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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영장재판 개입 무죄 비판' 현직 판사 판례평석과 사법부 권위의 회복

[취재파일] '영장재판 개입 무죄 비판' 현직 판사 판례평석과 사법부 권위의 회복
지난 2월 13일, 법원은 영장 심사 재판 과정에서 내부 정보를 유출해 상부에 보고한 혐의로 기소된 법관 3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한 달여 뒤인 지난 2일, 현직 서울중앙지법 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최창석 판사는 이 판결에 대한 비판적 판례 평석을 법률신문에 기고했습니다. 판결 이후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니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는 등 주로 사법부 외부의 비판이 일었지만, 현직 부장판사가 '판례 평석'의 형태로 판결 법리를 공개 비판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번 취재파일에선 최창석 판사의 판례 평석을 소개하면서, '영장재판 개입 무죄'를 비판하는 최 판사 논리 저변의 시각을 사법부 외부자인 기자의 시선에서 해석해보고자 합니다.

● '상부 보고 규범 이행'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영장재판개입 사건 재판부는 조의연, 성창호 두 영장전담 판사가 신광렬 형사수석부장판사에게 영장재판의 기록을 유출해 보고하고, 신광렬 수석부장판사가 이를 다시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건 '직무상 정당한 행위'라고 봤습니다. 사법부는 법관이 관련된 중요 사건에 대해 파악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고, 두 영장전담 판사의 행위는 정당한 사법행정 사무의 일환이라는 판단입니다. 이러한 판단은 이들 세 법관의 행위가 부적절한 기밀 누설이 아니라는 논리의 한 축을 이룹니다.

하지만 최 판사는 두 영장전담 판사의 상부 보고는 필요한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직무상 정당행위가 아니라고 비판합니다. 단순히 사법행정 차원에서 사안을 파악하기 위한 것을 넘어, 두 영장전담 판사가 관련자 진술은 물론 증거 확보 상황, 수사 기록까지 복사해서 보고한 건 분명 '정당한 수준을 넘어섰다'고 비판합니다.

특히 최 판사는 이번 사건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직무상 정당 행위'의 근거로 제시한 <중요사건의 접수와 종국보고에 관한 예규>에 따르더라도 세 법관들의 행위가 정당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이 예규에 따르면, 구속영장이나 압수수색이 '처리되어 종국된 경우'에야 사건 요지를 법원행정처에 보고해야했다는 겁니다. 따라서 영장재판 결과도 나오기 전에 이들 판사가 관련 기록과 정보를 상부에 보고한 건 정당한 행위가 아니었다는 것이 최 판사의 지적입니다.

정리하자면, 이 쟁점과 관련해 지난 2월 판결을 선고한 재판부 논리의 핵심은 '중요 사건은 상부에 보고해야한다'는 조직 내 규범이 존재하는 상황 속에서 이들 세 법관은 규범에 충실했을 뿐, 법적으로 문제될 행위를 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면, 기소된 세 법관 행위는 당시 법원 예규에 비춰봐도 잘못된 것이었다고 지적하는 최 판사의 비판은 그 행위가 예규에 맞는지를 넘어, 세 엘리트 법관의 '직무적 성찰성'의 문제로 향합니다. 즉, 최 판사의 지적은 자신들의 행위가 정의로운 것인지 돌아보지 않고 사법부 윗선의 지시를 충실히 수행했던 이들 세 판사들의 성찰성 결핍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런 시각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행위자 윤리'의 중요성을 짚은 한나 아렌트의 시각과도 맞닿아있습니다. 좋은 이웃, 좋은 아빠, 좋은 남편, 좋은 조직원으로서 상부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한 나치 독일의 군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며 던졌던 한나 아렌트의 질문. '조직 내에서 선하고 충직한 것으로 평가받는 개인이 어떻게 특정한 환경과 상황 속에서 악덕을 구현하게 되는가?' 최 판사의 판례평석엔 엘리트 법관들의 성찰없는 행위는 도덕적으로는 물론, 형사적으로도 면죄되선 안 된다는 시각이 담겨있습니다.

