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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人터뷰] 방송 탔다고 비례 1번? 그녀는 신데렐라가 아니다

4·15 총선 비례대표 탐구 ②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1번 신현영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후보 1번으로 결정된 신현영 명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사진=한미약품 제공, 연합뉴스)
이 젊은 의사는 40년 인생을 자신이 계획한 대로 살아왔을 것이다. 영재 중의 영재들이 들어간다는 서울과학고를 졸업하고 가톨릭의대를 나와 의사가 되었으니 우리 사회 소수의 선택 받은 사람들이 걷는 길을 걸어왔다. 의사가 된 이후 의사협회 대변인을 포함해 의료 관련 단체에서 다양한 활동을 했고 방송 출연을 통해 얼굴을 알리면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치과의사 남편에 두 아들까지 두고 있으니 뭐 하나 빠지거나 부족한 게 없는 삶이다. 그래도 당사자는 아쉬움이 있을까? 더 유명한 의대, 더 큰 병원, 더 많은 수입, 뭐 이런 거 말이다.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장삼이사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까지 삶은 다른 사람의 부러움을 사고도 남을 만하다.

사실상 집권여당의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의 비례대표 1번 명지병원 가정의학과 신현영 교수의 이야기다. 하늘이 두 쪽 나지 않거나 갑자기 본인의 마음이 바뀌지 않는 한 얼마 후면 신 교수는 국회의원 배지를 달 것이다. 인생의 화룡점정을 찍을 날이 코앞이다.

국회의원이 된다는 것이 그녀의 인생 계획표에 있었을까? 그녀를 아는 지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신현영 교수가 정치에 전혀 무관심했던 것은 아닌 듯하다. 굳이 분류하자면 정치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이전에 정치권의 제안을 받기도 했다니 금배지를 단다는 것이 전혀 상상도 못 한 꽃벼락 같은 일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선거철이 되면 새로운 인물 찾기에 목마른 정당들은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을 주목한다. 신현영은 정치권 인사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여러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젊은 전문가, 호감을 줄 만한 외모, 방송을 통해 어느 정도 확보된 인지도. 게다가 지금은 코로나 국면 아닌가. 코로나 전문가로 활약하는 젊은 여성 의사는 정치권의 러브콜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신현영은 올 초 보수 정당의 영입 제안을 거부했다고 한다. 코로나 대응에 더 주력해야 할 시점이었기 때문이라는 게 신 교수의 설명이다. 그랬던 신 교수가 이번 제안은 왜 받아들였을까? 지금도 코로나19는 한창이다. 코로나 비상사태는 그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지금이 덜하지는 않다. 정치적 입장이 달랐을 수도 있는데 본인 입으로 그런 설명을 자세히 하지는 않았다. 살아온 이력만 본다면 보수 정당을 선택한다고 크게 이상할 것 없기는 한데 더불어시민당을 택한 구체적인 언급은 찾기 어렵다.

보수 정당의 러브콜을 거부한 그녀가 왜 더불어시민당의 비례대표 제안은 기다렸다는 듯 받아들였을까? 이런 기회는 인생에서 두 번 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집권당 비례대표 1번은 실력으로 얻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공부 잘한다고 시험 봐서 뽑는 자리가 아니다. 시운과 천운이 함께 해야 거머쥘 수 있다는 것을 이 명민하고 매사에 적극적인 천재가 몰랐을 리 없다. 굳이 천재라야 아는 것도 아니다. 누구라도 이런 것은 본능적으로 안다. 집권여당의 비례대표 1번 제안을 걷어찰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신현영은 그 제안이 왔을 때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두려움은 그 뒤에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 자리가 정말 내 자리인가? 비례대표 1번의 무게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꽃구름 올라탄 기분으로 금배지 달 그날 만을 기다리며 룰루랄라 휘파람 부는 인생의 호시절을 누리고 있을까? 아닐 것이다.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싶겠지만 걱정과 부담이 기쁨의 열 배, 스무 배가 아닐까?

