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이 사건을 '모리토모 공문서 개찬(改竄, 조작이라는 의미) 사건'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사건의 전모가 알려지면서 윗사람을 '알아서 모시는' 공직자들의 자세가 큰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공직사회에 그런 분위기를 만연시킨 아베 총리와 정권 핵심 인물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제기됐음은 물론입니다.
2018년 6월에 일본 정부 재무성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공문서 조작 사실에 대해 인정하기는 했지만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조작을 지시한 재무성 담당 국장은 '헐값 매각 보도' 이후 국세청 장관으로 오히려 승진했고, 문서 조작과 관련해서도 3개월 정직이라는 '솜방망이' 징계만 받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정권에 충성한' 공무원은 어떻게든 살아남는다는, 아니 오히려 승승장구한다는 쓰디쓴 인상을 남기게 된 셈입니다.
54세의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긴키 재무국 아카기 도시오(赤木 俊夫) 씨의 부인이 18일 오사카 지방재판소에 총액 1억 1천250만 엔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문서 조작'을 지시해 장기간 노동을 강요했고, 결과적으로 직원의 생명을 해친 국가에 대해 1억 700만 엔, 당시 재무성 담당 국장의 명백한 직권남용 행위와 유족에 대한 사과와 설명 부족에 대해 550만 엔을 합친 금액입니다.
아카기 씨의 아내는 "남편의 극단적 선택은 공문서 조작에 가담했다는 죄책감 때문"이라며, 문서 조작은 "대체 누가 누구를 위해 실행한 것인가", "조작의 원인이 된 토지의 매각 경위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다"고 변호인을 통해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남편이 남긴 수기와 유서를 증거물로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원고 측은 소장(訴狀)의 앞부분에 "진상규명뿐만 아니라 상층부의 보신과 촌탁(忖度, 윗사람의 뜻을 헤아려 받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 지시로 현장의 직원이 스스로를 해치는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고, 이 일과 관련해 어떤 조작과 거짓 답변이 있었는지를 공적인 장에서 설명하도록 하고자 한다"는 소송 목적을 분명히 하기도 했습니다.
아카기 씨의 사망 이후 몇몇 언론 보도에서 아카기 씨가 남긴 수기와 유서의 내용이 파편적으로 드러난 적은 있지만, 유족이 이를 한데 모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수기 속에서 아카기 씨는 "2017년 모리토모 학원에 국유지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결재 문서의 수정은 사가와 노부히사(佐川宣寿) 전 재무성 이재(理財)국장의 지시였고, 현장 직원들이 저항했지만 결과적으로 무시당했다"고 썼습니다. 여러 차례 문서 조작을 강요당한 아카기 씨는 그해 7월에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11월에 이 사건을 조사하던 오사카지검 특수부에서 '임의조사'를 받을 수 있겠느냐는 요청을 받은 뒤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습니다. 2018년 3월 2일에 아사히신문(朝日新聞)이 매각 관련 공문서가 조작된 의혹을 보도한 닷새 뒤에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맙니다.
결국 이번 소송의 쟁점은 사가와 전 국장이 모두 14건의 매각 관련 공문서에서 아베 총리와 부인 아키에 씨의 '그림자'를 지우도록 지시했는지 여부가 됐습니다. 2018년 6월 재무성의 조사보고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사가와 전 국장이 그런 방향으로 결정해 밀어붙였다'고 되어 있는데, 이 표현에 대해서는 당시에도 사가와 국장의 구체적인 지시가 있었는지 여부를 애매하게 흐린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처음부터 모두가 사가와 국장의 지시였습니다"라고 수기에 명확하게 밝힌 아카기 씨의 '말 없는 증언'이, 다시 법정에서 증명될 기회가 만들어진 셈입니다.
2017년 3월 6일에는 야당의 강한 드라이브로 국회가 회계검사원에 조사를 요청했습니다. 다음날인 7일 아카기 씨는 "상사로부터 여러 차례 문서 조작 지시를 받아 저항했다"고 수기에 적었습니다. 그러나 아카기 씨의 저항은 결국 위로부터 묵살당했고, 문서 조작은 이 일이 있은 직후에 발생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회계조사원은 이후 긴키 재무국에 대해 현장 조사까지 벌였지만, 문제는 유야무야됩니다. 재무성 측이 문제를 덮기 위해 조사에 불성실하게 응한 것이 큰 원인으로 지적됐습니다. 그리고 거의 1년이 지난 2018년 3월에 '문서에 조작 의혹이 있다'는 보도가 터져 나왔고, 결국 아카기 씨는 (본인은 저항했지만) 문서 조작의 책임을 자기가 뒤집어쓰게 될 거라는 부담감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게 일반적인 분석입니다. 아카기 씨의 죽음 이후 재무성이 당시 결재문서에 '수정'이 있었다고 인정한 조사 결과서를 발표했지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조작의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카기 씨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2년이 지나 다시 주목받은 '모리토모 사건'. 이번에는 국회가 아닌 법정에서 당시의 공방이 재연됩니다. 18일 유가족 등 원고단의 손해배상 소송 제기에 대해 재무성은 "아카기 씨의 수기 내용은 2018년의 재무성 보고서와 큰 차이가 없는 내용"이라며 "사건을 재조사할 계획은 없다(아소 재무상, 19일 국회 발언)"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제 와서 무슨…"이라는, 유족 입장에서는 가슴이 무너질 만한 반응도 전해졌습니다. 당시 '미완의 공격'으로 시민사회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던 야당은 심기일전, '모리토모 사건'을 재검증하는 팀을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수기에 기록된 사가와 씨의 지시 유무를 국회 차원에서도 조사하기 위해 증인 청문회 등을 요구하겠다며 칼을 갈고 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