● 공무상 기밀판단과 '엘리트 법관으로서 행위'의 무게

하지만 세 법관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의 논리를 좀 더 들여다보면 이러한 한나 아렌트식의 해석이 무용해질수도 있습니다. 재판부는 세 판사가 유출해 보고한 정보들은 사실 '공무상 기밀'도 아니며, 이렇게 영장 재판 기록을 유출해 상부 보고했다고 해서 해당 사건 수사에 차질이 생기는 등 국가 기능에 장애가 생긴 것도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즉, 상부의 지시에 충실히 따른 법관들의 행위는 사실 별다른 악덕을 초래한 것도 없다는 겁니다.

최 판사는 이러한 재판부의 논리도 비판합니다. 재판부는 조의연, 성창호 판사가 유출한 재판 기록은 이미 언론 보도 등으로 외부에 알려지거나, 검찰 수사과정에서 행정처 심의관이 이미 알게 된 내용이므로 '기밀'이라 볼 수 없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하지만 최 판사는 언론의 사적(私的)인 취재로 영장 재판 내용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과, 그 재판을 직접 담당한 법관 등에 의해 공적(公的)으로 외부에 알려지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미 언론에 알려진 것을 유출한 건데 문제 삼기 어렵다'는 식의 판단엔 '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라는 엘리트 법관의 공적 행위의 무게가 전혀 고려돼있지 않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최 판사는 조의연, 성창호 두 판사가 '공적'으로 유출한 기록이 이미 행정처 심의관 등이 '사적'으로 알아낸 정보와 유사하다고 해서 직무상 비밀로서의 보호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또 이런 영장 기록 유출과 상부 보고가 수사에 차질을 초래하는 등 국가 기능에 구체적인 문제를 초래한 건 아니라 하더라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라는 핵심 엘리트 법관들의 보고를 토대로 사법행정권의 최고 정점인 법원행정처가 '대응 보고서'를 작성한 건 수사에 장애를 초래할 위험성을 내포한 문제 행위라고 비판했습니다.

● 더 많은 판례 평석을 기대하며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갓 왕권을 물려받은 세종은 전각에 틀어박혀 33행렬 마방진을 푸는 데 열중합니다. 칼이란 강제력으로 왕좌의 권위를 세운 태종은 그 마방진을 엎어버리며 '임금의 권위는 그렇게 생각하고 고심하고 토론하며 세우는 게 아니라'고 일갈합니다. 강제력으로 권위를 세우고, 그것이 '천부적 권위'라고 선언하는 것. 이것이 드라마에서 태종의 통치 방식입니다.
법관들 중엔 재판부의 판결 결과에 대해 사법부 내·외부적으로 이러쿵 저러쿵 논쟁이 벌어지는 걸 경계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실제로 판결을 두고 이어지는 사회적 논쟁 다수는 당장 눈에 보이는 생산적 결과물을 낳기보다는 '어차피 판결은 판사 마음대로'라는, 끝모를 회의주의를 확대 재생산하는 걸로 그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재 이뤄지고 있는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 재판에선 다소간 불편함이 따르더라도 이런 논쟁이 더 활발히 이뤄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들의 심판 과정은 단순히 판사 몇몇을 전과자로 만드느냐 아니냐를 넘어, 사법부라는 우리 사회 중요한 기관의 실질적 권위를 회복하는 과정이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최종적으로 이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연루 판사들에게 형사적으로 무죄가 선고된다 하더라도 (유죄가 선고될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 판단의 근거 속엔 형식적 법리 외에도 현재 그나마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철학적 가치들에 대한 고려가 녹아있어야 합니다.

매일 아침 확성기를 들고 법원 앞에 나와 입에 담지 못할 말들로 법관을 비난하는 사람들, 저마다의 억하심정들을 토해내며 서초동 법원청사 주변에 나부끼고 있는 각각의 현수막들. 대법원장 구속까지 겪으며 사법부가 사실상 '권위의 폐허' 위에 서있는 상황 속에서, '사법부 권위는 강제력으로 세워진다' 거나 '천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일갈하는 태종을 향해 "나의 시대는 다를 것"이라고 맞받은 세종의 구상이 지금의 사법부에도 자리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전 시대와 다른 거창한 구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앞으로도 이어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판결과 관련해 사법부 내부의 풍부한 논쟁이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지난하겠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가 사법부라는 기관의 권위를 새롭게 구성해 낼 수 있다면, 기자이기 이전에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저에게도 좋은 일일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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