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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人터뷰] 윤봉길 의사 장손녀가 보수 정당을 택한 이유

[총선人터뷰] 윤봉길 의사 장손녀가 보수 정당을 택한 이유

4·15 총선 비례대표 탐구①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1번 윤주경

윤춘호(논설위원) 기자 spring84@sbs.co.kr

작성 2020.03.27 15:44 수정 2020.09.04 13:2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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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평생 목소리를 높인 적도 없었을 것이다. 누구와 얼굴 붉히며 다툰 일도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일제 침략자들에게 폭탄을 던지며 저항하던 행동주의자 윤봉길 의사의 뜨거운 피는 장손녀의 어디에 남아있는 것일까? 어렸을 때부터 수줍음이 많고 낯가림이 심했다고 한다. 친할아버지 윤봉길 의사 얼굴에 먹칠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보다 잘 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부끄럽다고 했다. 혹시라도 할아버지 이름에 누를 끼칠까 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평생 조심하며 살려고 했고 할아버지 이름을 빛내는 사람이 되라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는 사람, 한때는 윤봉길 의사의 장손녀라는 사실이 부담스러운 것을 넘어 불편했다는 사람.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1번 윤주경 전 독립기념관 관장 이야기다.

윤봉길 의사의 장손녀인 윤주경 전 독립기념관장 (왼쪽) (사진은 연합뉴스)
지난 2월 윤 전 관장이 당시 자유한국당에 입당한다고 했을 때 고개를 갸웃했던 사람이 필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매헌 윤봉길 의사의 장손녀가 왜 민주당을 놔두고 보수 정당을 선택했지? 윤봉길 의사 하면 김구 선생이고 김구 하면 대한민국 임시 정부 아닌가. 임정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그 어느 정부보다도 높이 평가하는 문재인 정부에서?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있었나? 누가 영입을 주도했을까? 어쨌든 자유한국당이 인물 하나 제대로 건졌네 하는 느낌이었다. 윤봉길 의사의 장손녀라는 핏줄에 독립기념관 관장 경력까지 갖췄으니 갖출 것은 다 갖춘 셈이다. 더구나 여성이니 어느 당에 가도 딱 떨어지는 비례대표 1번감이었다.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1번은 당연히 윤주경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윤 전 관장은 21번에 배치되었다. 당선 안정권과는 거리가 먼 순번이었다. 윤주경을 비롯해 황교안 대표가 영입을 주도한 인사들은 완전히 찬밥 신세였다. 공천 결과를 두고 한선교 대표의 쿠데타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입당하면 윤봉길 의사의 장손녀에 합당한 예우를 하겠다는 약속은 어디로 간 것이냐며 분노할 법도 하건만 정작 본인은 당선 안정권과는 거리가 있는 순위를 받아 들고도 덤덤했단다.

"그냥 덤덤했어요. 이 사람들은 이런 가치관으로 당을 이끌어가겠다는 뜻이구나 생각했고 당의 방침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국민들 반응이 궁금했어요. 내가 21번을 받은 것을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자신을 21번 순번에 배치한 것에 대해) 비난 여론이 높은 것을 보고 우리 국민들은 독립운동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것 같아서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비례대표 순번이 3번으로 조정되고 최종적으로 비례대표 가장 앞 순위를 차지했을 때는 기쁜 마음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단다.

"(당선권에 배치되었다가 명단에서 빠지거나 당선권 밖으로 밀린 사람들) 그 사람들도 국회의원이 되면 무엇을 하겠다는 꿈과 희망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 당선권에 들어갔을 때 기쁨도 있고 희망도 있었을 텐데 딱히 누구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저 때문에 그 사람들이 그렇게 된 거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장남 윤 종 씨의 1남 6녀 가운데 장녀로 태어난 윤 씨는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광고회사에 다녔다. 평범한 직장인의 삶이었다. 아버지 윤 종 씨는 농수산부 양정국 공무원이었지만 대부분의 독립 운동가 후손들 가정이 그랬듯이 가정 형편은 어려웠다. 중학교 3학년 때 당시 교통부 장관이던 백범 김구의 아들 김 신 씨가 어머니가 김포공항에서 장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이후로는 형편이 나아졌다.

