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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삽시간에 확진자 27명…해수부 집단 감염과 5일 간의 전수조사

- 세종청사 출입 기자의 코로나19 검사 이야기

화강윤 취재파일
이틀 전 만나 얘기를 나눈 사람이 코로나 19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접촉자 기사만 쓰던 제가 바로 그 접촉자가 된 겁니다. 기하급수적인 확산세에 언젠가는 감염자를 만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간 세종시에서는 확진자가 적었던 이유로 마음을 놓고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 사람의 확진 소식을 전해 듣고 나니 지난 이틀간의 행적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갑니다. 나는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했는가. 마스크를 쓰지 않고 만난 이들은 없는가. 병원에 다녀온 적은 없는가.

지난날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생각은 미래를 향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마음을 더 강하게 사로잡기 마련입니다. 만에 하나 확진 판정을 받게 된다면, 나는 어디로 가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와 만난 사람들에겐 뭐라고 얘기하나. 세상에 내놓아도 한 점 부끄럼 없는 동선 위에 있는가. 한동안 만나지 못할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인터넷에 떠도는 '심각한 폐 손상' 같은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도 떠오릅니다.

불안을 떨어버릴 가장 빠른 방법은 감염 여부를 빨리 확인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바쁩니다. 서둘러 가까운 선별진료소로 향했습니다.

● 순식간에 확진자 30여 명으로…세종청사 집단감염

저는 해양수산부를 비롯한 세종청사의 정부 부처 취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최근 확진자가 속출한 바로 그곳입니다. 이야기는 지난 3월 10일로 돌아갑니다. 해양수산부 수산정책실 직원 1명이 발열과 오한 증상을 호소하다가 코로나 19 감염증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정부청사 집단 감염의 신호탄이었습니다. 첫 확진자의 밀접 접촉자부터 시작해 가까운 국·실, 그리고 같은 층 사람들까지 검사를 넓혀갔는데 검사하는 족족 확진자가 나왔습니다. 이튿날에는 4명, 그다음 날인 12일에는 13명의 확진자가 추가됐습니다. 국가보훈처에서 나온 1명을 제외하면 모두 같은 층 근무자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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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강윤 취재파일
13일에는 7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수는 줄었지만, 양상이 달라졌습니다. 4층이 아닌 5층에서도 확진자가 1명 나왔고, 전 주까지 4층에서 근무하다가 옆 건물 사무실로 인사이동을 한 직원 1명도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옆 건물 4동은 일부 공간만 해수부가 쓰고 있고 모두 기획재정부가 쓰고 있는 건물입니다. 마스크 대책부터 추경예산안, 민생 대책에 더불어 증시, 외환 불안까지 덮쳐 그렇지 않아도 '호떡집'인 기재부에 실질적인 감염의 위협이 온 겁니다. 또 확진자 가운데 1명이 지난 5일 국회 농해수위 전체회의에 참석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입법부까지 여파가 미쳤습니다. 국회의원을 포함해 상임위 참석자와 접촉 의심자는 집에서 쉬어야 했습니다. 청사 1곳에서 발생한 소규모 집단 감염의 양상이 행정과 입법 기능 전체로 확산할 거라는 공포가 커진 겁니다.

● M 드라이브보다 빠른 '승차 진료' 검사

몸담은 곳의 위기는 금방 개인의 위기로 다가왔습니다. 11일에 만나서 대화를 나눴던 직원이 확진 판정을 받은 사실이 전해진 겁니다. 해수부는 "확진자와 접촉한 이력이 있어 감염이 의심되는 기자들도 서둘러 검사를 받으라"고 요청했습니다. 저도 서둘러 접촉 이력을 해수부와 회사에 알리고 검사를 받았습니다.

