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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념·성소수자 문제는 불필요·소모적 논쟁"…민주당이 그리는 비례연합정당은

[취재파일] "이념·성소수자 문제는 불필요·소모적 논쟁"…민주당이 그리는 비례연합정당은
'비례연합정당'을 구체화하기 위한 민주당의 움직임이 '속도전'이라 불릴만합니다. 13일 오전 비례연합정당 참여를 공식 발표한 민주당은 나흘 만에 어떤 정당들과 어떤 플랫폼을 통해 그 비례연합정당을 꾸릴 것인지를 결정했습니다. '시민을위하여'라는 플랫폼을 통해 우선 5개 정당(더불어민주당, 기본소득당, 시대전환, 가자환경당, 가자평화인권당)이 함께 하기로 한 겁니다. 논의를 위해 모였다는 자리에서 협약 체결까지가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을 만드는 단계를 하나씩 밟아나가던 당시 민주당은 이를 일관되게 '꼼수'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리 멀리 가지 않더라도 당 지도부 인사들의 비판 발언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1월 16일 이낙연 전 총리는 민주당은 그런 (비례) 정당을 만들거나 대응할 계획이 없다고 봐도 되느냐는 질문에 "그러지 않을 겁니다. 그런 짓을 해서 되겠습니까"라고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이해찬 대표 역시 1월 10일 "비례한국당이니 비례자유한국당이니 명칭이 난무하는데 이런 행위는 국민 투표권을 침해하고 결국 정치를 장난으로 만든"다고 했습니다. 이런 비판들이 엊그제인지라 민주당의 이런 비례연합정당 속도전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 '답정너' 비례연합정당? "절박한 상황"

더불어민주당 출입기자로 일한 지 1년 반 정도가 되어가는 지금, 전 당원을 상대로 한 투표를 진행하는 걸 본 건 지난해 이른바 '공천 룰'을 확정할 때를 포함해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흔한 일은 아니라는 이야기일 겁니다. 민주당은 이 절차를 통해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할지 여부를 당원들에게 물었습니다. 당 지도부는 8일, 이 전 당원 투표 실시 방침을 밝혔는데 그 다음날엔 그 투표 전에 의원총회를 열어 소속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했습니다. 10일 열린 의원총회에선 찬성 의견이 많았다지만 반대 의견도 있었습니다. 의원총회에 참석했던 한 민주당 의원은 "(민주당에 비례연합정당 참여를 요청한) 정치개혁연합의 기자회견문을 의원총회장에서 나눠줬다"면서 "그 이유는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당원 투표를 하자면서 의원총회는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도 했습니다. 의원총회와 당원 투표 모두 당 지도부가 이미 '비례연합정당 참여'라는 결론을 내어놓은 상태에서 그 결론에 대한 명분을 쌓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느냐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투표는 12일 새벽 6시부터 24시간 동안 이뤄졌는데, 당원들에게 보내는 투표 제안문을 살펴보면 민주당은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하려는 이유를 '절박한 상황'에서 찾았습니다. 지금은 "소수 정당 원내 진입 보장이라는 선거제도 개혁의 취지를 살리면서 미래통합당의 비례 의석 독식과 원내1당을 막고, 문재인 정부의 성공과 정권 재창출의 토대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결국 이 목표를 위한 대책으로 당 지도부가 내어놓은 유일한 선택지가 바로 비례연합정당 참여입니다.

