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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전쟁 수준의 재난 상황…'재난기본소득' 필요할까

[취재파일] 전쟁 수준의 재난 상황…'재난기본소득' 필요할까
● "오늘도 놀러 나간다"

한 명의 직장인으로서 언제 들어도 참 부러운 얘기입니다. 그런데, 요즘 이 얘기를 제가 자주 듣고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친구 가운데 한 명이 매일 아침 출근길에 내뱉는 말입니다. 부럽기만 해야 할 '논다'는 얘기가 요즘은 정말 '심각'하게 다가옵니다.
코로나19에 문 닫은 음식점 (사진=연합뉴스)
제 친구 얘기를 잠깐 해보겠습니다. 서울 성동구에서 음식점을 하는 친구입니다. 대학가에 있는 음식점이라 3월이면 성수기입니다. 학생들이 줄을 서고, 학교 행사다 뭐다 붐빌 시기죠. 그런데 요즘 말 그대로 놀고 있습니다. 점심에 학생들 발길은 뚝 끊겼고, 저녁엔 술을 찾는 손님도 없습니다. 매출은 반의 반까지 떨어졌습니다. 월세에 아르바이트 월급에 고정 지출은 그대로인데 벌어 들이는 돈은 없다 보니 걱정만 쌓입니다. 이번 달은 어떻게든 버티겠는데, 한두 달 늘어나면 정말 골치 아프다고 합니다.

코로나19가 확산한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정지된 상태입니다.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 달라는 정부의 말보다 앞서 사람들은 서로 간의 거리를 멀찍이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이제 거리에서, 사회에서 사람이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학생들이 오지 않는 학원, 회원이 찾지 않는 헬스장, 발길이 뚝 끊긴 음식점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소득이 없으니 최소한의 소비도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우리 사회의 풍경은 '경제 위기'보다는 '생계 위기'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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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국민소득' 청와대 국민청원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 코로나 경제 위기에 <재난국민소득>을 50만 원씩 어려운 국민들에게 지급해주세요

이런 가운데 3월 1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국민들에게 50만 원씩 지급하자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이 글의 작성자는 최근 '타다 금지법' 통과로 뜨거운 관심사였던 '타다'의 모회사 쏘카 이재웅 대표입니다. 이 대표는 현재 대한민국의 경제 상황을 '일자리의 위기, 소득의 위기, 생존의 위기'라고 말하며, '라면이라도 먹을 수 있는 소득이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재난국민소득', '재난기본소득'은 지금과 같은 국가 '재난' 상황에서 국민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기본소득'을 지원하자는 개념입니다. 최소한의 생활을 위해 국민에게 필요한 '기본소득' 개념을 재난이라는 한시적, 예외적인 상황에 도입한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주변 국가에서는 재난기본소득 도입이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홍콩은 우리 돈 150만 원을 현금으로 지급하기로 했고, 마카오도 40만 원 정도의 돈을 지급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국내 정치권에서도 '재난기본소득' 도입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잇따라 쏟아지고 있습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모든 국민에게 1인당 100만 원 재난기본소득 지급해야" 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경제가 거의 멈추는 비상상황 특단 대책 필요…재난 기본소득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때"라고 했습니다. 두 도지사는 도 차원에서의 지원까지 검토하고 있습니다. 야당인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도 정부에 "'재난기본소득' 정도의 과감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다음 달로 다가온 총선용 선심성 정책일 수 있지만, 상황의 심각성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필요하단 여론이 뜨겁습니다.

정부, 여당에선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11조 7천억 원의 추가경정 예산을 편성했고, 이 가운데 2조 6천억 원 정도가 저소득층 등에게 소비 쿠폰 등을 지급하는 것으로 생계 지원정책이 반영됐다고 말합니다. 재난기본소득까진 아니지만, 충분히 경제 위기와 저소득층의 소득 위기를 고려했다는 것입니다.

● "전쟁 수준의 재난…'재난기본소득'은 국가의 의무"

전문가들에게 '재난기본소득'의 도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습니다. 모두 대답은 '필요하다'였습니다. 정부의 재정 지출이 늘어나는 만큼 '재정 부담'을 이유로 반대하는 교수들도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제가 물어본 교수들 모두가 '찬성' 입장을 밝혔습니다. 더 나아가 '국가의 의무'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최항섭 국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 우리가 직면한 위기는 경제를 넘어 국가 생존의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전쟁 수준의 위기에 국가가 보이지 않는다면 국민들이 기댈 곳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전문가들의 찬성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정말 먹고살기조차 힘든 사람들에게 생계비를 지원해줘야 한다는 것과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소비 활성화의 한 방법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 저소득층·피해지역 중심 한시적 지원

지원 대상에 대해선 대부분이 저소득층과 피해지역 중심으로 차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건 재정적 부담이 너무나 크고, 오히려 미래에 다가올 세부담으로 소비도 줄어 역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김경수 지사의 주장대로 1인당 100만 원이 지급되려면 50조 원이 넘게 필요한 만큼, 국가 재정에도 부담이 되고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안동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일본 도쿄에서 '기본소득'을 지급한 사례를 들어 '무차별적 지원'이 부적절하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도쿄 시민 전체에 우리 돈 10만 원 정도의 현금이 뿌려졌지만, 소비는 늘지 않고 저축하는 데 써버렸다는 것입니다.

반면, '전 국민 대상' 도입이 필요하단 입장도 있습니다. 강남훈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대한민국의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김경수 지사가 말한 50조 지출도 필요하다고 분석했습니다. 불신, 불안으로 가득한 지금 누구는 지원하고, 누구는 지원하지 않는 기준을 정하기보단 모두 공평하게 지원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이유입니다. 현금 살포가 저축이 아닌 소비로 이어지게 하는 데는 '소비 장소'를 소상공인들이 밀집한 시장 등으로 제한하고 '사용 기한'을 지정하는 방법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지원 방법과 지원 규모 등을 바라보는 교수들의 시각은 차이가 있었지만, 결국 현재 국가 위기 상황 속에서 정부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같은 의견이었습니다. 현재 정부의 추경만으로는 우리 경제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전망도 일관됐습니다.

윤재관 청와대 부대변인 (사진=연합뉴스)
● 靑 "재난기본소득 검토하고 있지 않다"

정부는 재난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오게 된 취지는 잘 이해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현재 국내 상황이 엄중하다는 걸 정부도 인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도입 여부에 대해선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재정 부담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고, 실제 국민들의 생계를 보장하고 경제도 살리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정말 그 '심각성'을 이해하고 있다면, 지금은 국민들에게 정말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 내놓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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