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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 원 등록금 냈는데 6년 전 다른 교수 강의 영상 틀다니"

"수백만 원 등록금 냈는데 6년 전 다른 교수 강의 영상 틀다니"
"200만 원이 넘는 등록금을 내고 이런 수업을 들으라는 건가요."

충청남도 한 대학에 다니는 이 모(20)씨는 최근 집에서 온라인 강의를 들을 때마다 허탈한 기분을 감출 수 없습니다.

강의하는 교수 얼굴을 보기는커녕 목소리조차 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교수가 직접 강의 자료를 만들어 수업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 공개강의 서비스'(KOCW) 사이트에 강의 링크를 올린 뒤 이를 들으라는 것이 강의의 전부입니다.

이 씨에 따르면 이 강의는 해당 교수가 찍은 영상이 아니라 다른 대학교수가 6년 전에 찍어 올린 영상으로 알려졌습니다.

6년 전 강의다 보니 개정된 교재와 다른 내용으로 수업이 진행되기도 합니다.

이 씨는 지난 6일 언론 통화에서 "강의에서 설명하는 연습문제 내용이 교재와 다르고, 이에 대한 풀이도 다르다"며 "(수강하는 물리 실험 과목은) 시간에 따라 개정되는 내용이 많은데 6년 전 강의를 들으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불만을 표했습니다.

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도 해당 교수에 대한 불만 글이 올라오는 것을 봤지만, 직접 문제 제기는 못 했습니다.

이 씨는 "학점을 주는 교수님에게 밉보일 것 같아 제대로 된 항의도 하지 못한다"고 토로했습니다.

이 대학 관계자는 9일 통화에서 "(KOCW와 같은) 일부 외부 사이트 강의를 이용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지만, 학생들 과제물을 매주 받아 이에 대한 피드백을 반드시 거치도록 하고 있다"며 "5월4일 이후로는 외부 사이트를 통한 강의도 전면 금지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해당 교수는 언론 이메일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온라인으로 강의를 진행하다 보니 부족함이 많다"며 "5주 차 수업부터는 외부 강의를 활용하지 않고, 자체 강의로 진행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대부분 대학이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습권을 침해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습니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전대넷)가 지난달 18일부터 31일까지 전국 대학(원) 재학생 6천261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강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학 온라인 강의에 대해 '만족한다(만족·매우 만족)'는 답변은 응답자 5천101명의 6.8%(347명)에 불과했습니다.

평균 만족도 점수도 5점 만점에 2.19점에 머물렀습니다.

서울 한 대학을 다니는 김 모(25)씨는 8일 통화에서 "읽기 자료만 제공한 뒤 이를 요약하라는 게 전부인 수업도 있다"며 "어떤 교수는 '이 부분은 이 강사가 잘 설명한다'면서 사설 인터넷 강사의 강의 링크를 올린 경우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실질적인 배움을 위해 수강 신청했는데, 이런 식이면 혼자 공부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아쉬워했습니다.

앞서 대학생 김 모(22)씨는 6일 통화에서 "필수 교양 과목인 한 외국어 수업에서 '인사하는 법', '안부 묻는 법'을 다룬 3분짜리 강의 영상만 올려 학생들이 혼란스러워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대학 관계자는 "해당 교수가 20분짜리 영상을 올리려다가 기기 조작이 미숙해 3분짜리 영상을 잘못 올린 것이라고 해명했다"며 "학교 측에서도 해당 교수에게 더 내실 있는 수업을 진행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습니다.

온라인 강의 체계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대학을 배려하기 위한 조치가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원인이 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교육부가 대학이 원격수업 교과목 개설, 콘텐츠 구성방식 등을 자체적으로 편성해 실시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오프라인 강의 1시간 기준, 25분 이상 분량의 영상 콘텐츠를 재생해야 한다는 기준을 없앴기 때문입니다.

전대넷 집행위원장 이해지 씨는 9일 통화에서 "학생들의 최소한의 학습권이 침해받지 않기 위해 대학은 고등교육기관으로서 교육의 질을 보장할 책임이 있고 교육부도 고등교육기관을 관리·감독하는 기관으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등 제대로 된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학습권 피해 해결을 위한 대학생 단체 '코로나대학생119' 운영자 유룻씨는 "온라인 강의 진행이 한 달이 넘어간다"며 "교수들이 수업 방식에 익숙하지 못해 (질 낮은 수업 논란이) 발생한다기보다는 책임 의식 부재로 인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또 "제대로 된 온라인 강의가 이뤄지도록 교육부나 대학 차원에서 보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코로나19라는 급작스러운 상황에서) 온라인 강의 체계가 준비되지 않은 대학이 많아 최소한의 기준만을 남기고 여러 기준을 완화했다"며 "25분 이상 분량의 영상 콘텐츠를 재생해야 하는 기준을 없앤 것은 맞지만 오프라인 강의 1시간 기준, 온라인 수업을 50분 이상 진행해야 한다는 규정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해명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미흡한 부분이 발생할 수 있고 학생들의 불만 사항에 대해서도 인지하지만, 수업 방식은 교수들의 재량권이라 특정 방식으로 진행하라고 일일이 강제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대학 측과 긴밀히 연락하며 질 좋은 온라인 강의를 유지할 것을 꾸준히 권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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