제가 방문한 청주의 선별진료소는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승차 진료소(드라이브 스루)가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검사장에 도착한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저는 수납 영수증을 들고 그곳을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세계 시민 여러분, '빨리빨리국'에서는 M 드라이브나 스타X스 DT보다 코로나19 검사가 빠릅니다.
청주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
이 병원의 선별진료소는 컨테이너 가건물이 아니라 기존에 주차 관리를 하던 작은 부스에서 모든 과정을 한 번에 처리하고 있었습니다. 진료소에 도착하면 우선 온몸을 방역복으로 감싼 의료진이 인적사항을 작성하는 서류를 건네줍니다. 간단히 작성하고 나면 긴 면봉을 입안에 한 번, 코안으로 깊숙이 한 번 집어넣어 검체를 채취합니다. 이때 아프다는 분들도 있는데, 능숙한 의료진을 만난 덕분인지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작은 플라스틱 통에 가래를 뱉어서 전하면 검사가 끝납니다. 검사 비용은 자부담이 17,000원, 건강보험공단 부담이 21,000원가량 나왔습니다. 이렇게 모든 검사가 끝나면 어디 돌아다니지 않고 얼른 집으로 돌아가 다음 날까지 경건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면 됩니다. 검사 결과는 하루면 나옵니다. 음성이라면 문자가, 양성이라면 전화가 올 거라고 했습니다.

검사를 받고 집에 들어오니 기분 탓인지 괜히 목이 따끔거리는 것 같고 피로감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코로나19 감염증의 주요 증상으로는 발열, 기침 등 호흡기 증상과 함께 권태감, 피로감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애써 떨쳐도 주변 사람들에 대한 걱정은 쉬 떨쳐지지 않습니다. 사흘 동안 함께 밥을 먹거나 접촉했던 주변 사람들에게 검사 사실을 알렸습니다. 저와의 만남으로 괜한 걱정을 떠안게 된 사람들, 특히 아이를 키우는 분들에게 굉장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고슴도치, 개똥벌레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사람 마음은 다 같은가 봅니다. 저와 만난 뒤 확진 판정을 받은 해수부 직원은 본인이 아파서 치료 중인데도 저에게 "걱정 끼쳐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왔습니다.

이튿날 오전 10시 반쯤, 검사 22시간 만에 결과를 통보받았습니다.
음성 판정 문자 통보

● 감염경로는 여전히 '오리무중'

정부 세종청사는 뻥 뚫린 넓은 공간에 기능별로 자리가 나뉘어 있습니다. 전국에서 방문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사무실을 방문하고, 또 각종 대면 회의와 간담회, 공청회, 행사가 수시로 이뤄지는 곳입니다. 감염자가 나올 수밖에 없고, 또 감염자의 감염 경로와 감염원을 찾기도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 해수부 집단 감염의 원인은 드러난 것이 없습니다. 세종시와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팀, 해수부는 합동으로 역학조사를 벌이고 있는데, 아직 확진자 가운데 신천지 관련자나 대구‧중국 출장 이력이 있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수께끼의 집단감염을 맞아 세종시와 행정안전부는 최대한 빨리 많이 검사해서 확진자를 가려내고 격리시키는 것으로 대응했습니다. 기존 승차 진료소 시설을 확충하고 해수부 근처 주차장에도 간이 승차 진료소를 설치해 검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4일까지 해수부 전체 직원 795명에 대한 검사가 끝났습니다.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 직원의 2/3가 재택근무를 했고, 문성혁 해수부 장관 본인을 포함해 접촉자 200여 명이 2주간 자가격리 됐습니다. (문 장관은 음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인사혁신처는 전체 중앙 행정기관 50여 곳에 대해 의무적으로 교대 재택근무를 하도록 하는 유연 근무 지침을 내렸습니다. 회의와 보고는 영상·서면으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출근 시간과 점심시간도 기관마다, 부서마다 시차를 둬서 엇갈리도록 했습니다.

3월 15일 추가 확진자 1명을 마지막으로 해수부 전 직원에 대한 검사가 끝났습니다. 다행히 3월 16일엔 해수부는 물론 세종시 전체에서 확진자가 추가되지 않았습니다. 우려했던 타 부처로의 확산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감염 경로가 드러나지 않았고, 다른 부처 접촉자들에 대한 조사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만큼 세종시와 정부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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