2001년 상해 임시정부 청사 재개관 행사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서 독립운동 기념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상해의 차가운 겨울바람을 경험하고 난 뒤 할아버지를 비롯한 독립투사들이 이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 치열하게 일제와 싸운 것을 새삼 깨닫고 나라도 그분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일에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전까지는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성격 때문에 독립 운동가 기념사업 등에 소극적이었다. 2014년 박근혜 정부에서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되었다.

"2014년에 독립기념관장이 되어서 직원들 앞에서 서는데 왠지 쑥스럽고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구요. 제가 뭘 잘해서 그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잖아요. 다 할아버지 덕분이잖아요. 독립기념관장 자리에 간 것을 두고 이런저런 말이 있다는 것도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때도 제 맡은 일을 잘해야 할아버지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도 그런 생각입니다."

처음에는 자신을 누구의 장손녀라고 소개하는 것이 부끄럽고 힘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신이 윤봉길 의사의 장손녀로 일하고 처신하는 것이 권리만이 아니라 의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독립기념관 관장으로 일하면서 독립운동 기념사업을 할 때, 특히 중국 같은데 가서 제 할아버지가 누구라고 하면 사람들 태도가 달라지고 어려운 일도 잘 풀렸습니다.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를 받을 때도 여, 야할 것 없이 모든 의원님들이 저에게 따뜻하고 우호적으로 대해줘서 환대받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누구라는 것을 숨기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오랜 낯가림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윤 전 관장에게 정치권 입문 계기를 물어봤다. 황교안 대표의 권유가 있었고 독립기념관 관장 재직 당시 하고 싶었지만 여러가지 제약 때문에 못 했던 일들을 국회의원이 되어서 하고 싶단다. 독립운동사 연구 활성화와 연구자 육성을 위한 법적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독립운동의 참뜻을 바로 새겨 대한민국이 하나 된 통합의 길을 가는데 역할을 하려는 것, 윤 씨의 다소 긴 서면 답변을 압축하면 이런 것이었다. 다소 의례적인 답변에서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생각을 그리 오래전부터 한 것은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다.

자유한국당을 택한 이유를 물었다. 여러 차례 물었는데 답변은 매번 겉돌았다. 자유, 평화, 정의, 통합 같은 추상적인 단어들이 나열된 답변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아듣기 어려웠다. 독립운동은 특정 정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는 말 정도가 귀에 들어왔다 자기만의 단어로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아직 익숙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독립운동은 단순히 민족의 독립을 위한 투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종식을 통해 평화의 세상을 만들어나가려는 인류 평화운동이었다는 주장은 꿈꾸는 자의 말처럼 들렸다. 이런 가치들을 추구하는 것이 왜 그 당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윤 전 관장이 추구하는 가치들이 당론과 충돌하는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과거의 예를 들어가며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겠느냐고 거듭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걱정은 안 해봤지만 저는 제 길을 갈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제가 끝까지 지켜야 되는 길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대답을 할 때 윤주경의 목소리에서 힘이 느껴졌다.

이 부분에 대한 답변이 못내 아쉬워서 전화 인터뷰 후에 별도로 질문서를 보냈다. 미진한 부분에 대한 보완 메일까지 보내며 성의 있게 대답하려 한 흔적이 느껴졌지만 서면 답변 역시 본인의 표현을 빌린다면 "구체적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았다." 혹시 2017년 현 정부 출범 직후 독립기념관장직을 사퇴하라고 종용 받은 것과 자유한국당 행이 관련이 있는지 물었지만 윤 전 관장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부인했다. 새 정권이 임기가 불과 2개월 남은 자신에게 물러나라고 종용했을 때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새 정권의 인식이 이것 밖에 안되나 싶어 실망했고 자신이 오히려 부끄러웠다고 했다. 독립운동 단체들의 항의가 받아들여져서 윤 전 관장은 임기를 다 채울 수 있었다. 본인은 당시 있었던 일과 자신의 정치적 선택은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그 일 자체가 유쾌한 기억일 리는 없을 것이다.


