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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벼랑 끝 위기' 항공업계

[취재파일]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벼랑 끝 위기' 항공업계

한세현 기자 vetman@sbs.co.kr

작성 2020.04.08 10:10 수정 2020.04.09 19:0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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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마을에 사과밭이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어느 날 그 옆에 양봉업자가 벌통을 차렸습니다. 벌들은 꿀을 모으기 위해 암꽃과 수꽃을 가리지 않고 돌아다녔고, 그 과정에서도 덩달아 과일도 더 많이 열렸습니다. 사과밭 주인은 양봉업자 덕에 생각지도 않은 '이득'을 보게 된 것입니다. 기분이 좋아진 사과밭 주인이 양봉업자에게 밥이라도 살지 모르겠습니다만, 엄밀히 따지면 둘 사이에 별다른 특별한 '계약관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양봉업자의 이기적인 행동이 예상치 못하게 사과밭 주인에게 이타적인 영향을 끼친 것입니다.

늘 이렇게 도움 주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양봉업자와 반대로, 예상치 못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례가 더 많을 수 있습니다. 가령 누군가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어느 보행자가 우연히 그곳을 지난다면… 그는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담배 연기로 인한 피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특정 경제 주체의 행위가 다른 경제 주체들에게 기대되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것, 이런 현상을 경제학에선 '외부효과(External effect)'라고 합니다. 양봉업자처럼 좋은 영향을 주는 사례를 '긍정적 외부효과'라고, 반대로 길거리 흡연자와 같이 피해를 줄 때는 '부정적 외부효과'라고 합니다.

(※ 참고로 고려시대 쓰인 '청산별곡'이란 고려가요에도 이 같은 '부정적 외부효과'가 담긴 구절이 있습니다. "어듸라 더디던 돌코 누리라 마치던 돌코, 믜리도 괴리도 업시 마자셔 우니노라" ☞ 오늘 말로 해석해보자면, "어디로 던진 돌인가. 누구를 맞히려던 돌인가. 미워한 이도 사랑한 이도 없는데, 나는 이 돌을 맞아서 울고 있구나." 나의 의지나 행동과 무관하게 겪게 되는 삶의 '부정적 외부효과'를 절절하게 표현한 대목입니다.)

● '중국발' 부정적 외부효과, 전 세계 강타

최근 우리 사회, 아니 전 세계에도 거대한 '부정적 외부효과'가 있었습니다. 바로 '코로나19'입니다. 코로나19로 피해를 안 보는 곳이 없지만, 경제 분야 피해는 특히 심각합니다. 거시·미시경제 가리지 않지 않습니다. 전 세계가 경기 침체, 수입 감소, '해고의 공포'에 적나라하게 노출됐습니다. 중국이 세계 경제에 피해를 주겠다는 의도를 갖고 전염병을 퍼뜨린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앞서 언급한 청산별곡 구절을 인용하자면, "중국에서 뜬금없이 날아온 돌(사실상 거대한 바위라고 해야 할…)에 맞아, 우리 모두 울다가 지쳐 쓰러질 상황이 된 셈"입니다. 전 세계가 이렇게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지만, 그렇다고 중국이 우리를 비롯한 전 세계에 손해배상을 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피해는 발생했지만 배상은 없는, '부정적 외부효과' 조건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각론으로 들어가 보면, 코로나19로 거의 모든 경제 분야가 '직접 피해 사정권'에 들어갔습니다. 삼정KPMG가 분석한 자료('코로나19에 따른 산업별 영향 분석')를 보면, 17개 주요 산업 가운데 16개 산업이 코로나19로 타격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유일하게 일부 긍정적 평가를 받은 것은 '게임산업'이었습니다.)

당장 실적이 줄어들 것이고 → 그러면 경영난을 겪게 되고 → 생존을 위해 긴축재정·인력 감축 등 비상경영·자구책을 마련하다가 → 그럼에도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 기업은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져 갈 것입니다.


 
*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코로나19 항공 운항 중단● 코로나19 타격에, '날개 부러진' 항공업계

여러 경제·산업 분야 가운데서도 특히 직접적이면서도, 즉각적이며,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 것이 바로 '항공업계'입니다. 코로나19 사태로 각국이 앞다퉈 입국 자체를 막으면서, 사실상 모든 하늘길이 막혀버린 셈이기 때문입니다.

3월 넷째 주 국제선 여객 수는 7만 8천599명이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173만 6천366명)에 비교하면 무려 95.5%나 급감한 수치입니다. 평소 100명 오던 식당에 5명도 오지 않는 것입니다. 국적사 여객기 374대 중 87%인 324대가 갈 곳을 잃고 그대로 세워져 있습니다. 기약도 없이 '푹~~~ 쉬고 있는 것'입니다.

100명 오던 식당에 고작 4~5명만 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당장 직원들 할 일이 없어집니다. 음식을 준비할 주방장도, 손님을 맞을 종업원도, 청소나 경비 업무 담당자도 필요 없어집니다. 한마디로, '감원 칼바람'이 곧 불기 시작할 거란 뜻입니다.

사람을 내보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고용 비용'이란 것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손님이 오든 안 오든, 건물 임대료와 전기요금 등은 무조건 지출하게 돼 있습니다. 항공업계는 이런 '고정 비용' 비중이 매우 높아, 전체 영업비의 35~40%가량을 차지합니다.

