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사회적 거리두기'가 공간에 미치는 영향

김종대|건축가. 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

SBS 뉴스

작성 2020.03.28 11:00 수정 2020.03.28 17:3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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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가 벌써 석 달째 접어들었다.

확진가 계속 늘어나면서 사람 간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지역사회 감염 차단을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에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고 있다. (* 사회적 거리두기 : 여러 사람이 만나는 모임이나 행사를 최대한 피하고, 개인 간의 만남이 있을 때에도 2m 이상 떨어져 대화할 것을 장려.)

어느 외국 카페에서는 주문하는 사람들을 일정한 간격으로 떼어놓으려 '서 있을' 위치를 바닥에 그리기도 하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다른 사람과 접촉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코너에 몰려있는 모습 등,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는 세계 곳곳의 모습들이 뉴스를 통해 전해졌다. (물론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한 아이디어이지만, 평소와 다른 사회적 활동 제약으로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다.)

고객들이 '서 있을' 위치를 바닥에 그려놓은 외국의 어느 카페.
지금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에서의 '사회적 거리'는 전염병 차단의 단절적 의미가 강하지만, 건축에서 오래 전부터 다루고 있는 '사회적 거리'는 연결소통에 관련된 개념이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Edward Hall)은 그의 저서 <숨겨진 차원'(The Hidden Dimension)>에서 사람들 사이에 작용하는 공간 구조를 '임계 거리'(Critical Distance)로 설명하면서 '나'를 중심으로 대략 2m 정도의 거리 영역을 '사회적 거리'(Social Critical Distance)라고 규정하였다. 이 거리 안에서는 상대방의 행동에 불편을 느끼지 않으며 독자적인 행동을 하는데 적절한 공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보다 가까운 영역으로 '친밀한 거리'(Intimate Critical Distance)와 '개인적 거리'(Personal Critical Distance)가 있다. '나'를 중심으로 0~46cm 거리인 '친밀한 거리'는 가족이나 연인처럼 친근한 사이에서만 허용 가능하고, 46~120cm 거리인 '개인적 거리'는 상대방이 예고 없이 이 영역 안으로 접근했을 때 불편함을 느끼거나 상대방이 무례하다고 느낄 수 있는 자존의 공간 영역이다.

'임계 거리'는 개인차와 문화적 영향에 의해 다르게 나타는데, 사람의 앞쪽이 뒤쪽보다 더 많이 확장되고, 유럽 · 북미의 경우 아시아에 비해 더 벌어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종종 SNS를 통해 버스 정거장에서 기다리는 북유럽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확실히 우리보다 더 넓은 간격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한정된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어쩔 수 없이 체득된 공간의 경험치가 '임계 거리'에 영향을 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한때 인터넷을 달궜던 핀란드 버스정류장의 사람들. 띄엄띄엄 줄을 선 모습이 독특하다.
'임계 거리'에서 오는 갈등은 예의와 예절에서 오기도 한다. 자신이 느끼는 '임계 거리'를 침범당했을 때 당혹을 넘어 불쾌감을 느끼게 되는데, 어떤 사람이 버릇없다고 느끼게 만드는 요인 중에는 말과 행동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공간의 문제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까운 사이에서는 '임계 거리'가 문제 되지 않는다. 친한 친구나 연인이 가깝게 붙어 다닐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건축에서 '임계 거리'는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친근한 사람들이 모이는 카페나 음식점, 그리고 공공의 공간을 설계할 때도 참고가 가능하다. 공유를 목적으로 여러 명이 함께 사는 공유 주택의 경우에 최소한의 개인 공간이 확보되지 않았을 때 느끼는 불편함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과 공유할 수 없는 최소한의 공간 확보는 개인에게 편안함과 안전함을 느끼게 하는 핵심 포인트이다. 가족 중심의 주택에 있어서도 한정된 예산과 공간 안에서 개인 공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손쉬운 방법으로 마당에 컨테이너를 들여놓는 사람들도 있다.

'개인적 거리'와 '사회적 거리'의 확보 문제는 업무의 효율성에 관심이 많은 사무실 설계에 더욱 필요하다. 폭 1.5m 남짓의 사무용 책상을 기준으로 배치된 사무실에서 개인적인 공간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는 마주 앉은 동료 직원의 숨소리가 안 들릴 정도의 거리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애플 사옥이나 구글 사옥에서 보는 것처럼 창의성을 위한 개인 공간이 확보된 사무공간은 아직까지 남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스위스 취리히의 구글 사무실. 개인공간이 확보된 모습이 인상적이다.
어쩌면 코로나19로 시작된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이 여유 있는 사무공간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많은 기업에서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재택근무를 시작했고 모이지 않으면 일이 안된다던 사람들도 재택근무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이 정도의 인식이라면 코로나19 사태가 모두 끝난 뒤에도 재택근무는 한국사회에서 하나의 근무방식으로 뿌리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재택근무로 사무실 인원수가 줄어들면 그만큼 여유가 생긴 공간에서 '개인적 거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사는 집에도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생활을 위한 전통적인 주택의 공간 외에 업무 공간이 새로 추가될 수 있을 것이고, 산업혁명 이후 분리되었던 주거 공간과 업무(작업) 공간이 다시 합쳐지면서 새로운 주거 형태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세상이 어수선해도 어김없이 봄은 오고 꽃은 핀다. 코로나19 사태가 잦아들고 평범한 일상을 되찾는 그날,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도 함께 따라 올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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