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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동성애, 언제까지 선거용 아이템인가요?

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미스터트롯도 끝나고, 낙이 없습니다. 웃을 일도 없고요. 하릴없이 총선 티비 토론을 봅니다. 한 시간 동안 보고 있노라면, 웃는 빈도수가 코미디 프로그램 볼 때보다 월등히 많습니다. 물론 박장대소가 아니라 헛웃음인 게 문제지만요.

얼마 전에도 TV토론을 보다가 아주 큰 헛웃음이 터졌습니다. 서울 광진을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후보와 미래통합당 오세훈 후보의 이야기를 보다가 말이지요. 오세훈 후보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고민정 후보는 동성애에 대한 의견은 어떻습니까? 저는, 반대합니다."

여기까지 보다가, 나도 모르게 한마디가 나오더군요.
 

"저 후보들은 아주 동성애가 유희왕 카드구만? 선거 때만 꺼내 쓰네?"


유희왕 카드. 자녀나 조카 있는 분들이라면 대부분 아실 테지요. 두 사람이 서로 몇 장씩의 카드를 가지고 전략 전술을 펼치면서, 싸우는 게임. 뭐 어른들의 카드 게임과도 비슷한 놀이인데요. 다만 어른들의 것과 다른 점은, 더 높은 점수를 내면 이기는 게 아니라 상대를 무너뜨리고 박살 내어야 이기는 '전투 게임'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카드 한장 한장은 모두 상대를 공격하는 '공격 기술' 역할을 하지요. 카드마다 이름도, 디자인도 다양하지만, 목적은 오로지 상대의 체력을 빼앗는 겁니다. 그 맥락에서, 정치인들이 고찰 없이 그저 '써먹기만 하는' 동성애 이슈 몰이는 유희왕 카드와 퍽 닮아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참 생뚱맞지 않나요? 오세훈 후보가 정치인 생활 내내 '동성애 반대'를 주요하게 외쳐온 것도 아니고, 고민정 후보가 동성애 지지를 계속해서 밝혀온 정치인이었던 것도 아니고... 두 사람 모두 딱히 그 이슈를 TV토론에 할애할 만큼 관련된 행보가 있었던 사람들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왜 굳이 그런 말들이 나왔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흠집 내기에 용이한 아이템'이니까요.

생각해보면, 익숙한 풍경 아닙니까? 선거철마다 동성애 이야기를 먼저 던지는 쪽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을 해야만 하는 입장에 놓인 쪽이 있습니다. 단지 이번에는 오세훈 공격 고민정 방어였던 거고, 매번 사람만 바뀌어 왔었지요. 질문 패턴은 똑같았고요. 몇 번의 선거마다 동성애 얘기가 나왔지만 이번에도 또 반복됩니다.

"아주 동성애가 유희왕 카드구만? 선거 때만 꺼내 쓰네?"

왜 저 질문을 저렇게 엉뚱한 타이밍에 자꾸 던질까요? 의도는 뭘까요? 정말로 그 '현안'에 대해 토론하고 싶을까요? 그럴 리가 없지요. 그들은 해당 현안엔 관심이 없습니다. 진심으로 반대하는 것도, 지지하는 것도 아닌 채 단지, 동성애 질문이 가지는 '공격 기술'로의 효용만을 차용하고 싶은 겁니다. 방어 측이 답변 한번 잘못하는 순간 일정 비율의 유권자가 훅! 돌아서지요. 한마디로 "한 방 먹어라 요놈!"하고 덫을 놓는 용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일회성으로 소비되어버리는 겁니다.

뭐랄까... 카운터펀치는 아닌데, 상대가 말려들기만 하면 확실하게 소량의 지지율은 날려버릴 수 있으니까, '유용한 잽 펀치' 정도로 쓰는 거죠. 유희왕 카드식으로 표현하면 이런 느낌이랄까요? '동성애 질문 - 방어 측 플레이어가 답변을 못할 시, 100%의 확률로 특정 연배, 특정 종교 유권자 지지율 소폭 하락.' 뭐 이런 셈이지요.

동성애 이슈만 이런가요? 특정 아이들의 이름을 딴 법들도, 청년 실업률 문제도, 급식 문제도 그랬지요. 유독 선거철만 되면 나오는 몇몇 가지 주제들. 누군가에게는 매 순간 삶의 중요한 '현안'인 이것들을, 선거철 토론 판에선 그저 유희왕 카드로 소비하고 맙니다.

타격을 입힐만한 수치에 따라, 각자의 손안에 패로 착착 쌓아두고. 시의적절하게 공격기로 하나하나씩 꺼내 쓰기만 하는 그 싸움판을 과연 '토론'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요? 선거가 끝나면, 이 현안들은 또 모른 척 내팽개 쳐졌다가, 다음 선거 때에는 다시 부랴 부랴 꺼내지겠지요.

몇 년 뒤에도, 우리는 또 다시 이런 천박한 장면을 보게 되지 않을까요. 누군가에겐 현재진행형이고, 삶의 한가운데인 그 이슈들을, 딱히 관심도 없으면서, 상대 후보를 흠집 내기 위해 유희왕 카드로 쓰는 장면 말입니다. 동성애가 그렇고, 청년 일자리가 그렇고, 세금 문제가 그렇고, 또 그때쯤 새로운 어떤 아이의 이름을 딴 법도 그럴 테고요.

본래의 선거는 제로섬 게임이 아닐 텐데, 여전히 상대가 박살 나서 내가 반사이익으로 당선되길 바라는 토론만 만연합니다. 그런 승부에는, 그런 필승전략에는 '국민'에 대한 시선이 없습니다. 상대를 더욱 찌그러트리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요.

언제까지 우리는 더 나은 후보를 고르는 게 아니라,
덜 심각한 후보를 걸러내야 하는 식의 투표를 해야 하는 걸까요?


4년 뒤에는, 아주 조금이라도 달라지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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