"너무 많은 관심과 조명을 받게 돼서 마음이 되게 무거워요. 책임감도 크게 느끼는 상황입니다.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교차하고 있어요" (노영희의 YTN 출발 새아침 3월25일 방송 중)

이 사람, 하루에도 몇 번씩 인터넷에서 자기 이름을 검색해보지 않을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요즘처럼 남의 시선과 평가를 신경 쓴 적이 없었을 것이다. 남들이 뭐라고 할까? 어떤 매체가 나에 대해 뭐라고 보도했을까? 내 발언이 어떻게 기사화되었을까? 어떤 비중으로 보도되었을까? 카메라 기자들 앞에 서야 할 때 내가 한가운데 서야 되나 아니면 가장자리에 서야 하나? 뉴스의 대상이 되면 되는대로, 되지 않으면 되지 않은 대로 신경을 쓸 것이다.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처럼 신경이 곤두서 있을 것이다.

이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자신이 이 자리에 서 있을 리 없다는 것, 자기보다 훨씬 더 격렬하게 지금도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의료인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 자신을 코로나 대응의 상징적 인물인 양 추어줄 때 온몸이 오글거리지 않을까? 공공의료 분야를 대표해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춘 인물이 자기 말고도 많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6일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는 더불어시민당 신현영 비례후보(왼쪽) (사진=연합뉴스)
신현영을 이번 총선의 신데렐라 같은 존재라고 부르는 사람도 봤다. 방송 몇 번 했다고 비례 1번 주냐는 악플도 있었다. 신데렐라라는 말이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과는 무관하게 남성의 힘에 의존해 신분 상승을 이룬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신현영에게 그런 표현은 전혀 적절하지 않다. 악의적인 비난일 뿐이다.

지금껏 그가 이루어 낸 성취들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 아닐지 모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겉으로 드러난 꽃길 이력 뒤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피와 눈물이 산처럼 쌓여 있는 법이다. 이런 성취들을 남의 힘에 기대어 얻어낸 것도 아니다.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까지 포함해서 신현영은 많은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다. 타고난 재능에 노력과 열정까지 겸비하고 있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평이다.

신 교수와 오랫동안 방송을 같이 한 어느 SBS 기자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방송 준비가 철저하다고 한다. 의사로서 알고 있는 지식에만 의존해 적당히 시간을 때우는 것이 아니라 최신 자료와 관련 데이터로 무장된 진짜 전문가라는 것이다. 여기에 매끄러운 말솜씨와 호감을 주는 용모까지 더하고 있으니 방송에 최적화된 전문가였다. 방송에 자주 출연하는 이른바 전문가 중에는 타이틀만 전문가일 뿐 전혀 전문가답지 않은 태도를 보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준비가 철저하다는 말은 보통 칭찬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 사태에서 신현영은 물 만난 고기였다. 방송사 섭외 1순위였고 그가 나오면 시청률 곡선이 달라졌다. 이런 활약을 발판으로 신현영은 금배지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례대표 1번으로 결정된 이후 그녀는 여기저기 인터뷰에 응하느라 바쁘다. 인터뷰 때마다 부족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겸손, 경청이란 말이 후렴구처럼 따라붙는다. 그 말이 빈말처럼 들리지 않는다. 진심으로 그런 자세를 지키려고 애쓰고 있는 것을 표정에서나 어투에서 느낄 수 있다. 이 자리가 나만의 자리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 이 자리가 주어진 것일 뿐 자신이 싸워서 얻어낸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국회의원이 된다는 것을 출세 사다리의 맨 위 칸에 오르는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남아있다. 선출직 4년 임기제 공무원이라는 의미 이상의 무게가 국회의원이라는 말에는 내포되어 있다. 국회의원 힘이 막강하고 특권도 많지만 권한보다 더한 것이 명예다. 길고 긴 이력의 정점을 금배지에서 찾으려는 이들과, 이 자리 저 자리 누릴 것 다 누리고 나라를 위한다는 명예까지 챙기려는 이들과, 주체 못 할 정도로 많은 돈으로 명예와 권력까지 쥐려는 사람들로 선거철이 되면 여의도 정치권이 얼마나 북새통을 떠는지 우리는 볼 만큼 봤다. 고명함을 자랑하던 인사들, 자칭타칭 각 분야의 대표 전문가라고 불리던 이들이 권력을 구걸하는 추한 모습도 적지 않게 봤다.
더불어시민당 신현영 명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권인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 등 비례대표 후보자들과 만나 인사말 나누는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사진=연합뉴스)
얼굴마담이나 구색 맞추기용 이라고 폄하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런 작은 변화를 통해 정치권의 면면이 바뀌었으면 하는 유권자들의 바람이 있다. 이번 총선에 출마한 사람들의 평균 연령이 55.6세다. 세대 교체에 대한 열망이 컸지만 정치권이 외면했다는 단적인 증거다. 이런 상황에서 30대 비례대표 1번은 그 자체로 평가할 만하다.

