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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총선 한 달, 정치 '타짜'들의 셈법

2020 총선, 데이터로 팩트체크 : ① 비례정당 의석수 편

이경원 기자 leekw@sbs.co.kr

작성 2020.03.15 11:36 수정 2020.03.25 09:4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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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번에는 선거철마다 못 볼 꼴 많이 보여주는 정치권의 민낯이 덜 회자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코로나19 영향이 클 겁니다. 하지만, 2020년 총선,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부끄러운 한 획을 그을 것 같습니다. 비례대표 전용 전당, 이른바 '비례정당'이라는 기형적 정치 공동체가 선거 전면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촛불 이후 민주주의'가 성취된 지 고작 3년밖에 안 됐습니다.

이미 지난해 예고된 일이었습니다. 당시 국민들은 간만에 동물국회를 목격했습니다. 노루발못뽑이, 이른바 '빠루'로 입법기관의 문이 부서졌습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화근이 됐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이번 총선부터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국회의원을 뽑게 됩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내용이 많이 복잡합니다. 우리는 국회의원 선거 때 지지하는 지역구 의원과 지지하는 정당에 도장을 찍습니다. 우리 정치가 사실상의 양당 구도로 운영되다 보니 여당과 제1야당이 아닌 다른 작은 정당에 동그라미를 찍으면, 그냥 죽는 표(사표, 버려지는 표)가 될 때가 많았습니다. 거대 정당에게 유리했습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의석이 적어도 정당 득표율을 많이 받으면, 지금보다 많은 비례대표 의석수를 챙길 수 있게 하는 제도입니다. 작은 정당에게 유리하고 큰 정당이 상대적으로 불리합니다.

이에 제1야당은 '비례정당'으로 응수했습니다. 자기는 비례대표를 내지 않고, 작은 정당 만들어서 여기에 비례대표 후보를 몰아주는 겁니다. 비례정당은 선거 끝나고 없어질 정당입니다. 여당이 난리가 났습니다. 여차저차 계산기 두드려보니 그 위력이 대단했습니다. 자기들이 지금껏 너무 욕했던 게 민망한 모양인지 진보정당끼리 힘을 합쳐 '비례연합정당'으로 하자고 이름을 달리했을 뿐, 마찬가지로 비례정당입니다.

총선 한 달, 데이터로 팩트체크, '비례정당'은 개이득인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첫판'이 본격적으로 열린 이번 총선, 오늘은 예상 의석수를 분석해 정치 '타짜'들의 셈법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관련 이미지당장 총선을 치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계산해보겠습니다. 다만, 제도가 워낙 복잡합니다. 말 그대로 '연동'되는 게 너무 많아서 다음과 같은 전제 조건을 달겠습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적용의 조건>
1. 지금의 지역구 의석수가 이번 총선에도 '유지'되는 걸로 가정한다.
2. 미래한국당과 국민의당은 지역구를 내놓지 않기로 했으므로 지역구는 '0석'으로 처리한다. 이 의석수는 무소속으로 넣어 지역구 의석 253석으로 맞춘다.
3. 정당 득표율은 최근 리얼미터 여론조사(3월 1주 차)를 반영한다. 단, 편의를 위해 여론조사의 무당층은 기권표로 처리한다.
※ 정당지지율 : 민주당 42.9%, 미래통합당 29.8%, 정의당 4.3%, 국민의당 4.6%, 민생당 4.0% 등


전제에 따라 결과가 워낙 달라져서 총 의석수 자체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지역구 의석수는 묶어뒀기 때문에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비례대표 '증감 추이'를 주목해주시길 바랍니다. 결과는 이렇게 나왔습니다.

<지금 상태에서 의석수를 계산하면?>
(CG : 안준석 디자이너)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의 합계가 27석입니다. 전체 47석 가운데 절반이 훌쩍 넘습니다.

만일 미래통합당이 비례정당인 미래한국당을 만들지 않고 그대로 선거를 치렀다면,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미래한국당이 없을 때를 가정한 결과 보겠습니다.

