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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판다] 1939년 안익태 학생카드…종교란에 '日 신도'

<앵커>

유럽 진출 전 안익태는 주로 미국에서 활동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활동할 만큼 기반이 탄탄했는데, 애국가도 1935년 미국에서 첫선을 보였습니다. 안익태는 헝가리 유학 시절 정체성의 변화를 보입니다.

조선 출신 음악가가 어떻게 일본인 지휘자로 어떻게 바뀌어 갔는지, 30여 년 전 공개됐던 그의 학생카드에서 진실을 찾아봤습니다.

<기자>

헝가리 리스트 음악원에 보관된 안익태 등록서류입니다.
안익태 종교
1938년 첫해 직접 적은 일종의 '학생카드'에는 출생지를 평양, 종교는 '기독교'로 소개했습니다.

이름은 A-h-n E-a-k-t-a-i, 한글 이름을 영어 발음으로만 바꿨습니다.

1988년 처음 공개됐는데, 한국인임을 잊지 않은 유학 시절 사료로만 소개됐습니다.

전문 연구가와 내용을 다시 확인해봤습니다.

입학 이듬해인 1939년, 당시 헝가리에 공포된 '제2차 유대법'에 따라 부모의 종교까지 적어야 했는데 아버지는 불교, 어머니는 기독교라고 기재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출생지인 평양을 일본식 발음으로, 창씨개명 전인데도 이름은 A-h-n E-k-i-t-a-i(안 에키타이)로 바꿔 적습니다.
안익태 학생카드
다시 1년 뒤 일본색은 한층 짙어집니다.

자신은 물론 부모 종교까지 모두 '신도'로 바꿔 썼습니다.

'신도'는 일본의 민족 신앙으로, 전범 합사로 논란을 빚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가 신도 사원 중 하납니다.

[김보국/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 이건 자기(안익태)가 이야기 안 하면 할 수 없는 것들이거든요, 헝가리 사람이 신도를 어떻게 알겠어요.]

이후 안익태는 일본이 후원하는 연주회에서 지휘를 많이 했고, 상황에 맞춰 일본식으로 곡명도 변경했습니다.

[허영한/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음악학과장 : 변천, 변해가는 과정을 보면 한꺼번에 싹 돌아서는 게 아니에요. 하나씩, 하나씩 포기합니다. 한국이란 단어 포기하고, 애국가 악장 빼고.]
안익태
이에 대해 안익태 기념 재단은 일제 강점기 유럽에서 음악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순응했던 측면은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또 종교를 신도라고 쓴 부분은 본인 필적이 아니라면서 안익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던 일본 세력이 대신 서류를 작성한 걸로 추정된다고 말했습니다.

(영상취재 : 배문산, VJ : 김준호, CG : 송경혜·이예정, 영상편집 : 김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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