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1940-2020 도쿄올림픽 닮은꼴 저주

이것이 도쿄올림픽 ⑭

권종오 기자 kjo@sbs.co.kr

작성 2020.03.31 08:09 수정 2020.03.31 15:1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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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하면 이 취재파일은 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는 부득이하게 시곗바늘을 1930년대로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이 지난 18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산으로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의 정상 개최가 불투명해지고 있는 상황과 관련해 "저주받은 올림픽"이란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지지통신에 따르면 아소 부총리는 이날 참의원 재정금융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올림픽은) 40년마다 문제가 생겼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그는 1940년 도쿄 하계올림픽과 같은 해 삿포로 동계올림픽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취소됐고, 1980년 모스크바 하계올림픽도 당시 구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서방국가들이 대거 참가하지 않았다고 언급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1940년, 1980년, 2020년, 즉 40년마다 '올림픽 저주'가 일어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소 부총리의 발언은 우리 기억 속에 잊힌 1940년 도쿄 하계올림픽의 '흑역사'를 소환하게 만들었습니다. 일본은 1931년 9월 '만주사변'을 일으켰습니다. 만주를 중국 침략을 위한 병참 기지로 만들고 식민지화하기 위해 침략 전쟁을 벌인 것입니다. 만주를 점령한 일본은 청나라 마지막 황제로 이미 1912년에 퇴위했던 푸이를 '허수아비 황제'로 내세우고 괴뢰정권인 만주국을 지배했습니다.

놀랍게도 일본은 이듬해인 1932년에 '1940 도쿄올림픽'에 유치에 나섰습니다. 남의 나라를 침략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평화의 축제'라는 올림픽을 치르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유치 목적은 크게 3가지였습니다. 첫째는 1923년 간토 대지진에서 회복했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주 침략을 거세게 비판하는 미국, 영국 등 서구 국가와 관계를 개선할 목적도 있었습니다. 또 일본 개국 신화에 나오는 진무천황의 즉위 2천600주년을 기념한다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당시 도쿄의 경쟁 도시는 이탈리아의 로마와 핀란드의 헬싱키였습니다. 유치에 성공할 확신이 없자 일본은 이탈리아 독재자 무솔리니에게 양보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무솔리니는 일본이 1944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로마를 지원한다는 조건을 달고 도쿄를 밀기로 결정했습니다. 1936년 개최지 선정 투표에서 도쿄는 37대 26으로 헬싱키를 제치고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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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 도쿄올림픽 유치를 축하하는 성탄절 파티 (사진=CNN 보도)하지만 일본은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바로 다음 해인 1937년 중국을 침략했습니다. '중일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중국 난징에서는 수십 만 명을 살해하는 '남경 학살'까지 저질렀습니다. 올림픽 개최국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행이었습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는 일본처럼 호전적인 국가가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도쿄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할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올림픽 유치 포기를 결정한 1940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 회의 모습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올림픽보다 전쟁을 더 원했던 일본 군국주의는 1938년 7월 결국 도쿄올림픽 개최를 포기했고 개최권은 헬싱키로 넘어갔지만 1939년 나치 독일의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터져 1940년 도쿄올림픽은 끝내 열리지 못했습니다. 아울러 1940년 삿포로 동계올림픽도 취소됐습니다. 두 대회는 올림픽 역사에서 '사라진 올림픽'(The Missing Olympic)으로 불립니다.

2020 도쿄올림픽은 여러모로 1940 도쿄올림픽과 닮은 데가 많습니다. 2011년 도호쿠 대지진으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자 일본은 2013년 대지진 당시 원자력 발전소 폭발로 큰 피해를 본 후쿠시마현의 부흥과 재건을 기치로 내걸고 2020 도쿄올림픽 유치에 나섰습니다. 간토 대지진에서 회복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유치했던 1940 도쿄올림픽과 매우 비슷합니다.

현 아베 정권의 군국주의 부활 조짐도 1940년의 악몽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합니다. 2020 도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나면 <평화헌법>을 개정해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전환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후쿠시마현에 전시된 2020 도쿄올림픽 성화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1940년 도쿄올림픽을 유치하고도 일본은 세계 평화 추구라는 올림픽 정신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80년이 지난 뒤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후쿠시마는 전 세계적로부터 방사능 오염 의혹을 받는 지역입니다. 방사능에서 자유로운 일본 내 다른 식자재가 얼마든지 있는데도 아베 총리는 후쿠시마산 식자재를 206개국 선수단이 먹는 선수촌 메뉴에 올리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또 일본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야구 종목의 개막전도 굳이 후쿠시마에서 강행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전범기'로 인식되는 '욱일기'를 올림픽 경기장에서 사용하는 것을 허용할 생각이고 "독도는 객관적으로 일본 땅"이라는 강변도 계속 되풀이해 하고 있습니다. 2020 도쿄올림픽 1년 연기가 확정되자마자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하는 것도 다른 나라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대목입니다. 애초 예정됐던 7월 24일 개막을 강행하기 위해 일부러 진단 검사를 회피했다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는 공교롭게도 1940년에 태어났고 일본 고위 관료로는 보기 드물게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 일본 사격(클레이)대표팀 선수로 출전한 경험도 갖고 있습니다. 그는 1940 도쿄올림픽과 2020 도쿄올림픽을 놓고 '저주받은 올림픽'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1940년 대회는 치르지도 못하고 사라졌고 2020년 대회는 1년 연기됐습니다. 아베 신조 정권의 2인자로 꼽히는 그는 잦은 망언으로 '망언 제조기'로도 불립니다. 그가 자신의 별명처럼 정말로 망언을 한 것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맞는 말을 한 것인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입니다.

만약 아소 부총리의 표현처럼 저주가 맞는다면 일본은 그 저주에 자신들의 책임은 없는지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중국 고전 가운데 하나인 <서경>(書經)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천작얼유가위, 자작얼불가환(天作孽猶可違, 自作孽不可逭) "하늘이 만든 재앙은 피할 수 있어도 자기가 초래한 재앙은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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