감가상각비 제외한 영업 비용과 이자 비용만 계산해도, 대한항공은 월평균 8천800억 원, 아시아나항공 4천900억 원, 제주항공 1천억 원가량의 현금을 써야 합니다. 이대로 간다면, 각 항공사가 모아둔 현금은 상반기 안에 바닥날 것입니다. 올해 상반기까지 국적 항공사들의 매출 피해도 최소 6조 4천451억 원에 달할 전망입니다. 항공사별로 유급 휴직에 이어 무급 휴직, 급여 반납 등 비상경영체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이스타항공이 최소 300명 감원에 나서는 등 '해고 칼바람'은 점차 우리 곁으로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절체절명의 생존 위기에서 항공사들의 눈길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정부의 입'입니다. 그 눈빛은 아주 절박하고, 절실하며 또 간절합니다. "국가 산업의 근간인 '기간산업'을 이대로 처참하게 무너뜨릴 것인가?", "적어도 숨은 쉴 수 있게 산소호흡기라도 달아줘야 하는 게 아니냐?" 더 구체적으로는, "우리는 신용도가 너무 떨어져 금융권이 돈도 안 빌려준다. 그러니 정부가 (국책은행)이 지급 보증해달라." '외침'이라기보다는 '절규'에 가깝습니다.

긴급재난지원금● "필요한 역할은 한다. 다만, 자구책부터 마련하라"

하지만 정부는 신중합니다. 저비용항공사(LCC)를 대상으로 한 3천억 원 규모 긴급융자와 각종 비용 감면, 납부 유예 등의 대책을 내놨지만, 항공사들이 간절하게 바라는 실질적인 자금 지원에 대해선 아직 조심스럽습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리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항공산업 특성상, 부채 비율이 높아 금융 지원과 함께 자본 확충, 경영 개선 등 종합적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표현은 우아했지만, 담긴 뜻은 간명합니다. "자구책부터 마련해라!"

금융당국은 왜 항공사에 대한 지원에 적극적이지 않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 보자면 3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습니다.

1. 더 힘든 소상공인·중소기업부터 돕는다.
☞ 두산중공업, 쌍용자동차 등 지원을 바라는 기업이 많다.
☞ 시장 접근이 쉬운 대기업은 일차적으로 거래은행과 시장에서 자금을 먼저 조달하라.

2. 국민 혈세를 날릴 가능성도 적지 않다.
☞ 지원에 나섰는데도 항공사가 망하면, 그 혈세는 날아간다.
☞ 지원금이 매몰비용이 되지 않게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자구책부터 마련하라

3, 그리고 마지막으로 "항공사를 바라보는 부정적 여론이 부담스럽다."
항공사 지원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왜 부담스러울까요? 그동안 항공사를 경영해온 오너들이 보여온 모습을 잠시만 떠올려봐도, 어렵지 않게 답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땅콩 안 준다고 출발한 비행기 돌리고 직원들 괴롭히고, 명품은 밀수하고, 외국인 가정부를 몰래 불법 고용하고, 회의하다가 컵 집어던지고, 직원들에게는 막말하고 때리고 행패 부리고, 경영권 두고 가족들끼리 난동 부리다가 결국은 편 갈라 싸우고, 경영 경험도 없는 '전업주부' 딸이 사회생활을 한다며 '임원'으로 꽂아넣고, 기내식 대란에, '기쁨조 승무원' 논란까지…. 참 다양하게, 골고루, 기발하고 참신한 사례를 많이 보여주었습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다."

이런 배경이 있어서일까요? 얼마 전 금융당국 관계자에게 항공사 지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견을 전제로, 이런 선문답 같은 영화 대사 한 구절을 보내왔습니다.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것입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것입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것을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다."

-영화 <달콤한 인생> 中-

이 금융당국 관계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흔들리는 것은 코로나19도, 폐쇄된 국경도 아니다. 바로, 항공사 당신이다", 이것은 아니었을까요?

앞서 세계적 투자자 워런 버핏 버크셔 헤서웨이 회장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썰물이 돼야, 누가 발가벗고 수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버핏의 말을 빌리자면, 코로나19라는 커다란 썰물에, 발가벗고 수영하던 항공사들의 알몸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셈입니다. "정부 지원을 바라기 전에,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과 같은 뼈를 깎는 자구책 마련이 먼저다"라는 비판이 가슴에 더 다가오는 대목입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그리스 신화에는 '이카루스'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붙이고 하늘로 날아오른 이카루스는 "하늘 높이 올라가지 마라"라는 아버지의 경고도 잊은 채 높이, 높이, 더 높이 오만하게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계속해 올라가기만 하다가, 태양열에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으며 에게해에 떨어져 죽었습니다. (※ 아버지 다이달로스는 이카로스 시신을 건져 올려 섬에 묻었는데, 나중에 이 섬은 이카로스의 이름을 따서 이카리아 섬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추락하는' 아카루스를 생각하면, 덩달아 항공사를 경영해온 오너들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Ceux qui tombent ont des ailes)" 오스트리아 출신 여성 시인, 잉게 보르크 바흐만의 시 '즐거운 놀이는 끝났다'의 나오는 대목입니다. 오늘 항공업계가 겪는 시련이 코로나19로 인한 부정적 외부효과 때문인지, 이카루스가 가졌던 오만함 때문인지, 혹은 둘 다 작동한 것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늘을 날 수 있게 해줬던 날개가 꺾인 것, 그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즐거웠던 놀이'가 끝난 것도 분명해 보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최종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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