●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 보장" 취지는 과연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비례연합정당에서 이 취지가 잘 구현될 수 있을까요. 가장 첫 머리에 등장한 "소수 정당 원내 진입 보장이라는 선거제도 개혁" 부분부터가 당장 눈에 들어옵니다. 전례 없던 '쪼개기 임시국회'를 통해서까지 민주당 등이 통과시킨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골자입니다. 2018년 12월, 손학규 당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당시 정의당 대표가 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며 국회에서 단식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법안 개정안 첫머리에도 담겨 있는, 선거법을 이렇게 바꿔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국회의 의석 배분에 있어 국민의 의사의 왜곡을 최소화' 그리고 '다양한 정책과 이념에 기반한 정당의 의회 진출을 촉진하려는 것'.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도 비례연합정당을 추진하는 것이 이 취지에 어긋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해 왔습니다.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윤 사무총장은 정의당이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이미 정의당은 의석을 갖고 있는 원내 정당이기 때문에 (정의당이 불참함으로써) 원내에 진입하지 못한 많은 군소 원외 정당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 것으로 판단한다는 겁니다. 정의당이 불참한 공간에 다른 군소 정당들이 들어와 그 몫을 나눠 가져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될 수 있게 하겠다는 설명인데, 이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통합진보당의 후신격인 민중당의 비례연합정당 참여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윤 사무총장은 "앞으로 남은 4년간 정부를 통해서 정책을 실현하는데 합의할 수 있는 정당들이라고 말씀 드린다"고 했습니다. 민주당은 민중당과는 함께는 못한다는, 에둘렀지만 분명한 배제의 표현이었습니다. 비례연합정당을 누구와 꾸릴 것인지부터 민주당의 관점이 분명히 반영돼 있는 겁니다. '소수 정당 원내 진입 보장'이라고 말하던 목표에 스스로가 일부 선을 그은 셈입니다.

● "성소수자 문제는 불필요·소모적 논쟁"…표에 도움 안 되니까?

이런 민주당의 관점은 16일 윤 사무총장의 기자간담회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민중당은 현재 민주당 등 5당이 참여한 '시민을위하여'라는 플랫폼이 아니라 '정치개혁연합'이라는 다른 플랫폼 참여를 공식적으로 밝힌 상태입니다. 민주당은 16일 그 '정치개혁연합'이 아니라 '시민을위하여'이라는 플랫폼을 선택했습니다. 자연스레 '정치개혁연합', 또 민중당과 함께 하는 건 이제 어려운 일이냐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민중당에 대해서는 앞서 말했듯 이미 배제를 뜻하는 발언이 있었기에, 민중당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정치개혁연합'이 이야기하면 함께 할 수 있느냐는 질문도 나왔습니다. 윤 사무총장은 "이를테면 이념 문제라든가 성소수자 문제라든가 이런 불필요한 소모적인 논쟁을 일으킬 수 있는 정당들과의 연합에는 저희는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한다고 답했습니다. 성소수자 문제가 불필요한 논쟁이라고 말한 것이냐며 기자가 재차 확인하자 "소모적인 논쟁"이라고 거듭 답했고, 어떤 측면에서 소모적이라고 말한 것이냐는 추가 질문에는 "(그 문제가) 선거의 이슈가 되는 것이 그렇게 좋지는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우선 군소 정당의 원내 진입을 위한다는 비례연합정당 논의를 본격화하면서 이념을 두고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이라고 치부하는 것부터 이번 선거법 개정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낸 것과 마찬가지인데,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윤 사무총장의 접근은 그것을 넘어 군소 정당의 존재 이유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입니다. 당장 녹색당의 강령을 보면 "소수자에 대한 모든 차별과 배제를 없애야 한다"며 "장애인·이주민·탈북주민·성소수자 등의 인권을 보호하고 존중한다"고 명시돼 있고 또 비례대표 후보에도 성소수자가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받는 이들이 끊임없이 그렇지 않은 이들과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고 있는 현실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그 문제를 '불필요'하고 '소모적'이다, 그래서 할 필요가 없는 무용한 것으로 치부했습니다. 선거의 이슈가 되는 것이 그렇게 좋지는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는 건 결국 소수자 문제는 '소수자'들의 문제이기 때문에 표에 도움이 안 된다는, 그래서 이들을 비례연합정당에서 배제하고 표가 되는 방향을 좇겠다는 인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당장 민주당 내부 성소수자위원회 준비모임도 16일 저녁 곧바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준비모임은 윤 사무총장을 향해 "김대중 대통령은 국가인권위원회법을 만들고 시행하면서 성적 지향을 차별 금지 사유로 명시"했고 "노무현 대통령이 발의하였던 차별금지법에도 성적 지향이 명시"돼 있는데 그렇다면 두 대통령이 모두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일을 한 것인지 따져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사과와 발언 철회를 요구했습니다. 정의당 강민진 대변인은 녹색당이 비례연합정당에 함께 하게 된다면, 그리고 민주당이 그 성소수자 후보가 비례연합정당의 후보가 되는 것이 꺼려진다는 뜻이라면, 비례연합정당의 공천 기준을 좌지우지하겠다는 민주당의 의도가 드러난 것이고 또 성소수자인 후보는 공천하고 싶지 않다는 집권여당의 차별적 인식이 담긴 말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녹색당도 이는 분명한 혐오 발언이라고 반발했습니다.