<미래통합당이 미래한국당을 만들지 않았다면?>
관련 이미지미래통합당이 얻을 수 있는 비례대표 의석수는 6석밖에 안 됐습니다. 그런데 비례정당을 만들면 21석이나 더 얻는 겁니다. 한 석이 아쉬운 지금 엄청난 수치입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까지 비례정당을 만들게 된다면, 그 결과는 어떨까요. 즉, 민주당이 최근 공식화한 '비례연합정당'이 어그러져서 혼자서 비례정당을 만들 경우를 가정한 결과입니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모두 '비례정당'을 만든다면?>
관련 이미지더불어민주당이 비례민주당(가칭)이 24석을 빼 옵니다. 역시 절반이 넘습니다. 이러면 작은 정당 손해가 큽니다. 정의당은 2석, 지금 비례대표가 4석인데 지금보다 덜 받는 겁니다.

민주당 계획대로 진보정당이 힘을 합쳐서 비례연합정당을 만들면 어떻게 될까요. 이건 좀 설명이 필요한데, 민주당과 정의당 등 모두 비례 후보를 내놓지 않고 '비례연합정당'을 만들어 비례 후보를 내놓는 겁니다. 선거가 끝나면, 선출된 비례 대표는 각 정당이 나눠 갖게 됩니다.

정의당은 아직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할 계획이 없다고 했지만, 정의당의 참여를 가정한 결과는 어쨌든 이렇습니다.

<정의당이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한다면?>
관련 이미지관련 이미지위 4개의 계산 결과를 A안부터 D안으로 정해 경우의 수로 적어보겠습니다.

A안 : 지금처럼 미래통합당만 비례정당을 구성한 채로 선거를 치른다.
B안 : 여야가 극적으로 합의해 비례정당 없이 선거를 치른다.
C안 : A안에 대항해 민주당도 비례정당을 만들어 선거를 치른다.
D안 : A안에 대항해 민주당과 정의당이 비례연합정당으로 선거를 치른다.


각 경우의 수별 의석수, 다시 정리합니다.
관련 이미지각 당이 얻을 수 있는 의석수만을 기준으로, A안부터 D안까지의 선호도를 1~4순위까지 적어봤습니다.
관련 이미지A, B, C안은 각 정당별로 가장 기피하는 안입니다. 게임 이론에서는 - '죄수의 딜레마'처럼 - '최악'을 기피하는 심리가 합리적 선택의 주요 전제가 됩니다. 그렇다면 D안은 누구에게나 최선은 아니지만, 누구에게도 최악이 아닌, 누구에게나 차악인, 합리적 선택의 결과일 수는 있습니다.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보겠습니다. 불만의 합을 계산해서 가장 적은 안으로 절충을 보는 방식입니다. 불만의 합이 가장 적은 걸 선택합니다. D안에 대한 각 당의 순위 합계, 즉, 불만의 합이 6으로 가장 작아서, D안이 '공리적인' 결과일 수는 있겠습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표만 받으면 되는 걸' 우선 가치로 삼은 결과입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관련 이미지하지만, 정치가 어디 계산대로, 공식대로 돌아가나요.

미래통합당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될 경우 알바니아처럼 '위성정당'이 만들어지고, 민심이 왜곡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국회 회의록시스템에서 검색어 '위성정당' 치시면 내뱉은 말이 수두룩 나옵니다. 그런데, 그 민심을 왜곡하는 위성정당을 선도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위성정당이 민주주의를 훼손하다며 매몰차게 비판했던 민주당, 그런데 외형은 다르지만 본질은 매한가지인 '비례연합정당'으로 응수했습니다. 수틀리니 따라 합니다. 민심이 왜곡된다, 민주주의가 후퇴된다, 내뱉은 말이 몇 개인데 이걸 또 만들고 있습니다. 제 얼굴이 다 화끈거립니다.

프랑스 혁명, 그 영광의 역사의 뒤안길에는 로베스피에르라는 혁명가가 있었습니다. 자유와 평등, 인간애라는 혁명 정신을 완수하기 위해 그가 동원했던 건, 피의 숙청, 이른바 '공포 정치'였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로베스피에르를 향해 "자유를 위해, 자유를 파괴한 정치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두 거대 정당 모두, 민주주의를 위한다면서 민주주의를 배신하는 '위성정당'을 꺼내 들었습니다. 민주주의 절차 정의는 그렇게 퇴색됐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민주주의를 '배신'하는 게 과연 우리 공동체 입장에서 '개이득'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한국의 정치는 여든 야든, 좌파든 우파든, 진보든 보수든, 로베스피에르의 철학을 수혈받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데이터로 팩트체크, 비례정당은 개이득인가, 다음 편에서는 각 당이 나눠 갖는 선고보조금을 통해 비례정당이 우리 세금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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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은] 총선 한 달, 비례정당은 세금에 '기생'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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