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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내 위를 군림하려는 자, 내 손으로 뽑지 않길

최정규 |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겸 활동가

반대 X (사진=픽사베이)

4년에 한 번씩 우리의 대표자인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 이른바 '총선(總選)'을 앞두고 있다. 대통령을 뽑는 선거는 '대선', 지방자치단체 대표 등을 뽑는 선거는 '지방선거'로 부르는데,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를 '총선'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국회의원 전부를 한 번에 묶어 '한꺼번에' 선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번 총선을 앞두고 '한꺼번에'라는 단어가 줄곧 마음에 걸렸다. 대표자를 선택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기에 한 명씩, 한 명씩 꼼꼼히 따져서 뽑아야 하는데, 그냥 몰아서 한 차례에 뽑아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선거철만 되면 머리를 숙이며 '후회 없는 선택'일 거라 약속했던 사람들이 당선된 뒤 우리에게 보여주는 행동이 우리의 선택을 민망하게 하는 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1월 경기도 안산의 한 시의원이 시립국악단원들에게 5만 원을 주며 "오빠라고 불러"라고 하는 등 여단원들에게 갑질을 했던 사건이 뉴스에 보도되어 공분을 샀다. 이 뉴스를 접하고 많은 시민들이 분노를 표출한 건 갑질을 행한 자가 바로 시민들의 대표인 시의원이었다는 점도 작용했다. 그런 갑질이나 하라고 대표자로 뽑아 준 것이 절대로 아니기 때문이다.


시립국악단원들은 성희롱에 대해서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고, 금품을 제공한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고발된 사실을 확인했다. 단원들은 선거관리위원회가 구체적으로 어떤 범죄사실로 시의원을 고발했는지, 그리고 관련 수사와 재판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 검찰과 법원에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그러나 당황스럽게도 선거관리위원회(안산시 단원구)는 '진행 중인 재판과 직접ㆍ구체적으로 관련되는 정보로서 공개될 경우 재판의 심리 또는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칠 위험성 있는 정보'라는 이유로 정보공개를 기각하였고, 단원들이 '고발 내용은 모든 시민들이 알아야 할 내용으로 공개대상임이 명백하다'며 이의 신청했지만 그 이의신청마저도 기각했다.

검찰 역시 이미 공소를 제기하였다는 이유로 답변을 하지 않고 관련 민원을 법원으로 이송시켜 버렸고, 법원도 '공개될 경우 재판의 심리 또는 결과에 영향을 미치거나 형사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인정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이유로 정보 공개를 거부했다.

시민들이 선거로 뽑은 대표자가 일반 범죄도 아니고 금품제공 등 공직선거법 위반 범죄로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당해 재판을 받고 있는데, 시민들은 정확하게 어떤 내용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지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는 이 상황, 과연 타당한 것일까? 시민들의 청구가 없어도 마땅히 공개되어야 할 정보가 이렇게 꼭꼭 숨겨져 있는 현실을 보며 우리 위에 군림하는 대표자들의 모습에 분노만 던질 것이 아니라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함을 깨달았다.

"우리의 손으로 뽑은 대표자가 우리를 군림하는 일은 누가, 어떻게 막아낼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던 중 뜬금없이 10년 전 독일 여행에서 구입한 작은 책자 하나가 생각났다.

최정규 인잇 독일기본법 헌법

이 작은 책자에는 우리의 헌법에 해당하는 독일기본법 서문과 146조까지의 조항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특별한 해설이 붙어 있지 않고 그저 조문한 나열한 이 책자를 과연 누가 구입할까?"라는 의문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발간한 이유에 대해 고민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헌법에 적혀있는 국가기관들, 시민을 대표하는 대통령, 국회의원들이 시민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인 당신의 손바닥 위에서 마음껏 주무를 수 있는 기능적 존재임을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최정규 인잇 독일기본법 헌법

우리의 손으로 뽑은 대표자가 우리 위에서 군림하는 일은 그 어떤 국기기관도 대신 막아주지 않는다. 바로 우리가 스스로 막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걸 막아내는 방법은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하기에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우리와의 관계에서 국회의원이란, 그저 4년 동안 우리 대신 목소리를 내라고 띄웠다가 소멸하는 인공위성에 불과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잇 #인잇 #최정규 #상식을위한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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