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잔인한 달, 봄비로 무뎌진 뿌리를 흔들고 욕망과 기억을 섞어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낸다.' T. S. 엘리엇은 망각의 겨울을 뒤로하고 황무지에서 새로운 기억을 일깨워내는 4월을 잔인한 달로 묘사했다.
증시에서도 4월은 잔인한 달로 기억되곤 한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산타랠리', 새해에 대한 기대감을 담은 '1월 효과', 휴가를 앞둔 '서머랠리', 여러 가지 호재를 담은 용어들이 탄생하는 계절과 달리 증시에서 4월은 잔인한 경우가 많았다. 새해에 대한 기대감이 물러가고, 12월 결산을 마감한 상장법인들의 화장질(윈도드레싱)도 마무리되는 때라서 그렇다는 분석도 나온다.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의 획기적인 발달을 기대하며 출발한 2020년, 첨단기술로 무장한 인류는 초미세먼지보다 작은 나노스케일의 바이러스 코로나19에 습격당해 속수무책으로 잔인한 4월을 맞고 있다.
하지만 유럽과 미국에서 코로나19가 창궐해 모든 경제활동이 마비되고 사람들이 전쟁 같은 위험을 느끼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 증시에서 개인투자자들은 주식투자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어느 때보다 변동성이 심한 불안한 장세이지만 '한몫 챙길 때는 바로 지금'이라고 확신한 듯 이른바 '수퍼개미', '동학개미', '코로나개미', '애국개미'들은 삼성전자 같은 '수퍼스타' 주식을 쓸어 담고 있다.
이런 '애국개미'들의 선방에 한국의 코스피 지수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팔자 행진 속에서도 1,700선을 유지하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붕괴 직전의 한국 금융시장을 떠받치고 있는 형세다.
보다 못한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주가가 싸다고 무작정 주식을 사들이는 '묻지마 투자', 돈을 빌려 투자하는 '레버리지 투자'는 자제해 주길 바란다"며 '애국개미 자제령'을 내렸다고 한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전국적인 이동제한령이 내리면서 경제활동은 사실상 마비됐고, 글로벌 기업들마저 경쟁적으로 자금 확보에 나서 유럽과 미국에서 올 들어 발행한 회사채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3천억 달러가 늘어났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보도했다.
각국 정부는 조만간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아 부도 위기를 맞은 기업들을 놓고 어느 기업을 구제할 것인지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전망한다. 위기상황에 꼭 필요한 항공사, 고용인원이 많은 자동차 회사, 통신회사, 보험회사 등 필수 업종에서 대표적인 회사들이 구제 대상에 오를 것이라는 예측도 내놓고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이 집계한 4월 5일 밤 10시 30분 현재 전 세계의 코로나19 확진자는 121만 8천 명, 사망자는 6만 5천 명이다. 미국의 경우 사회적 거리두기가 성공할 경우 사망자 예상치는 10~24만 명,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경우 150~220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코로나19 사태가 올해 연말까지 계속된다면 유럽이나 미국의 GDP는 3분의 1이 사라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코로나19 백신이 곧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기도 하지만, 백신이 개발되려면 최소한 1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예측이 일반적인 전문가들의 견해다. 치료제도 백신도 없는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계속할 경우 경제적 마비상태가 장기화돼 성장동력을 잃어버릴 수 있는 만큼, 이제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는 제2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코로나19를 극복하는 방법은 ①백신 개발 ②창궐 후 집단 면역 확보 ③사회적 거리두기로 확산 억제, 이 세 가지로 요약된다. 코로나19가 극복된다면 경제상황도 급격히 회복될 수 있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가 이제 남미의 브라질까지 확산하는 지금 코로나19와의 싸움은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한복판이다. 잔인한 4월, 지금 대한민국의 '애국개미'들은 절벽을 향해 마구 달려가는 기관차에 타고 있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