누가 비례대표 1번이니 3번이니 10번이니 하는 것은 사실 그들만의 이야기다. 처음 순번이 결정되고 사나흘 정도 사람들에게 회자될 뿐이다. 당선되고 나면 비례대표는 비례대표일 뿐 누가 1번인지 누가 10번인지 유권자는 관심 없다. 현 20대 국회에서 각 당 비례대표 1번이 누구인지 묻는다면 제대로 답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들만이 관심 있을 뿐이다. '내가 1번이에요, 아세요'라고 말이다. 일반 유권자의 입장에서 보면 신현영이라는 젊은 의사가 비례대표 1번이라는 것은 그리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코로나 사태 때 방송 출연 많이 하던 젊은 여의사를 집권당이 얼굴로 내세우는구나, 코로나 대응에 집권 여당이 관심이 많다는 것을 비례대표 순번을 통해 보여주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끝이다. 유권자들은 더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는다.

신현영 교수와의 인터뷰는 성사되지 못했다. 전화 인터뷰를 요청하는 문자를 보내고 12시간이 넘어 당 공보국과 상의하면 좋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신 교수가 인터뷰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는 데다 필자 역시 다소 번잡한 과정을 거쳐 가면서까지 직접 인터뷰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의 답변은 이미 다른 매체를 통해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비례대표 1번 결정 이후 신 교수는 몇 군데 방송에 출연했다. 질문도 비슷했지만 신 교수도 모범 답안을 적어내듯 같은 대답의 반복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답 말이다.

"의사로서 환자를 보는 것도 되게 의미가 있고,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은 부분이기는 하지만, 정치에서도 여러 가지 그런 아픈 곳을 치유할 수 있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기회가 됐을 때 도전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판단을 했습니다." (YTN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 3월 25일).

방송에 출연한 신 교수의 인터뷰를 몇 번 돌려보면서 이 사람은 어쩌면 보이는 것이 전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처럼 인생 곡절이야 있겠지만 지금 보이는 모습에서 크게 숨기고 말고 할 게 없는 삶을 살아온 느낌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자기만의 가면이 있는데 이 사람은 그 가면이 어디에 있을까? 아예 없는 건가?

두 가지를 문자로 물었다. 하나는 출신학교, 또 하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겪은 일 중에서 본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이 무엇인지 물었다. 신 교수는 1980년생이다. 1980년에 태어나 정치권 진입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일이란 무엇일까? 격동의 80년대는 그에게 역사일 뿐 자신의 일로 기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IMF 사태나 2002월드컵, 정치권의 비리와 이에 대한 수사, 촛불 혁명, 조국 사태…뭐 이런 것들을 말하지 않을까 했는데 답은 다소 의외였다.

"의사협회 등 의료 단체 경험을 하면서 저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습니다. 이제껏 받은 사회적 혜택을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적 환원을 하고 싶었고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쭉 가지고 살았습니다. 코로나 대응을 열심히 한 것도 그 일환이었고 앞으로 나이가 들면 개발도상국가에서 의료봉사하면서 여생을 보내는 것이 꿈입니다."

짧으면서도 지루한 답변이었다. 국회의원이 되면 보건의료 단체의 목소리를 국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통로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 사람은 보이는 게 전부인 게 맞구나 싶었다. 가면 쓰지 않은 정치인, 선한 전문가가 몇 명 국회에 있다는 게 나쁠 거 같지 않다. 다만 그가 앞으로 마주할 국회는 가슴에 온갖 훈장을 주렁주렁 단 백전노장들과 피를 철철 흘리며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의 무대라는 것, 국회는 선의가 아니라 힘이 지배하는 완고한 구체체의 상징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그에게도 가면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까. 지금껏 많은 전문가 출신 비례대표 의원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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