● 현역 의원 파견까지? "단독 비례정당이 나았다" 얘기도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사무총장 (사진=연합뉴스)
앞서 보듯 이념도 지향도 모두 민주당이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모양새입니다. 뜻이 맞는 정당과만 함께 하겠다는 게 뭐가 문제냐고 말할 수 있지만 사실상 미래통합당이 미래한국당을 만들었듯 '비례민주당'을 만드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입니다. "성소수자 문제는 불필요·소모적 논쟁"이라는 이야기 이후에 윤호중 사무총장은 "녹색당은 그 부분(성소수자 관련) 이외의 많은 훌륭한 정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함께할 수 있지만 비례대표 후보를 추천하는 데에 있어서는 좀 더 엄밀하게 협의를 해 봐야 한다"고도 말했습니다. 결국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하는 정당뿐 아니라 그 정당에서 제안하는 후보들도 민주당이 평가하고 후보 등록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으로 읽힙니다.

또 하나, 사실상 비례민주당 아니냐는 비판의 이유는 바로 '의원 파견'입니다. 현역 의원들의 숫자가 많을수록 해당 정당이 비례대표 투표용지에서 윗 순번(기호)을 차지합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비례연합정당에 현역 의원들이 없다면 당연히 순번은 아래로 내려가고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기 쉽지 않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비례연합정당 참여가 공식화된 이후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21대 총선에 불출마 선언을 했거나 공천 과정(컷오프, 경선 패배 등)에서 탈락한 의원들과 오찬을 연이어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윤 사무총장이 이런 상황(현역 의원 유무와 비례대표 투표 순번 문제)을 자리했던 의원들에게 설명했다고 합니다. 사실상의 '파견 요청'으로 받아들였다는 의원들은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21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는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잠시라도 그렇게 편법으로 당적을 바꾸는 것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렇게까지 하려면 애초에 (연합이 아니라) 단독 비례 정당을 만드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자신은 민주당이라는 당의 정체성을 지닌 채 몇 년에 걸쳐 당에 헌신해 왔다면서 당을 옮기는 것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민주당은 지난 2월 13일 미래한국당 한선교 대표와 조훈현 당시 사무총장 내정자를 고발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자유한국당의 비례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가리켜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을 인위적으로 왜곡해 창당한 정당이고, 자유한국당 탈당 및 제명 후 미래한국당에 참여하는 행위는 개정 선거법을 무력화해 국민들의 자유로운 정당 선거를 방해하려는 혐의가 있다는 게 고발 요지입니다. 지금 민주당이 밟아가고 있는 단계는 어떨까요.

패스트트랙 법안 협상 및 법안 통과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 봤던 한 민주당 의원은 지난 1월 기자와 만났을 때 "비례 정당이 출현하면서 이 법(개정 선거법)은 이제 못 쓰게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지 겨우 1달 남짓 된 상태였는데, 4년 뒤 있을 22대 총선 전에 선거법이 또 개정될 게 분명하다는 말이었습니다. 결국 오랜 시간에 걸쳐 패스트트랙을 밟아 온, 그리고 그 이전에 수많은 과정을 거쳐 온 법안이 일회용으로 전락할 상황입니다. 앞장서서 이런 비례 정당의 움직임을 비판하고 공격했던 민주당도 결국은 비례연합정당이라는 형태로 이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비례 정당이 아니라고 하지만 정책, 이념 지향, 후보까지 민주당 입맛에 맞는 곳을 선택하고 때로는 배제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시간이 촉박해 창당 단계를 좀 더 밟은 '시민을위하여'를 선택했다고 했지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지지 성향이 강한 곳이라 선택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앞으로 비례대표 후보 등록까지 남은 10여 일, 민주당이 이끄는 비례연합정당이 과연 민주당이 극구 부인하고 있는 '비례민주당의 창당'과 얼마나 다를 수 있을지 결국은 꼼수에 꼼수로 맞서는 '꼼수 경쟁'으로만 그치지 않을지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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