윤주경 (사진=연합뉴스)
윤 전 관장은 스스로 본인을 꿈꾸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자신의 말이 꿈 같은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자기마저 그런 꿈을 놓아서는 안 될 것 같다고, 식민지 시대 누가 우리 민족이 독립될 것으로 생각이나 했겠느냐고 하지만 할아버지 윤봉길 같은 독립투사들이 독립의 꿈을 버리지 않아 우리가 지금의 자랑스런 조국을 만든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애국, 나라 사랑 같은 말이 왠지 낡고 구닥다리 같은 느낌을 주는 현 세태를 바꿔보고 싶단다. 그런 말을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하면 그래도 어색하게 들리지는 않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국회에서 하고 싶다는 것이 정치권에 진출하려는 이유라는 것이다.

올 2월 7일 있었던 윤주경 입당 환영식은 자유한국당에서 의욕적으로 준비한 행사였다. 윤주경이라는 모처럼 자랑할 만한 대어를 낚은 황교안 대표, 심재철 원내대표가 모두 환한 표정으로 입당 행사에 참석했다. 그런데 정작 윤주경은 조심스러웠다. 황 대표에게 무궁화 꽃다발을 받을 때도 얼굴이 활짝 펴진 것은 아니었다. 말 한마디 한마디를 고르고 골라서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마저도 짧았다. 목소리 톤은 낮았고 군데군데 말이 엉켰다. 긴장했던 탓일까? 어떤 곳에서는 말을 더듬기도 했다.

제1야당에 입당하는 인사라면 입에 올릴 법한 정권에 공격이나 대통령에 대한 비난은 전혀 없었다. 현 정권 출범 직후 독립기념관장 사퇴를 종용받은 사연도 있는 만큼 대통령이나 현 정부를 공격하자고 들면 공격할 소재가 없었던 것도 전혀 아닌데 말이다. 자신을 정계에 입문 시켜 준 황교안 대표에 대한 의례적인 인사도 없었다. 황 대표 이름은 그녀 인사말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자유한국당이라는 말은 딱 한 번 나왔다. 만약 자유한국당이 그날 윤주경 전 관장에게 윤봉길 의사의 장렬함과 단호함을 기대했다면 조금 실망스러울 수 있었겠다.

윤주경은 전투력이 떨어져 21번에 배치하려 했다는 미래한국당 관계자의 말은 어떤 면에서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녀에게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몸싸움을 불사하고 고함을 지르고 복도에 드러눕는 것이 야당의 전투력이라면 그런 전투력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입당을 권유받았을 때 자신은 지역구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단다. 자신의 특성을 잘 아는 것일까? 아니면 돌파력이 부족한 것일까? 우리가 지난 국회에서 숱하게 봤던 맹렬 여전사의 모습을 윤주경에게서 기대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독립기념관 관장 재직 시 국정감사장에서 여, 야 의원들 모두로부터 환대를 받은 것을 윤주경은 흐믓하게 기억했다. 이제 그런 환대는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정치는 결국 세력과 세력의 싸움인 것이고 윤주경은 이제 그 가운데 한 쪽 세력을 선택했다. 그녀가 선택하지 않은 다른 쪽은 이제 그녀의 경쟁자이거나 때로는 적이 될 것이다. 서로 으르렁거리고 할퀴고 물어뜯고 못 잡아먹어 안달을 하는 정치권의 생리를 곧 고통스럽게 익히지 않을까.

서면 질문서를 보내자 윤 씨는 다음 날 아침 6시까지 답을 보내겠다고 했고 답 메일은 5시 24분에 도착했다. 메일을 보낸 뒤에 스스로 생각해도 미진한 부분이 있었던지 6시 22분, 6시 52분에 추가 답변을 보내왔다. 메일에 담긴 답변 내용은 아쉬웠지만 그녀가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것만큼은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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