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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해병대 공격헬기 선행연구 '뒤집기' 미스터리…발 빼는 국방기술품질원

KAI의 공격헬기 마린온 무장형의 모형

해병대 상륙공격헬기를 비싸고 느리지만 국산 수리온을 개량해서 쓰느냐, 한미연합작전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세계적인 상륙공격헬기 바이퍼(AH-1Z)급을 도입하느냐 말들이 참 많습니다. 해병대는 물론 바이퍼급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국내 개발과 국외 도입 중 양자택일하는 공식 절차인 국방기술품질원의 선행연구의 결과는 국내 개발, 즉 수리온 파생형입니다.

해병대 상륙공격헬기 도입을 위한 선행연구는 지금까지 2차례 있었습니다. 4년 전에 안보경영연구원이 먼저 했습니다. 결론은 "국외 도입이 유리하다"였습니다. 한국항공우주산업 KAI의 다목적 수송헬기 수리온을 상륙기동헬기로 개량한 마린온에 각종 무장과 방탄 기능을 덧붙인 마리온 무장형에 비해 바이퍼 공격헬기가 성능도 우수하고 가격도 싼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도입 기간도 바이퍼는 별도 개발 기간이 없어서 짧았습니다.

지난달 끝난 국방기술품질원의 선행연구가 안보경영연구원의 선행연구 결과를 180도 뒤집었습니다. 국방기술품질원 선행연구는 마린온 파생형이 해병대의 작전요구성능 ROC를 충족하고, 국내 방위산업 진흥 효과가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4년 동안 국내외 헬기 산업에는 별일이 없었는데 선행연구 결과만 격변했습니다.

해병대 공격헬기 논란이 뜨거워지자 어찌 된 일인지 국방기술품질원이 슬슬 발을 빼고 있습니다. 이번 선행연구의 주체는 국방기술품질원이 아니라 방위사업청이라는 겁니다. 국방기술품질원은 방위사업청이 시키는 일만 했다는 주장인데 스스로를 부정하는 꼴입니다.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미 해병대가 운용하고 있는 공격헬기 바이퍼
● 안보경영연구원 선행연구 "국외 도입이 유리"

군은 2015년 7월 해병대 상륙공격헬기 중기사업 전환을 위한 선행연구를 안보경영연구원에 의뢰했습니다. 장기 계획이었던 해병대 공격헬기 사업을 10년 이내에 추진하는 중기 계획으로 바꾸기 위한 첫 절차였습니다.

안보경영연구원은 7개월 만인 2016년 2월 선행연구 결과를 군에 보고했습니다. 국외 도입이 국내 개발보다 유리하다는 게 골자였습니다. 해병대 상륙공격헬기 24대를 기준으로 미국 벨헬리콥터사의 바이퍼는 1조 2천억 원, KAI의 마린온 무장형은 2천억 원 비싼 1조 4천억 원 소요된다고 평가했습니다.

바이퍼는 수직상승속도 14.2m/s, 순항속도 296km/h, 최고속도 370km/h입니다. 공대지, 공대공 각종 무장을 갖추고 있습니다. 해병대가 제기하고 합참이 의결한 상륙공격헬기의 ROC도 이와 비슷합니다.

마린온 무장형은 아직 실체가 없지만 수리온, 마린온을 보면 성능을 구체적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수리온은 수직상승속도 7.8m/s, 순항속도 270km/h입니다. 마린온은 수리온보다 수백kg 무거워서 수직상승속도 7.2m/s, 순항속도 264km/h입니다. 수리온보다 느립니다.

마린온보다도 무거운 마린온 무장형은 수직상승속도 7m/s, 순항속도 250km/h로 알려졌습니다. 무장이 충실할수록 무게는 그만큼 늘어나 더 느려집니다. 공격헬기는 가장 빨라야 하는데 마린온 무장형은 수리온 파생형 중에서도 가장 굼뜹니다.

게다가 마린온 무장형은 개발 기간이 필요해서 해병대에게 인도되는 시기가 참 늦습니다. 개발비도 수천억 원 들어갑니다. 총 사업비가 바이퍼보다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안보경영연구원은 정무적 판단은 쏙 뺀 채 해병대의 ROC 대비 가격과 성능을 놓고 비교했고 국외 도입의 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해병대 공격헬기 사업은 국외 도입을 염두에 두고 추진됐었는데 이번 국방기술품질원의 선행연구를 계기로 KAI의 대역전 드라마가 되고 있습니다.

경남 진주에 있는 국방기술품질원 전경
● 선행연구 결과에 자신 없는 국방기술품질원

국방기술품질원은 자칭(自稱) 선행연구 전문기관입니다. 국방부 산하 정부기관으로, 최근 들어서는 선행연구를 독점하고 있습니다. 신뢰, 능력 면에서 떨어지는 민간 연구소의 허술한 선행연구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썩 괜찮은 의도이고 시도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많이 이상합니다.

지난달 해병대 상륙공격헬기 선행연구의 결과를 국내 개발로 확정했으면 밀고 나가야 할 텐데 국방기술품질원은 한 달 만에 자신감을 상실했습니다. 안보경영연구원의 선행연구 결과가 뒤집힌 데 대해 여러 질문들이 쏟아지자 국방기술품질원은 방위사업청에 하소연을 했습니다. 요지는 "선행연구의 주체는 방위사업청이고 국방기술품질원은 방위사업청의 선행연구를 위해 자료를 조사하고 분석했을 뿐이다"입니다.

방위사업청이 선행연구를 의뢰한 발주처인 건 맞습니다. 하지만 자료를 조사하고 분석하는 선행연구 자체는 국방기술품질원이 했습니다. 각종 공문서에도 국방기술품질원 선행연구라고 표기합니다. 선행연구의 주체는 국방기술품질원입니다. 그래서 국방기술품질원은 스스로 선행연구 전문기관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해병대 공격헬기 국내 개발 선행연구 결과가 논란이 되자 국방기술품질원은 이제 와서 심부름만 한 척, 모른 척하니 해병대뿐 아니라 KAI도 어리둥절하고 있습니다. 국방기술품질원이 해병대 공격헬기 선행연구 결과에 자신이 없다는 방증입니다.

선행연구 결과가 4년 만에 뒤집힌 이면에는 기술적, 경제적 평가와 거리가 먼 정무적 판단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수근거림이 곳곳에서 들립니다. 감사원 사무총장을 거쳐 KAI 사장을 한 뒤 청와대에 입성한 김조원 민정수석의 이름이 요즘 마린온 무장형과 함께 자꾸 거론되는 이유도 이때문입니다.

국산 수송헬기 수리온으로 공격헬기를 만들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하지만 트럭을 아무리 무장하고 개량한들 전차가 되지 않습니다. 수리온에 무장 달면 그저 무장 수송헬기이지 적 해안에 상륙한 해병들을 엄호하며 적의 화력을 압살하는 공격헬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수리온은 다목적 수송헬기로서 아름답습니다.

국내산업 진흥, 방위산업 육성을 위해서라면 명실상부 국산 공격헬기 개발에 도전해야 합니다. 해병대가 군 내에서는 세력이 약한 소군(小軍)이라고 해서 툭하면 해병들을 대상으로 수리온 우려먹기를 해서는 안됩니다. 마린온, 소방헬기, 의무헬기, 경찰헬기, 산림헬기, 해경헬기… 수리온 우려먹기는 이미 충분히 했습니다. 무리하면 탈 납니다. 2018년 7월 17일 마린온 추락 사고가 명징한 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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