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보건당국, 대중에 코로나19 경고하려다 트럼프의 호통만"

미국 보건당국이 지난달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의 위험성을 대중에게 솔직히 털어놓고 경고하려 했으나 돌아온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호통이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8일(현지시간) 보도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숨기는데 급급해 제대로 대비도, 대처도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입니다.

미 언론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실책을 비판하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NYT에 따르면 미 보건당국은 지난달 말 트럼프 대통령이 인도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대로 코로나19의 위험성과 관련해 좀 더 직설적 평가를 내놓기로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승인하면 미 대중에 코로나19에 대해 솔직한 분석을 내놓고 미국인들이 이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할 작정이었던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 26일 백악관에 돌아올 예정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인도 뉴델리에서 귀국길에 오를 때쯤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산하 국립면역호흡기질환센터의 낸시 메소니에 국장은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일상의 혼란이 심각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학교는 문을 닫고 행사는 취소되고 기업에서는 재택근무를 해야 할 수도 있다고도 했습니다.

보건당국이 코로나19의 미국 내 확산 가능성을 얼마나 심각하게 보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뉴욕증시는 출렁였고 언론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에어포스원에서 내리자마자 앨릭스 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전화부터 걸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메소니에 국장의 발언을 거론하면서 고함을 쳤고 그 통화에 대해 알게 된 사람들을 겁먹게 했다고 NYT는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습니다.

백악관으로 돌아온 당일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기자회견을 열었고 코로나19는 독감과 같은 것이라며 불안감 확산을 차단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결국 당국의 메시지가 수정된 셈입니다.

NYT는 미국 정부 소속 전문가들이 일찍부터 코로나19에 대한 경고음을 발신하고 적극적 조치를 강조했으나 금융시장 혼란과 패닉 조장 우려를 내세운 백악관,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의심과 저항에 부딪혔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고 모두가 침착해야 한다"고 계속해서 당부하는 데 대해 대통령이 유행병 확산 상황에서 침착을 당부하는 것은 효과적이고 적절한 조치이지만 결국 미국인들이 덜 준비되게 하고 코로나19에 대한 이해를 늦추게 했다고 꼬집었습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도 13명의 전현직 당국자를 취재, 코로나19 대응에 있어 트럼프 행정부의 잘못된 접근이 위기를 부채질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메소니에 국장의 2월 25일 회견이 트럼프 대통령을 화나게 하는 바람에 메소니에 국장을 기자회견장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방안까지 논의됐다고 합니다.

에이자 장관의 방어로 메소니에 국장의 회견장 출석까지는 계속 허용이 됐으나 발언 수위는 낮아졌다고 폴리티코는 지적했습니다.

코로나19 환자가 무더기로 나온 미국 크루즈선 '그랜드 프린세스'호의 입항 여부를 두고서도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보건 당국자들이 대피 계획을 보고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크루즈선에 계속 태워둬 미국 내 감염 규모를 늘리지 않는 방안을 선호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 CDC에서 한 취재진 문답에서 "모든 사람을 내리게 하고 싶냐고? 사람들은 내가 그렇게 하기를 바라더라. 나는 개인적으로 그들을 (크루즈선에) 머물게 하고 싶다. 배 한 척 때문에 (감염) 숫자를 두배로 할 필요는 없지 않으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랜드 프린세스 호 승객들은 9일 오클랜드 항구에 내려 격리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배에서는 21명이 코로나19 양성반응을 보였고 당초 7일 샌프란시스코에 입항할 예정이다가 늦어졌습니다.

NYT는 에이자 장관이 토요일이었던 1월 18일 처음으로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 있던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전자담배 논의에 초점을 맞춰 관심을 돌리느라 애썼다는 일화도 소개했습니다.

1월말 발원지인 중국 우한에서 미국인들을 전세기에 태워 귀국시킬 때도 비행기가 하늘에 떠 있는 와중에도 어디에 착륙시켜야 할지 결정이 안돼 당국이 우왕좌왕했다고 전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