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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7분이라는 승부수 (feat. 시나리오 쓰는 봉만대)

[인-잇] 7분이라는 승부수 (feat. 시나리오 쓰는 봉만대)

봉만대 | 영화감독

SBS 뉴스

작성 2020.03.27 11:01 수정 2020.03.27 11:5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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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봉만대
원시 시대의 동굴 벽화는 그림 동화로 이어지고 선대의 서사는 종이의 발견으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입만 열면 거짓말만 하던 사람이 진정성을 버무려 설을 풀자 사람들은 믿기 시작했고 그 믿음이 다른 이의 해석으로 재탄생된다. 그 설은 귀 동냥으로 들은 누군가에게 구전되거나 다시 재가공 편집해서 이야기가 부풀려지고 어른의 이야기로 아이들의 동화로 각색된다.

재미없는 것은 모조리 버려졌고 흥미로운 소재들, 즉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남겨졌다. 재미는 시대의 요구이며 좋든 싫든 우리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것이 자본주의적 접근이던 할리우드식 영화 만들기의 교본이든 현재 생산되는 모든 것들은 재미를 충족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영화 재미있어?"
 

영화를 보려는 사람이 묻는 공통된 질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재미란 무얼까? 재미의 사전적 정의는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 영어로는 fun 또는 interest다. 120분의 서사를 보기 위해 극장까지 가야 하는 관객은 티켓 구매부터 극장으로 이동, 몇 바퀴를 돌아야 주차를 하고 나면 벌써 지쳐버린다. 몸에 꽉 낀 바지같이 불편한 좌석에 앉은 나의 희생이 결국 짙은 감상을 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보기 시작한다. 내 만족에 못 미치면 실망하고 다시 집까지 돌아가야 한다. 내내 돈 아깝고 시간 아깝다는 불평을 하면서 말이다.

투자사는 영화에 투자하고 감독은 영화에 영혼을 투자하고 관객은 바쁜 시간을 투자한다. 감독이 관객을 만나는 시간은 짧게는 1년 길게는 10년이고, 3년만 되어도 운이 좋았다고 여긴다. 시나리오만 좋다고 영화가 잘 되는 건 아니다. 배우는 감독을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도 그런 분들이 많다.


봉만대 감독
이렇듯 관객의 질문은 곧바로 시나리오를 쓰는 나에게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나는 재미있는 시나리오를 집필했는가?
나는 시나리오는 몰라도 재미있는 사람인가?
나는 재미를 아는가?


스토리가 이야기로서 설득력을 가지려면 스토리의 이해와 대범한 접근도 필요하고 시대를 읽어내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즉 감각적인 인간이 재미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거다. 여기서 감각은 구조를 이해한 자만이 섭렵한다. 촉수로 느끼는 일회성이 아닌 인간 내면의 깊이와 인간이 살아온 역사를 알아야 유머가 나오고 해학이 나오고 철학이 영화로 꽃을 피우는 것이다.

관객의 뇌가 바뀌고 있다. 뇌가 정보를 받아들이기 위해 집중하는 시간이 7분 미만이라 한다. 영화는 8개의 시퀀스, 시퀀스 당 15분의 내러티브. 러닝타임 120분이라는 계산된 숫자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아날로그 시대 시나리오 작법으로 단련된 나의 시퀀스 15분. 이 시간이 무너지고 있다. 아니, 진즉 무너졌다. 다양한 매체에서 짧은 영상을 접하는 시대의 관객들에겐 120분 러닝타임의 분배는 필수적이다.

스크린은 즉흥적으로 상황을 바꾸는 스탠딩 무대가 아니다. 지루하다고 느껴지면 관객의 눈치를 보고 다른 상황으로 즉각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만큼 오랜 시간 개봉 일정과 사회적 컨디션을 계산하면서 만들어진다. 물론 운 좋은 대진표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 감독은 무당도 점쟁이도 아니다. 알 수 없는 상황은 계속 다가오고 개인 만족의 시나리오가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만들어져야 하는 시대다.

소재, 설정, 구조, 구성, 묘사. 교과서 시나리오에서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소재 선택이 잘못되면 안 하느니만 못하고 아무리 구성을 알아도 구조를 모르면 이야기는 산으로 간다. 그만큼 이야기는 체계적으로 이뤄진 문학처럼 보이지만 실은 답이 있는 수학과 유사하다. 3대 영화제를 선호하던 관객들이 최근엔 미국 아카데미상을 받은 작품들을 찾아서 본다. 극장에서 미처 못 본 작품은 넷플릭스에서 본다. 미국이 주도하던 필름 시대, 나는 어떤 이야기로 사고를 칠 수 있을까? 관객은 어떤 이야기에 속아 넘어갈까?

영화의 시작인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나는 감독이다. 난 적어도 영화계 내에선 재미난 사람이다. 시나리오만 잘 쓰면 되는데 그게 어렵네. 죽기 전에 봐야 하는 영화가 많다지만 그 전에 죽을 수도 있다. 그보다 먼저 죽여주는 영화 한편 만들어 보고 싶은 건 비단 나뿐일까?

힘든 시기에 힘을 줄 수 있는 시나리오!
잘 쓰면 신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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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잇 시즌 2 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