아주 열정적으로 일을 했던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건 당시 지점장도 인정했었다네요. 그런데 지점장은 일은 잘 했지만 까칠한 그의 성격은 마음에는 들지 않았는지 평가는 좋지 않게 한 것 같습니다. 진급이 안되었으니까요. 당연히 그는 아주 크게 실망을 했겠죠. 억울하고 불공정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 후로 상사들에 대한 불신, 반감을 표출되는 일이 잦아졌고 그러한 언행이 지금은 아예 몸에 밴 것 같아요."

"안 됐군. 하지만 지금이라도 그 성격을 바꿔야 본인에게 좋을 텐데."

"그러게요. 하지만 자존심이 강한 최 대리에게는 그게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굳이 윗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아요. 그나마 자신의 업무는 성실하게 하니 다행이죠."

최 대리, 참 운이 없는 케이스이다. 업무능력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윗사람에게 잘 보이는 것, 이것을 아부라도 한다면 어쩌면 이것도 능력이다. 왜냐고? 아부를 하면 자신에게 적어도 나쁘지 않다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웬만한 사람이 아니고는 비위가 약해서 혹은 자존심을 굽히기 싫어서 다른 사람에게 (특히 상사에게) 혓바닥의 사탕 같은 말을 쉽게 하지 못한다. 반면 아부하는 사람은 이것을 교묘하게 잘 한다. 다른 사람은 하지 못하는 행위를 하는 것, 이것은 어찌 보면 '차별화된 능력'이다. 좋게 말해 인간관계를 잘 맺는 아주 특출한 능력인 셈이다.

회의를 위해 차를 타고 지역본부로 이동하는 동안 직원 인사평가를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봤다. 특히 최 대리 같은 직원에게는 어떻게 점수를 줘야 할까에 대해서도 말이다. 솔직히 난 업무지향적이어서 나한테 아부를 하든 말든 업무만 잘하면 좋은 점수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타임의 수석 편집장이었던 리처드 스탠절의 저서 <아부의 기술>엔 이런 문구가 있다.

<그럼 아부는 나쁜 것일까? 아부를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 다르지만, 아부는 꼭 필요한 것 중에 하나다. 아부는 칭찬의 일종이자 거짓말의 일종이다. 해서 적어도 손해보는 일은 없는 것이다. 아부를 너무 세련되지 않게 남발해서 거짓말쟁이 아첨꾼의 이미지만 입혀지지 않는다면 아부는 하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이득이다. 듣는 사람도 나쁠 것은 없다. 아부의 장점은 아부가 거짓말이긴 하지만 듣는 사람은 그 진위 여부를 따지려 들지 않기 때문에 들킬 일이 없는 거짓말의 종류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아부를 알아채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자신이 아부를 받는 다는 것은 아부를 받을 만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또한 기분 좋은 일이다.>

흔히들 나쁘게 생각하는 아부는 마치 술처럼 인간관계에 있어서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해 준다. 그런데 업무는 사람과의 협력으로 더 잘할 수 있으므로 업무 능력에는 당연히 인간관계 능력도 포함된다. 그렇다면 나는 이번 평가에서 최 대리에게 어떤 점수를 줘야 할까?

#인-잇 #인잇 #김창규 #결국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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